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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박근혜만 모르는 박근혜의 운명

중앙일보 2017.03.29 02:55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철호논설주간

이철호논설주간

모래시계 검사 출신인 홍준표 경남지사(이하 경칭 생략)는 검찰을 잘 안다. 그가 “지금 검찰은 딱 한 명의 눈치를 본다”며 “그 사람이 (박근혜를) 구속하라면 구속할 것”이라 했다. 언론은 이 발언을 받아쓰며 ‘그 사람’이라 적고 ‘문재인’이라 읽었다. 검찰이 차기 권력 1순위의 눈치를 살핀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 때 7시간이나 꼼꼼히 조서를 고쳤다고 한다. 구속은 두려운 모양이다. 지난 한 해를 더듬어 보면 박근혜는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에 빠진 느낌이다. 탄핵 때도 헌재가 기각시킬 것이란 거짓 보고에 속았다. 이번에도 주변에서 ‘불구속’ ‘영장 기각’이라 소곤대는 분위기라 한다. 냉정하게 보면 희망고문일 따름이다.
 
일단 문재인 본인은 “대선주자로서 박근혜의 구속 여부를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선을 그었다. 전략적 모호성을 고수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을 읽으려면 서울대 조국 교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주변의 추미애·양정철·송영길·문성근 등이 잔기술에 능하다면 조국은 진보 재집권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쪽이다. 『진보 집권 플랜』을 펴낸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을 공개 지지했으며, 문재인도 그 이후 조국이 설계한 길을 따라왔다.
 
지난해 총선에서 문재인은 "호남의 지지 못 받으면 정치 안 하겠다”는 약속에 발목이 잡혔다. 이때 조국은 "언약 중시하는 문재인, 정치적 결벽증을 떨쳐내라”며 구원에 나섰고, 문재인은 군말 없이 따랐다. 그는 탄핵과 촛불 국면 때 총설계사나 다름없었다. "특검을 빨리 구성하라. ‘제3자 뇌물죄’가 핵심이다” "해 뜨면 인간띠, 해 지면 촛불로 (청와대를) 감싸자”…. 그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린 지침은 어김없이 현실화됐다. 조국은 구체적 사건에도 결정적 훈수를 두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영장이 기각되자 특검을 향해 "기죽지 말라. 수사를 보강해 영장을 재청구하라”고 주문해 결국 관철시켰다. 이런 조국이 이번에 박근혜에 대해 소름 돋는 예언을 했다. "100% 구속이고, 법원 가면 중형이 내려질 것이다.”
 
최근 만난 진보 진영 핵심 인사도 ‘박근혜 구속-중형 선고’의 입장이었다. 표면적으론 여론조사에서 70%가 구속을 원하고, ‘박근혜의 검찰’이 박근혜를 구속시켜야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비밀은 따로 있다. "우리는 누구보다 노무현 자살의 파괴력을 잘 안다. 만약 박근혜가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테러를 당하면 큰일이다. 노무현도 퇴임 후 경호를 받는 중에 목숨을 끊었고 얼마 전 박근혜의 얼빠진 경호원은 실탄이 든 권총까지 잃어버렸다지 않는가.” 대선 때까지 최대한 정치적 변수를 줄이려면 구속이 더 낫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 진보 인사는 대선을 넘어 내년의 지방선거, 3년 뒤의 총선까지 내다보고 있었다. "박근혜가 친박과 TK(대구·경북)를 정치적 인질로 삼아 계속 보수 진영을 분열시켜 주면 그야말로 꽃놀이패”라고 했다. 자칫 박근혜는 진보 진영의 ‘마리오네트’(실로 조종하는 인형)가 될지 모른다.
 
박근혜 앞에 잔인한 세월이 다가오고 있다. 수의를 입고 올림머리를 풀어내린 비극적 모습이 동정심은 유발할지 모른다. 친박은 다시 한번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몰아가고 싶겠지만 그런 기대는 접는 게 좋다. ‘국민 밉상’으로 찍힌 최순실·정유라가 같은 법정에 등장하면 동정심은 순식간에 증발될 게 분명하다. 혹 재판에서 무죄를 기대한다고? 만약 무죄가 난다면 헌법재판소부터 박살나고 나라가 뒤집어질 일이다. 오히려 법원에서 1억원 이상의 뇌물수수가 인정되면 특가법이 적용돼 징역 10년 이상의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더 크다.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오래 교도소에 머물러야 할 수 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박근혜는 울분과 후회로 땅을 칠 것이다. 지난해 3월 30일, 총선 과반의석 획득 전망 속에 미·중·일 정상회의를 위해 기분 좋게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딱 1년 뒤인 내일, 박근혜는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판사 앞에 서야 한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확증편향에서 벗어나 듣기 싫은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청와대에서 태극기 맞불 집회를 응원하고, 삼성동 사저에 도착해 친박들에 둘러싸여 ‘탄핵 불복’을 시사한 것은 큰 패착이었다. 계속 정치하겠다는 욕심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전직 대통령들은 대개 정계에서 깨끗이 은퇴하는 게 전통이었다.
 
박근혜가 오래 투옥되는 것은 개인적인 불행이자 나라의 비극이다. 시인 황지우는 "지옥이 지옥인 것은 그곳에는 죽음마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으면 한다. 정계 은퇴와 친박 폐족을 선언하고 골박(뼛속까지 친박)·삼박(삼성동 사저까지 따라온 친박)들에게 해체를 지시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마음이 풀어지고, 보수 진영도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불행의 사슬을 끊어내는 마지막 애국이 아닐까 싶다.
 
이철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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