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닷물 머금은 입안의 수류탄, 회가 제맛

중앙선데이 2017.03.26 01:02 524호 18면 지면보기
제철의 맛, 박찬일 주방장이 간다 <3> 창원 진동면 미더덕마을
취재 후기 먼저 소개한다. 아마도,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 같아서다. 현지에서 미더덕을 조금 부쳤다. 아내가 받아서 요리한 후 사진 한 장을 스마트폰으로 보내왔다. 

물에서 사는 더덕이라 미더덕
껍질 손으로 까기 너무 힘들어
외국인 노동자 구하기도 어려워
서울선 찌개나 찜으로만 먹어
“바닷물 드시고 맛있다 하니… ”



미더덕찜이다. 통통하고 살진 미더덕이 통째로 들어 있었다. 이런 멘트가 붙어 있었다. “미더덕 육즙이 아주 맛있네.” 아아, 낭패다. 미리 알려줄 걸. “여보, 미더덕 안에 든 건 육즙이 아니고 실은 바닷물이야.” 미더덕을 씹고 입천장이 홀랑 벗겨지는 불상사도 일어난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수류탄이 터졌다고 우스개를 한다. 정말 물 안 빼고 찜한 미더덕은 수류탄 같다.

 
1 오종근 선장이 양식장에서 그물에 끌려 올라오는 미더덕을 살펴보고 있다. 2 생미더덕, 껍질을 벗겨 놓은 미더덕, 오만둥이(왼쪽부터). 3 미더덕의 껍질을 벗기는 모습. 전용 칼로 미더덕에 대고 밀듯이 돌려 깎는다. 4 어장에 떠 있는 작업장. 이곳에는 그물을 끌어 올리는 기계가 설치돼 있다. 김경빈 기자

1 오종근 선장이 양식장에서 그물에 끌려 올라오는 미더덕을 살펴보고 있다. 2 생미더덕, 껍질을 벗겨 놓은 미더덕, 오만둥이(왼쪽부터). 3 미더덕의 껍질을 벗기는 모습. 전용 칼로 미더덕에 대고 밀듯이 돌려 깎는다. 4 어장에 떠 있는 작업장. 이곳에는 그물을 끌어 올리는 기계가 설치돼 있다. 김경빈 기자

경남 창원시 진동면 고현리. 아예 미더덕마을이라고 부른다. 공식 길 이름도 ‘미더덕로’다. 전국 생산량의 70%가 넘게 이 작은 마을에서 나온다. 밤을 도와 차를 달렸다. 새벽 다섯 시. 어촌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일출도 멀었는데 벌써 오종근 선장(61) 부부가 배를 몰 차비를 한다. 아침밥은 믹스 커피 한 잔이다. 작은 작업선에 시동을 넣었다. 바람이 사납게 달라붙는다. 속력을 높인다. 선장 부부는 말이 없다. 묵묵히 어장을 향해 키를 놀린다. 금세 부표와 작업장이 떠 있는 현장에 도착한다.
 
미더덕은 옛 마산인 이 진동만에서 잘 자란다. 경남 인근에 생산지가 여럿 있지만 유독 이 지역에서 잘 붙는다.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수온과 먹이로 추정하고 있다. 미더덕은 양식이지만 반 자연산이다. 그물에 붙이고 따로 먹이를 주는 일이 없다. 가끔 수온에 맞춰 그물을 올리고 내리는 일 같은 큰일이 좀 있다. 별일이 없으면 때가 되고 수확을 하면 된다.
 
“물이 좋아서 미더덕이 좋지예. 때 되면 털고(수확하고) 팝니다. 매년 얼마나 미더덕이 붙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올해는 상당히 안 좋습니다.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밤에 불을 환히 켜놓고 있으니까 미더덕이 잠을 못자서 작은가 하고 그쪽을 의심한 적도 있고. 하여튼 힘든 해가 많습니다.”
 
해거리 비슷한 현상도 있다. 풍어와 흉어가 반복된다. 올해 흉어이니 가격이 오를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고 한다. 평소보다 조금 싸게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경기 탓이다. 우울한 경제 전망은 이 한적한 어촌에도 화두다.
 
경기 안 좋아 흉어인데도 가격 낮아
오 선장이 해상에 떠 있는 작업장 위의 발동기를 돌린다. 어장에 드리운 그물이 줄줄이 감겨  올라온다. 미더덕이 알알이 맺혀 있다. 씨알이 굵고 크다. 아내 김옥화(51)씨와 함께 오 선장은 연신 미더덕을 바닷물에 씻어 배로 옮겨 나른다. 미더덕은 물에서 사는 더덕이라는 뜻의 명명이다. 과연 더덕처럼 길쭉하고 겉이 울퉁불퉁하다. 뿌리 같은 기다란 꼬리가 있다. 거친 껍질을 까고 꼬리를 잘라내야 비로소 상품성 있는 미더덕이 된다.
 
“원래 오만디(오만둥이)가 더 인기가 있었어요. 미더덕 껍질을 깔 줄 몰랐으니까. 오만디는 껍질째 먹을 수 있지만 미더덕은 안 씹히거든. 발로도 까 보고, 도루코 칼로도 까고 그랬지예. 하여튼 미더덕은 나중에 출세한기라.”
 
요즘은 미더덕 전용칼이 있다. 일반칼을 연마기로 갈아서 넓적하게 가공한다. 그걸 미더덕에 대고, 밀듯이 깎아야 잘 벗겨진다. 이때 예민한 감각이 중요하다. 칼이 엇나가면 미더덕 속껍질이 터져서 상품성이 없어진다.
 
“칼을 오이 벗기듯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 깎다가 지금처럼 돌려깎기가 정착됐습니다. 돌려 깎으니까 훨씬 속도가 붙는 기라. 남자가 더 잘 깝니다. 엄지에 힘이 있어야 칼을 밀거든.”
 
오 선장의 설명이다. 미더덕은 껍질을 깠느냐 안 깠느냐에 따라 가격이 크게 차이난다. 안 깐 것은 3kg에 5000원 선이고, 깐 것은 3만원 가까이 한다. 대여섯 배나 차이 난다. 미더덕의 가치는 순전히 사람의 손길에서 나온다. 바다 작업 두 시간 하고 들어와서 부부는 하루종일 앉아서 미더덕 까는 게 일이다. 요즘은 바닷일에도 외국인 노동자가 흔한데, 이쪽 일은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다. 너무 힘들어서다.
 
“이제 일손도 마 없습니다. 구십 넘은 할매들이 호경기 때 마이 깠지요. 이제 빌릴 손이 없습니다. 큰일입니다.”
 
자동화 시설을 만들려는 시도도 많았다. 매번 실패했다. 우리가 먹는 미더덕은 진짜 고단한 노동의 산물이다. 톡 터지는 바다의 향 너머 어부의 거친 손길이 있다.
 
고현리 마을에는 서른 집 정도 미더덕을 한다. 모두 바다에서 어장을 꾸릴 면허가 있어야 한다. 면허를 얻으려면 돈을 내기도 하는데 200m짜리 그물 10줄이 있는 한 헥타르(ha)가 7000만원 선에 거래된다. 작업하는 가구가 적어서 모두 가깝고, 한 식구처럼 지낸다. 김형수 어촌계장을 필두로 똘똘 뭉쳐 지낸다. 안 그럴 수도 없는 게 미더덕의 생산과 판매가 마을의 흥망을 쥐고 있는 까닭이다.
 
이들은 오만둥이와 미더덕을 같이 한다. 둘은 사촌 정도 된다. 우리가 많이 먹는 건 역시 오만둥이다. 유통이 쉽고 값도 싸다. 둘은 생산시기가 다르다. 5월에 그물을 내리면 미더덕이 6월에 알을 슨다. 오만둥이는 7월에 이미 제법 커져서 수확하고 9월까지 이어진다. 미더덕은 한참 더 자라야 한다. 겨우내 커서 3월이 되어야 수확이 시작된다.
 
“오만디는 냉동하고 가공해서 연중 소비합니다. 미더덕 생물은 오직 3~4월에서 6월 초까지만 대개 볼 수 있고, 그 외는 가공한 거나 먹을 수 있지예. 미더덕이 귀하고 비싸지만 오만디도 맛있습니다. 잘 봐주소(웃음).”
 
오 선장이 작업한 미더덕을 하나 내민다. 칼로 껍질을 벗긴 놈이다. 배를 푹 찔러 물을 빼내고 그대로 씹어먹는다. 머리 위쪽을 조금 남겨두고 까는데, 오독거리는 맛이 있다. 속살이 풍부해서 깊은 향을 낸다. 은근하고 섬세하다. 미더덕을 가장 맛있게 먹는 법은 역시 회다. 자꾸 집어먹게 된다. 오도독, 후우. 후우는 한숨 소리다. 맛있어서 내는 탄식이다. 미더덕은 생명력이 강해서 깐 채로 도시로 배송한 후에도 꽤 살아 있다. 배송해서 받으면 회로 먹을 수 있다.
 
“미더덕 요리가 미더덕찜 말고는 개발된 지 오래 안 되었어요. 덮밥은 한 15년 됐나? 오만디 장아찌도 20년 안 됐을 거고. 미더덕 젓갈도 유명한데 이것도 20년 좀 넘은 정돕니다. 그 전에는 이 동네가 도다리, 대구, 피조개 해서 돈을 잘 벌었어요. 생선 팔면 정부미 포대에다가 돈을 넣어서 짊어지고 왔어요. 해군 군함도 왔다갔다 하고. 옛말로 니나노집이라고 술집도 여럿 있을 만큼 흥청거리던 동넵니다. 미더덕 같은 거 잘 안쳐다봤지(웃음).”
 
흔히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니는’ 그런 어촌이었다는 말씀이다. 물이 뒤집어지고 고기가 잘 안 잡히면서 미더덕과 오만둥이가 각광을 받게 된 셈이다. 인생사, 참 알 수 없다. 버려지던 것들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미더덕은 암수가 한몸이다. 입수공과 출수공이 따로 있다. 입과 항문 역할을 한다. 입이 얼마나 야무진지 오 선장 말대로 “와리바시(나무젓가락)를 넣으면 꽉 물고 놓지 않을 정도”다. 그 입이 쫄깃한 맛을 내므로 회로 먹을 때 자르지 않고 같이 낸다. 미더덕은 멍게보다 훨씬 기르기 쉽다고 한다. 덜 까탈스럽다. 멍게는 조류와 외부 독소에 민감하다.
 
고기 안 잡히자 각광 받기 시작
같은 미더덕이라도 품질 차이가 있다. 겉모습으로만 봐서 모른다. 갈라 보면 또 다르다. 살이 꽉 찬 놈은 속칭 살미더덕, 물이 꽉 찬 건 물미더덕이라고 한다. 서울사람들은 회나 덮밥을 안 해먹으니 찌개나 찜에 넣는 작은 걸 선호한다. 톡톡 터지는 미더덕의 몸통 내 바닷물을 즐기고 있는 거다.
 
“뭐 좋다하니까 뭐라 할 수 없지만 바닷물 드시고 맛있다 하니 참 할 말은 없습니다.”
 
오 선장 부부가 사람 좋게 웃으며 대꾸한다. 물을 빼지 않으면 양도 푸짐해 보이고, 짭짤한 맛이 있으니까 그냥 내는 방식이 도시에 정착한 게 아닌가 한다. 하여튼 먹는 방법은 자유지만, 적어도 알고 먹으면 더 좋겠다. 물론 이 지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미더덕으로 할 수 있는 요리는 계속 개발되고 있다. 장아찌도 좋고 젓갈을 담가도 맛있다. 가공품을 사도 되고 직접 만들 수도 있다. 싱싱한 놈으로 준비해서 마늘, 파 넣고 끓여서 식힌 간장에 담가 장아찌를 만들고, 젓갈은 잘 손질하여 미더덕 무게의 5~10% 정도의 소금을 넣어 냉장 숙성하면 된다. 향긋해서 입맛을 돋우는 효과가 크다. 미더덕은 죽을 끓여도 아주 맛있는데, 밥맛 잃은 환자에게 그만이란다.


고현횟집에서 미더덕덮밥(맨 위)을 주문하면 미더덕 회와 부침개가 서비스로 나온다. 아랫쪽은 오만둥이 장아찌.

고현횟집에서 미더덕덮밥(맨 위)을 주문하면 미더덕 회와 부침개가 서비스로 나온다. 아랫쪽은 오만둥이 장아찌.

오 선장 부부가 소개한 마을의 한 식당으로 갔다. 진동고현횟집이다. 가게가 정갈하다. 교자상에 넉넉하게 미더덕 요리를 담아낸다. 미더덕을 넣은 부침개는 무료다. 돈 받고 팔라고 해도 그저 공짜로만 낸다. 일일이 배 갈라 물 빼고 손질한 회 접시를 서비스로 곁들여 주는 미더덕 덮밥(1만원)이 인기 있다. 미더덕살만 일일이 발라서 다진 후 참깨, 김, 참기름을 넣어 비벼 먹는다. 원래는 자연산 회를 주로 파는 집이다. 추천할 만한 집이다.(055-271-2454)
 
 
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라는 별칭이 있는 인물. 음식 칼럼을 오랫동안 써왔다. 딱딱한 음식 글에 숨을 불어넣는 게 장기다. 청담동에서 요리사 커리어를 쌓았고, 지금은 서교동과 광화문에서 일한다.우리나라에서 나는 재료로 서양 요리를 만드는 일을 국내 최초로 시도한 일로 업계에서 유명하다. 이지면에서 상식을 비틀고 관습을 뒤집는 제철 재료와 음식이야기를 해볼 참이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