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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성과 보려는 조급증 버려야 창업 생태계 산다

중앙선데이 2017.03.26 01:04 524호 16면 지면보기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 안 바꾸면 미래 없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디캠프에서 열린 KAIST 창업석사 설명회. 최근 들어 대학가에서 창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창업을 가르치는 석사 학위 과정도 생겼다. 김경빈 기자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디캠프에서 열린 KAIST 창업석사 설명회. 최근 들어 대학가에서 창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창업을 가르치는 석사 학위 과정도 생겼다. 김경빈 기자

지난 14일 오후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지 캠퍼스 부속 1동 앞. 건물 출입문엔 ‘미래창조기업 i-KAIST(아이카이스트)’란 문구가 있다. 인터폰으로 직원을 호출하자 운영지원부 소속 한 직원은 “대표가 안 계셔서 뭐라고 할 말이 없다”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주차장엔 차 한 대만 달랑 주차돼 있다. 이 회사 김성진 대표는 지난해 10월 100억원이 넘는 사기 혐의로 구속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지금도 홈페이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방문한 창조경제 간판 기업’이라고 소개한다. 또 세계 최초로 개발한 65인치 멀티터치 테이블, 20여 개국 특허를 받은 스마트 칠판 등은 현재 충남 세종시를 비롯해 200여 개 학교의 수업시간에 교육용으로 쓰이고 있다고도 했다.

파탄 맞은 창조벤처 1호와 KAIST
기술만으로 ‘죽음의 계곡’ 못 건너
정부돈은 자생력 키우는 데 한계
기술·경험·자본 결합엔 시간 필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스마트교육 선도학교로 지정된 세종시 참샘초등학교 스마트교육 담당자는 “지난해 11월 이후 서비스 이용이 중단됐다. 이달 말께 다른 업체 제품으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 회사의 지분(49%)을 가진 KAIST는 이 회사 상호에서 ‘KAIST’를 빼라고 요구하고 있다. 윤준호 KAIST 산학협력단 소속 기술사업화센터장은 “상호사용 금지 소송을 내는 한편 주식을 장외시장에 내다 팔 계획”이라고 말했다. 창조경제를 대표한다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과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전사를 양성한다는 대학의 관계는 현재 파탄을 맞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걸까. 대학에선 교수와 학생이 실험실 등에서 연구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 이런 기술을 확보한 교수나 학생, 기술의 가치를 알아본 외부인이 이 기술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거나 아예 이 기술을 내다 판다. 창업하는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구글 같은 기업과 스탠퍼드대학의 관계도 이렇다. 아이카이스트는 2011년 창업해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부 여러 부처로부터 기술 인증을 받았다. 대통령·국무총리도 찾아왔고, 중국 등 외국 정부 관계자들과 협약도 체결했다. 김성진 대표는 지난해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유명 투자자문회사 요즈마그룹과 함께 나스닥(미국 주식시장) 상장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목표는 이 회사 기술은 믿을 만하며, 향후 시장에서 통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보여주려 한 것이다. 하지만 돈에서 막혔다. 일부 투자자는 김 대표를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창업이란 생태계 안에 대학이 있다. 김병윤 KAIST 창업원 원장(물리학과 교수)은 “새로운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대학,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화할 수 있는 경험을 갖춘 스타트업, 기술의 미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지닌 벤처캐피털(VC·창업투자회사) 등이 생태계를 이루며, 이들이 상호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게 창업 생태계”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1999년 스탠퍼드대 전자공학과 조교수 시절 실리콘밸리에서 노베라 옵틱스란 광통신 회사를 창업해 2008년 회사를 매각할 때까지 9년간 벤처의 주기를 경험한 적이 있다. 그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든 어디든 창업 생태계는 철저히 시장을 기반으로 한다. 앞으로 돈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회사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투자가 몰린다. 그런데 한국에서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창업 생태계엔 빠진 구멍이 많다”고 말했다. 대학을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은 기술은 있으나 대체적으로 사업화한 경험이 부족하며, VC는 기술을 알아보는 안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상당수 스타트업이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생존을 위해 버텨내야 할 고통의 기간)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한국의 창업 생태계에선 정부의 비중이 크다. 올 한 해 동안 중소기업청·미래창조과학부 등 6개 부처가 6158억원을 창업에 지원한다. 창업교육·창업 멘토링이나 시설·공간 제공은 물론 판로 개척도 해 준다. 대학에 대해선 중소기업청이 전국 40개 대학을 창업선도대학으로 뽑아 922억원을 준다. 이들 대학은 초기 단계(창업한 지 3년 이내) 창업자를 발굴해 시제품 개발, 지식재산권 출원·등록, 마케팅 활동 등에 소요되는 자금을 지원한다. 창업 초기 단계 기업에 정부가 대학을 통해 지원하는 돈은 1억원 정도 된다. 이런 돈마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 K대학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창업기업 대표는 “요즘은 사업 초기 단계에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작게는 1000만원부터 몇 억원까지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대형 투자를 받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정부 지원금으로 연명하는 업체도 있다. 자동차 관련 신생 업체 김모 대표는 “대학 내 창업보육센터는 입주업체로부터 임대료를 따먹고, 업체들은 정부 지원사업에 도전해 지원금을 따먹는다”며 “정부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지원책을 내놓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창업 지원금이 사업 수단이 아니라 목표가 된 것이다.
 
정부 지원금이 끼친 영향 중엔 긍정적인 것도 있다. 손홍규 연세대 창업지원단장은 “수년간 정부 지원이 이어진 결과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창업 환경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며 “창업 아이템을 매각하고, 다시 재창업하는 현상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3학년을 다니다 창업을 위해 휴학 중인 김병훈(29) ?에이프릴스킨 공동대표는 이 대학의 창업휴학 제도와 창업지원센터의 공간 지원 덕을 봤다. 그는 재학 중 커플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이를 매각해 돈을 벌었고, 다시 2014년 11월 10~20대 전문 코스메틱 회사를 창업해 지난해 매출 350억원(고용인원 106명)을 올렸다. 김 대표는 “고교에 다닐 때부터 창업에 관심이 있었다. 솔로일 때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을, 커플일 때 커플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사업을 벌였다. 소비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쫓다 창업 아이템으로 화장품을 잡았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창업선도대학으로 선정된 가천대 박방주 창업지원단장(전자공학과 교수)도 “창업을 바라보는 대학의 문화도 상당히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박 단장은 “수강 인원을 제한해야 할 정도로 창업과목 수강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여기엔 갈수록 어려워진 대기업 취업도 원인일 것이다. 그렇지만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창업에 도전해 보겠다는 의식도 분명 강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스타트업이 성장해 돈을 번 다음 성공한 경험을 후배 스타트업에 전달하거나 그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자로 나서는 연쇄창업자(Serial Entrepreneur)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우리의 한계다. 사업하는 입장에서 참고가 될 만한 롤모델이 많지 않다 보니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익명을 요구한 다수의 대학 창업 관계자들은 “정부도, 대학도 마찬가지로 단기간에 성과를 보려는 조급증부터 버렸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특히 5년 대통령 임기 내 ‘창조경제’ 같은 국정지표의 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이려다 보니 지원은 많이 하는 게 사실이지만 정량적 실적 수치를 요구하는 경향도 강하다는 것이다.
 
 
취재팀
강홍준 사회선임기자, 강기헌 기자



자문단
권대봉 고려대 교수(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 김도연 포스텍 총장, 김세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노동시장), 김진영 건국대 교수(경제학), 김태완 한국미래교육연구원장(전 한국교육개발원장), 김희삼 GIST 교수(기초교육학부), 박준성 교육부 기획담당관, 이민화 KCERN(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혁신), 이주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교육부 장관),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교육학), 이화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원장(교육과정),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교육학), 정철영 서울대 교수(산업인력개발), 최영준 연세대 교수(행정학), 한유경 이화여대 교수(교육학)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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