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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갈등 유발하면 해결사는 남성?…드라마 속 성불평등 보니

중앙일보 2017.03.26 18:48
착한 여성과 나쁜 여성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을 일으킨다. 나쁜 여성은 대놓고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착한 여성은 대개 당하는 역할이다. 그러던 중 '백마 탄 왕자'가 홀연히 나타나 착한 여성을 구해주고 갈등을 해결한다. 흔히 말하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드라마가 흘러가는 구조다.
 

양평원, 지난해 방송된 드라마 등 모니터링 결과 공개
드라마 속 직업도 남성은 전문직, 여성은 비전문직 ↑
예능에선 외모지상주의, 성 역할 고정관념 조장 많아
스포츠 중계에도 선수와 상관 없는 성차별 요소 다수

  이처럼 국내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들을 들여다보면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성차별적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갈등을 유발하는 건 여성 출연자, 갈등을 해결하는 건 남성 출연자라는 '이분법'이 강하게 깔렸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은 지난해 지상파·종합편성채널·케이블에서 방송한 드라마 132편 등 대중 매체를 모니터링한 결과를 26일 공개했다.
 
  분석 결과 드라마의 갈등 유발자 중 여성의 비율은 61.8%였다. 반면 갈등 해결자 가운데 남성 비율은 64.2%로 정반대였다. 성차별은 드라마 속 주ㆍ조연의 '직업'에서도 두드러졌다. 남성은 자영업자·의사·검사·국회의원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전문직이 많았다. 반면 여성은 주부·공장 노동자·아르바이트생 같은 비전문직으로 묘사된 경우가 많았다.


  드라마의 '성차별적' 내용은 104건으로 성 평등적 내용(42건)의 배 이상 많았다. 여성 주체성을 무시하고 남성 의존 성향을 강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난해 5월 방영된 MBC 드라마에선 '워킹맘' 대신 직접 장을 보고 배추를 씻는 남성 주인공의 모습이 묘사됐다. 가사는 여성, 바깥일은 남성이라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탈피한 모범 사례지만 이러한 드라마는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MBC 드라마 캡처. [자료 양평원]

MBC 드라마 캡처. [자료 양평원]

  재미를 강조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성차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해 모니터링된 62편의 예능 출연자 중 여성은 36.5%, 남성은 63.5%로 남성의 비율이 크게 높았다. 주 진행자도 남성이 67명, 여성이 32명으로 남성이 배 이상 많았다. 예능에선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지난해 8월 tvN의 개그 프로그램에선 내레이터 모델로 나선 개그우먼이 선정적 옷차림을 춤을 추고 '쭈쭈'라는 대사에서 가슴을 강조했다. 가게 사장이 이 개그우먼의 허벅지살을 보며 "엉덩이가 몇 개예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외모와 성적 이미지를 자극적으로 표현한 '문제 사례'인 셈이다.
tvN 예능 캡처. [자료 양평원]

tvN 예능 캡처. [자료 양평원]

 
  성차별과 상관 없을 거 같은 스포츠 중계에도 왜곡된 시각이 숨어 있었다. 지난해 지상파 3사에서 방송한 리우 올림픽 중계방송 577개를 모니터링한 결과 중계진 1200명 중 여성은 17.8%(214명)에 그쳤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50~60대 중계진도 없었다. 성차별적 발언도 26건 나왔다. 특히 성차별적 발언자 30명 중 남성은 25명(83.3%)으로 절대 다수였다. 스포츠 중계에선 '섬세함', '여성스러움', '가녀린 소녀' 등 선수 능력과 기량보다 여성성을 강조하거나 고정관념을 보여주는 표현이 종종 쓰였다. '살결이 야들야들한데 상당히 경기를 억세게 치르는 선수'처럼 여성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발언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지난해 8월 말 여자골프 3라운드 경기를 중계한 KBS가 대표적인 문제 사례다. 한 남성 캐스터는 "박인비 선수가 징징거리는 거 남편이 받아줬을 것"이라며 경기와 무관한 발언을 했다. 또한 중국 선수인 펑산산에게 "저렇게 가까이 오면 얼굴 크게 나오죠"라며 외모 비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양평원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차별적 방송에 대한 제재 강화, 방송 제작자의 양성평등 의식 강화, 성평등 관점의 미디어 모니터링 강화, 온라인 매체의 성차별성 해소를 위한 접근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민무숙 양평원 원장은 "올해부터는 심의ㆍ개선 요청 활동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세한 모니터링 내용은 양평원 홈페이지(www.kigepe.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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