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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낫게 실패하라

중앙선데이 2017.03.26 00:02 524호 32면 지면보기
저자: 이승한출판사: 페이퍼로드가격: 1만5800원

저자: 이승한출판사: 페이퍼로드가격: 1만5800원

콘텐트의 시대, 창작자들은 누구나 대박 작품을 꿈꾼다. 연예인들은 높다란 별이 되어 대중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누구나 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성공한 사람은 어떻게 성공한 것일까. 실패한 작품에서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예능, 유혹의 기술』

책이나 DVD 같은 물질적 형태로 쉽게 다시 접할 수 있는 문학이나 영화와 달리, 방송 프로그램은 그저 지나가는 한 때의 신기루다.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최근 들어 다시보기 기능 같은 것이 활성화됐지만, 매시간 수많은 채널에서 새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특별한 사연 없이 다시보기 버튼을 누르는 경우는 별로 없다. TV 프로그램 리뷰가 큰 맥락 없이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하지만 마니아·오타쿠가 주목받는 요즘이다. 강호에 숨어있던 고수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도 마찬가지다. 스물두 살 때 친구들과 아마추어 대중문화 비평 웹진을 만들었던 저자는 지금은 곁에 없는 작은 누나와 어릴 적부터 TV를 끼고 살아온 초절정 고수다. 각 방송사 인기 프로그램의 명멸 족보를 훤히 꿰고 있다.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프로그램과 코너 이름이 새록새록 부활한다. 덕분에 그가 들려주는 예능 프로그램 분석과 인물 이면사는 방대하면서 꼼꼼하기 이를 데 없고 그런 만큼 귀하고 흥미롭다.
 
예를 들어 방송인 유재석을 말할 때 “카메라 앞에만 서면 울렁증을 주체할 수 없었고 연예인도 수차례 그만두려 했지만, 불굴의 노력 끝에 모든 것을 극복하고 한국 최고의 방송인이 됐다”는 설명은 이제 누구나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평범한 설명을 뛰어넘어 ‘분석’한다. 유재석이 ‘유느님’이 된 비결에 대해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돋보이게 하는 포맷을 고안했고,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여 왔으며, 그 포맷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과정에서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포맷은 ‘유재석식 오합지졸물’이다. “찌질하고 못난 사람들이 모여서 좌충우돌하는 쇼”인데, 유재석이 남들과 다른 점은 “앞선 실패에서 쌓은 경험치를 교훈 삼아 조금씩 보완을 거치며 거푸 다시 시도를 해왔다는 것이다. “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라고 주장한 사뮤엘 베케트의 말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MBC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코너였던 ‘무리한 도전’은 유재석의 이런 끊임없는 실패와 보완 덕분에 비로소 ‘무한도전’이라는 히트 프로그램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유재석과 함께 MC로서 양대 산맥을 이뤘던 강호동이 복귀 이후 감각을 제대로 찾지 못하다가 ‘우리동네 예체능’으로 가까스로 자신을 추스를 수 있었던 이유, ‘황금어장’에서 ‘무릎팍 도사’에 밀려 5분 편성의 수모마저 겪었던 ‘라디오스타’가 어떻게 기사회생했는지도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약점’을 ‘특징’으로, 또 ‘무기’로 바꾸는 과정에서 저자는 “2등인 걸 숨기지 마라, 2등이었던 걸 잊지 마라”고 일갈한다.
 
KBS ‘해피 선데이’의 ‘1박 2일’을 성공적으로 이끌다가 tvN으로 이적한 나영석 PD의 성공기 역시 눈길을 끈다. 저자가 분석한 비결은 “더 화려하게 보여주기 위해 더하는 대신 본질을 잘 보여주기 위해 나머지를 제하는 뺄셈”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1박 2일’에서 게임을 뺀 것이 ‘꽃보다 할배’고, ‘꽃보다 할배’에서 여행을 뺀 것이 ‘삼시세끼’라는 것. “나영석은 가히 집착적으로 회의에 매달리는 사람이다. 그것도 뚜렷하게 정해진 주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제약 없이 각자 자유롭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종류의 회의.(…)혹시나 팀에서 연차가 낮은 스태프가 주춤거리며 말을 못할 것을 염려해 상석을 피해 앉고, 말이 없으면 일부러 말을 걸어서라도 의견을 묻는” 덕분에 ‘삼시세끼’는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글 머리마다 방송가 이야기를 넘어 애플과 삼성, 2인승 자동차 ‘포투’와 서서 마시는 ‘스탠딩 커피’ 등 다양한 사례를 집어넣어 시야를 넓게 해주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출판사가 이 책의 분야를 ‘문화예술’이 아니라 ‘경제경영’으로 구분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현실에서 곱씹고 활용할 대목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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