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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은 병 없는 태평시절 최고의 보약

중앙선데이 2017.03.26 02:11
新동의보감
사람마다 비수강약(肥瘦强弱)이 다르다. 약초나 음식은 살진 사람 또는 마른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 따로 있다. 이를 가리지 않고 일률적으로 섭취하도록 종용하는 건강법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우리 주변에 널린 약초나 음식 등이 체질에 따라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소개한다.

병이 났을 때는 약으로 다스리고
평소에는 밥상으로 건강 지켜야
한식 밥상은 군신좌사 질서 보여줘
밥·국·반찬 조화된 완벽한 보약처방

멥쌀-위장 편하고 살 오르게
찹쌀-체했을 때 좋은 약 될 수도
현미-위장 약한 사람은 피해야
보리-열성 설사할 때 효과적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통계청에 따르면 요즘 한국인들은 하루에 밥 한 공기 반을 먹는다고 한다. 30년 전에는 그 두 배를 먹었다. ‘한국인의 주식(主食)은 밥’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약식동원(藥食同源). 한방에서는 우리가 평소 먹는 음식과, 병 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한약의 근원이 같다고 본다. 다만 한약은 음식에 비해서 개성과 약성이 강하고 뚜렷할 뿐이다. 병을 치료하는 원리는, 한약의 강한 개성을 이용하여 인체의 부족하거나 지나친 부분을 다스려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다. 균형만 제대로 잡아주면 인체의 자생력에 의해 대부분의 병들이 치료된다는 게 한의학의 근본 원리다.
 
우리가 평소 섭취하는 음식은 배고픔을 해소하는 것뿐 아니라, 인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쌀·보리·밀 등 주식으로 섭취하는 곡물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동의보감을 보면 치료 약재 중에 곡부(穀部)와 채부(菜部)가 있다. 곡부에는 쌀·보리·밀·콩·녹두  등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곡물들에 대한 치료효능이 소개되어 있다. 채부에는 배추·무·파·마늘· 생강 등 식탁에 오르는 반찬들과 여기에 첨가되는 향신료들에 대한 치료효능이 나와 있다. 즉,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곡물들과 각종 반찬들이 모두 치료 효과가 있는 한약재인 것이다. 실제 한의원 처방 중에 멥쌀이나 찹쌀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평소 주식으로 섭취하는 곡물들엔 어떠한 약효들이 있을까? “밥이 보약이다. 밥심으로 산다”는 세간의 말들은 모두 사실이다. 나아가 우리가 평소에 먹는 음식만 잘 챙겨도 건강한 삶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주식으로 사용하는 멥쌀·찹쌀·보리·밀·현미 등이 각기 다른 특징들이 있으므로 구별하여 적절히 섭생을 한다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멥쌀

멥쌀

 
사람의 정(精)과 기(氣)는 모두 쌀이 변해서 생긴다고 해서 글자 속에 모두 쌀미(米)자가 들어 있다. 정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가솔린이나 등유에 해당되며, 기는 연료가 엔진 속에서 점화플러그 불꽃에 의해 폭발하여 엔진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라고 이해하면 된다. 우리의 몸을 움직이는 연료와 에너지가 모두 쌀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약성은 다른 곡물들도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동의보감에 멥쌀은 갱미(粳米)로 기록되어 있다. “갱미는 성질이 화평하며 맛이 달다. 위장을 편안하게 하며 살이 오르게 한다. 뱃속을 따뜻하게 하고 설사를 그치게 한다. 기운을 더하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멥쌀은 우리가 주식으로 삼기에 참으로 적합한 약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찹쌀

찹쌀

 
흔히 위가 나쁘면 찰밥을 먹으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상식이다. 찹쌀은 동의보감에 나미(米)라는 약명으로 나와 있는데, 나미의 약성을 읽어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먹으면 몸이 연약해진다. 고양이나 개가 먹으면 다리가 굽어들어 잘 걷지 못하게 된다”고 기술되어 있다. 찹쌀은 멥쌀처럼 매일 먹을 수 없는 약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의사의 진단에 의해 찹쌀이 체질에 잘 맞는 경우는 예외라 하겠다.
 
또한, 찹쌀은 매일 먹을 수는 없지만 체했을 때 섭취하면 오히려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체하면 위가 땡땡하게 붓고 아픈데, 이때 찹쌀로 죽을 쑤어 먹으면 위가 빨리 부드러워지고 체한 것이 가라앉게 된다. 위장이 너무 약해져 어떤 음식도 소화시키지 못할 때는 소화기능이 회복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먹으면 도움이 된다.
 
현미

현미

현미는 왕겨만 벗겨내고 속겨는 남겨둔 쌀이다. 현미 열풍이 불더니 너나 할 것 없이 건강식으로 현미를 먹는다고 한다. 물론 위장이 튼튼하여 잘 체하지도 않고 열이 많으며 변비가 있는 사람, 다혈질인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건강식이 된다. 하지만, 위장이 약하고 속이 냉한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현미가 제대로 소화되지 않고 배설되며, 잘못하면 위장장애도 일으킬 수 있다. 
 
평소 소화력이 떨어지고 위나 장이 약해 설사가 잦은 사람은 약성이 차가운 왕겨와 속겨는 모두 제거해서 성질이 따뜻한 알맹이에 해당하는 백미를 먹는 게 좋다. 물론 현미에는 백미에 없는 각종 영양소들이 더욱 풍부하게 들어있지만, 위와 장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흡수가 되지 않아 득보다 해가 많다. 하지만, 위와 장이 튼튼하며 쉽게 살이 찌는 사람들은 현미를 일정 비율로 주식으로 삼으면 건강유지와 다이어트에 모두 도움이 될 수 있다.=
 
보리

보리

보리에는 어떤 약성이 있을까? 동의보감은 보리에 대해 ‘성질이 따뜻하고 독이 없으며, 기를 보하고 비위를 조화롭게 한다. 설사를 멎게 하며 허한 것을 보한다. 오장을 실하게 하는데, 오랫동안 먹으면 살이 찌고 건강해지며 몸이 윤택해진다. 몸을 덥히는 데는 오곡 가운데 제일이다.  오랫동안 먹으면 머리털이 희어지지 않고, 중풍을 예방한다. 잘 익혀먹으면 사람에게 이롭다’ 고 적고 있다.
 
보리하면 쉽게 떠오르는 게 보리차이다. 보리차는 껍질이 있는 온전한 보리를 볶아서 사용하므로 조금 차가운 성질이 있다. 따라서 아이들이 열성(熱性) 설사를 할 때 효과적이다. 열성설사는 대변에서 냄새가 많이 나고 거품 같은 것이 섞인 모양을 나타낸다. 하지만 음식물이 소화되지 않을 상태로 나오는 한성(寒性) 설사에는 해로울 수 있다.
 
한의사가 약을 처방할 때, 약을 배합하는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 전문용어로 군신좌사(君臣佐使)라고 하는데, 처방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약이 임금(君藥)이 되고 그 임금을 도우는 약은 신하(臣藥), 신하를 돕는 여러 약들은 관리(佐使藥)가 된다.
 
이와 같은 개념을 의학에 도입한 이유는 약재를 배합하여 몸을 치료하는 과정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백성을 살리기 위해 국가를 세우는 것을 입국(立國)이라 하고, 병을 고치기 위해 군신좌사를 원칙으로 약재를 배합하여 처방을 만드는 것을 입방(立方)이라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식의 밥상마저도 바로 군신좌사의 질서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밥상은 보약인 쌀을 군약이자 주약재로 한 보약처방인 것이다. 우리의 전통식단은 여러 세대를 거치며 뛰어난 식약의(食藥醫)들에 의해 개발된 후, 점차 우리 체질과 환경에 맞게 개선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밥에 소고기국’이라는 말처럼 전통식단에는 밥과 국이 기본이 된다. 밥상을 한약처방으로 볼 때 밥은 임금(君藥), 소고기국은 임금을 도우는 신하(臣藥), 그 외 반찬들은 좌사약(佐使藥)이 된다. 밥과 소고기(牛肉·근육과 뼈를 튼튼히 하고 힘을 돕는다)는 동의보감에 모두 보약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반찬은 혹시 부족할 수 있는 부분을 보충한다. 즉, 우리 밥상은 그 자체가 완벽한 보약처방인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병을 치료할 때 몸을 다스린다고 표현한다. 그 이유는 병을 치료하는 것이 마치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나라를 다스리다 보면 평화롭고 안정적인 태평한 시절도 있지만, 외적이 침입하여 전란이 휩쓰는 위태로운 시절도 있다. 외적이 난동을 부리는 전쟁 시에는 그들을 응징하기 위하여 강력한 군대를 동원해야 하며, 태평한 시절에는 백성들이 배부르게 살 수 있도록 산업과 경제를 살찌워야 한다.
 
몸을 다스리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병이 났을 때는 약으로 다스리고, 평소에는 밥상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병이 났는데도 음식만 고집하거나, 건강한데도 비싼 보약만 찾는 것은 지혜로운 방법이 아닌 것이다.
 
병이 없는 평소에는 밥상을 통하여 몸을 보강해야 한다. 밥상은 태평한 시절에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보약이다. 평소 밥상을 통해 건강해진 몸은 적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는 법이다.
 
 
정현석 약산약초교육원 고문
튼튼마디한의원 대표원장. 경희대학교 대학원 한의학박사. 전 함소아 대표. 전 약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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