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눈 커져 시력 좋아진 물고기 먹을 것 찾아 땅위로 오르다

중앙선데이 2017.03.26 01:29 524호 34면 지면보기
육기어류가 초기 육상 네발동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눈의 위치가 변하고 눈이 커지면서 시야가 극적으로 확장됐다.

육기어류가 초기 육상 네발동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눈의 위치가 변하고 눈이 커지면서 시야가 극적으로 확장됐다.

만약 외계인이 우주선에서 지구를 오래전부터 관찰하고 있었다면 지구 환경이 극적으로 변한 시점은 고생대 데본기(4억~3억 6000만 년 전)라고 기록할 것이다. 육상 생태계가 갑자기 변했기 때문이다. 양치류 같은 육상식물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지구에 처음으로 숲이 생겼다. 일찌감치 육지에 등장한 절지동물에서 곤충이 나타났다. 바다에도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산호초가 선보였으며 갑주어와 상어 그리고 경골어류가 등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골어류에서 비롯된 네발(四肢)짐승이 육상에 출현했다. 절지동물이 들으면 불쾌한 이야기이겠지만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네발짐승이야말로 진정한 최초의 육상동물이다.
 

물고기·네발동물 눈 크기 비교
‘부에나 비스타’ 이론 설득력 갖춰
뭍으로 올라오기 전부터 눈 커져
더 멀리 더 많이 잘 보게 되자
지느러미 대신해 네 다리 발달

물고기가 땅 위로 올라온 시점은 데본기가 후반부에 들어선 3억 7500만 년 전. 몇몇 물고기에 강력한 지느러미가 생겼다. 지느러미의 힘이 어찌나 셌던지 자기 몸을 육지로 들어 올릴 정도였다. 그런데 궁금하다. 물고기들은 왜 굳이 땅 위로 올라왔을까?
 
물고기의 육상 진출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있다. 데본기에 계절성 가뭄이 자주 발생해서 얕은 물가에 살던 물고기의 서식처가 자주 없어지곤 했다. 이런 환경에 적응해서 망둥이처럼 물 밖에서 생활할 수 있는 물고기가 등장했고 이들이 물 밖에서 지내는 시간을 늘려가다 결국 육상동물이 되었다는 가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물속 생활의 경쟁이 심해지자 아직 무주공산인 육상으로 피신했다는 가설도 있다. 당시는 열대성 기후로 지구가 습했기 때문에 육상으로 진출한 물고기가 견딜 만했고, 이어서 다양한 적응을 거쳐서 양서류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물속에 있던 포식자를 피해서 평화를 찾아왔을 수도 있고 새로운 먹이 자원을 쫓아왔을 수도 있다.
 
이유를 막론하고 육지로 올라온 최초의 물고기를 물 밖으로 유인해서 육상으로 이동시킨 추동력은 무엇일까? 이 문제는 진화학자들에게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최근 과학자들은 발달한 시각(視覺)이야말로 최고의 동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고기들이 수면을 벗어나서 육지로 올라오게 된 근원적인 힘은 눈이 커지고 시력이 좋아져서 수면 위의 먹잇감들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력 좋아지기 전 눈의 위치부터 바뀌어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말콤 맥아이버와 그 동료들이 그런 주장을 내놨다. 물고기들이 눈이 커지고 시력이 좋아지자 물 밖으로 나와서 먹이 사냥을 감행하게 되었다는 이 가설에 그들은 부에나 비스타(Buena Vista)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페인어로 ‘좋은 전망’이라는 뜻이다.
 
이들의 연구 방법은 비교적 단순했다. 고생대에 살았던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와 네발동물 화석에서 눈의 크기를 측정했다. 그 결과 3억 9000만 년 전에서 2억 5000만 년 사이에 눈의 크기가 극적으로 커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때는 아직 판데리크티스(Panderichthys)나 엘피스토스테게(Elpistostege) 같은 발달한 네발어류들이 아직 물에 남아서 첫 육상 네발동물로 진화하기 직전이다.
 
물고기 화석은 비교적 3차원적인 형태로 보전된 경우가 많다. 특히 안구 화석이 3차원적으로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경우라면 공막고리뼈를 재구성할 수 있다. 공막고리뼈는 안구를 둘러싸고 있는 두개골의 구멍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눈을 둘러싼 뼈라서 이것을 보면 눈알의 모양과 크기를 알 수 있다. 두개골 화석에서 눈구멍 크기를 비교해 보니 최초의 육상 네발동물인 양서류는 완전히 물속에서 살던 물고기보다 세 배가 커졌다.
 
지질시대라는 관점에서 보면 순식간에 일어났지만 단번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물고기의 눈이 커지는 데는 몇 가지 단계가 필요했다. 물고기가 육지로 이동하는 단계에서 시력이 향상되기 위해 먼저 눈의 위치가 변했다. 앞을 보던 눈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눈으로 바뀌었다. 아래에 숨어 있다가 위에 있는 먹잇감을 기습공격하는 매복 포식자로 변한 것이다. 데본기 물고기인 판데리크티스의 머리 모양은 이런 유형의 공격에 최적화됐다. 몸길이 90~130㎝인 판데리크티스는 육기어류와 초기 네발동물의 중간 단계를 보여준다. 판데리크티스의 시력은 먹잇감을 올려다보면서 넓은 영역을 탐색하는 데 최적화됐다.
 
둘째 단계는 물고기들이 눈을 물에 대거나 물 위로 내민 후 공기를 통해 보는 것이다. 네발동물에 가장 가까운 물고기인 틱타알릭(Tiktaalik)이 대표적인 예다. 틱타알릭의 머리는 악어처럼 긴 모양인데 머리 중간에 있는 눈은 위로 올라와 있어서 주변을 쉽게 살펴 볼 수 있다.
 
지금도 중남미 대서양 해안의 맑은 바닷물에 서식하는 네눈박이물고기는 특이한 방식으로 시야을 향상시켰다. 이들은 망막을 위아래 두 부분으로 나눈다. 네눈박이물고기가 수영할 때 망막 경계선이 수면과 일치하면 수면 위의 눈은 공기 중의 물체에, 수면 아래의 눈은 수중의 물체에 초점을 맞춘다. 복초점 렌즈는 수면에 떠 있는 먹이를 탐색하면서 동시에 물속에 있는 굶주린 포식자들의 기습을 방지하기 때문에 네눈박이물고기에 아주 유용하다.
 
완전히 물속에 적응한 시각에서 공기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시각이 창발되자 눈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량이 500만 배 증가했다. 틱타알릭 같은 물고기는 단순히 눈만 물 밖으로 내미는 것만으로도 강변에 있는 커다란 애벌레와 벌레를 찾는 시각 능력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공기를 통해 보는 시각은 데본기 말에 강력한 선택합력으로 작용했다.
3억 8500만 년 전의 육기어류(왼쪽)에 비해 3억 3000만 년 전의 육상 네발동물의 눈(그림에서 흰색 원)은 세 배나 커졌다.

3억 8500만 년 전의 육기어류(왼쪽)에 비해 3억 3000만 년 전의 육상 네발동물의 눈(그림에서 흰색 원)은 세 배나 커졌다.

 
지느러미 줄 대신하여 발가락이 창발
맥아이버의 연구는 전통적인 예측과 크게 어긋난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동물의 눈은 육지로 올라온 후에 커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맥아이버 연구팀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눈은 네발동물이 육지로 올라오기 전에 커진 것이다.
 
물에 살던 생물이 육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수분 증발을 막아야 하므로 피부가 두꺼워져야 한다. 또 중력으로부터 머리와 내장을 보호하기 위해 두개골·갈비뼈·다리뼈가 알맞게 진화해야 한다. 또 목이 생겨야 하고 심장의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부에나 비스타’ 이론은 물고기가 육상 진출을 하기 위한 온갖 변화를 하는 데 있어서 눈이 활강줄 역할을 했다고 제안한다. 더 멀리 더 많이 더 잘 볼 수 있는 커다란 눈이 등장하자 지느러미를 대신하여 네 다리가 발달되었고 지느러미 줄을 대신하여 발가락이 창발됐다는 것이다.
 
발가락 역시 육지로 올라오기 전에 물속에서 진화하기 시작했다. 판데리크티스는 지느러미 안쪽에 단순하고 짧기는 하지만 이미 발가락이 있었다. 이후 완전히 발가락이 형성되자 육지로 이동하는 게 한결 쉬워졌다.
 
척추동물들은 커다란 눈이 생긴 다음에야 처음으로 먼 거리를 탐지할 수 있었다. 먹잇감에 성공적으로 접근하려면 뒤에서 덮치는 것 같은 매복공격을 계획해야 한다. 먹잇감들이 자기 앞에서 접근하는 포식자를 발견하고 피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먼 거리 시력의 기원은 물고기와 네발동물의 공통조상에서 기원했다. 그 공통조상은 틱타알릭 같은 발달한 육기어류의 일원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이전에는 그 어떤 물고기도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해 모험을 감행한 조상 물고기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하지만 먼 거리 시력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 어떤 조상 물고기도 모험하지 못 했을 것이다. 먼 거리 시력의 발생은 우연이었다.
 
 
가오리보다 고등어가 사람에 가까워

우리가 무심코 물고기라고 부르는 어류는 매우 다양한 동물의 집합체다. 현재 등재된 물고기는 57목 482과 3만 2100종에 이른다. 이것은 나머지 척추동물(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물고기는 크게 무악어류와 연골어류 그리고 경골어류로 나눈다. 턱이 없다는 뜻인 무악어류에는 115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칠성장어와 먹장어를 볼 수 있다. 연골어류는 상어·가오리·홍어처럼 연골로 이루어진 어류다. 약 1300종 정도가 있다. 가장 많은 종류는 뼈가 단단한 경골어류인데 3만 1000종에 달한다. 그러니까 어류는 거의 경골어류라고 보면 된다. 경골어류는 다시 조기어류와 육기어류로 나뉜다. 조기어류는 지느러미에 부챗살 같은 줄기가 있다. 육기어류의 지느러미는 육질 덩어리 성분으로 되어 있다. 횟집 접시에 올라와 있는 물고기의 등지느러미를 생각해보자. 지느러미에 부챗살 같은 줄기가 있던가? 있다. 모두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물고기는 조기어류라고 보면 된다. 연골어류와 경골어류는 절대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그 둘의 차이는 포유류와 조류만큼이나 크다. 경골어류인 고등어는 연골어류인 가오리보다는 차라리 사람에 더 가깝다. 




이정모 서울 시립과학관장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다.안양대 교수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역임. 『달력과 권력』『공생 멸종 진화』등을 썼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