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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하루에 몇 편까지 봤니?

중앙일보 2017.03.26 00:01
하루에 극장에서 영화를 9편이나 봤다고? 최근 같은 영화를 여러 번 재관람하는 ‘N차 관람’과 더불어, 하루에 영화를 두 편 이상 관람하는 ‘몰아 보기’가 극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내용이 쭉 이어지는 TV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두 시간씩 다른 장르와 내용과 인물들을 연달아 습득해야 하므로 여러 편을 극장에서 몰아 본다는 건 상당한 정신적 노동이다. 하지만 두 편은 기본, 조조부터 심야까지 극장에서 하루를 보내는 몰아 보기 관객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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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차 관람’ ‘몰아 보기’ 등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나면서 영화 마케팅 차원에서 이들을 주목해야 한다.” 지난 1월 열린 ‘2017 상반기 CGV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에서 CGV리서치센터 이승원 팀장의 말이다. 몰아 보기란 하루 동안 극장에서 영화를 2회 이상 관람하는 걸 뜻한다. 지난해 하루 2회 이상 영화를 관람한 관객 수는 약 50만 명(CGV 집계 기준). 영화제 기간 다양한 영화를 보려는 ‘씨네필’에 국한됐던 관람 방식이 일반 관객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극장가의 새로운 관람 트렌드,
영화 몰아 보기

 
최근 각종 SNS에서도 여러 장의 영화 표 ‘인증샷’과 함께 “주말엔 역시 영화 몰아 보기죠” “좋은 영화들을 놓치기 싫어서 오늘 4편을 몰아 봤다” 등의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극장에서 만난 직장인 김유진(34)씨는 “평소 극장에 자주 갈 수 없어서, 이왕 극장에 나온 김에 여러 편의 영화를 몰아 보는 편”이라며 “요즘 다양성 영화의 경우 워낙 빨리 극장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개봉했을 때 몇 편을 몰아 보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대학생 윤정옥(22)씨는 “세상엔 봐야 할 영화가 너무 많은데, 취업 준비 때문에 볼 시간이 부족하다. 영화를 하루에 몰아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자료=CGV리서치센터

자료=CGV리서치센터

몰아 보기로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마음 편히 극장을 찾는 ‘혼영족(혼자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이나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종일 즐길 거리를 찾는 이들의 소비 형태”라며 “영화 관람은 다른 문화 생활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드는 편이고, 여러 편을 보더라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어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흥행작보다 취향 따라 몰아 보기
지난해 CGV리서치센터에서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인 하루 최다 영화 관람 편수는 9편이었다. 대구에 사는 A씨는 지난해 2월 27일 ‘귀향’(조정래 감독) ‘남과 여’(이윤기 감독) ‘쇼생크 탈출’(재개봉,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 그리고 ‘2016 아카데미 기획전’으로 ‘캐롤’(토드 헤인즈 감독) 두 번, ‘대니쉬 걸’(톰 후퍼 감독) ‘사울의 아들’(라즐로 네메스 감독) ‘스포트라이트’(토마스 맥카시 감독) ‘트럼보’(제이 로치 감독) 등 총 9편을 관람했다. 재미있는 건 A씨의 관람 영화가 이 시기 흥행작인 ‘검사외전’(이일형 감독) ‘데드풀’(팀 밀러 감독) ‘주토피아’(바이런 하워드·리치 무어 감독)가 아닌 다양성 영화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영화 '단지 세상의 끝'.

메가박스에서 1인 하루 최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의 경우도 마찬가지. 최근 메가박스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B씨는 지난 2월 중 하루 동안 ‘단지 세상의 끝’(1월 18일 개봉, 자비에 돌란 감독) ‘23 아이덴티티’(2월 22일 개봉,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문라이트’(2월 22일 개봉, 배리 젠킨스 감독) ‘재심’(2월 15일 개봉, 김태윤 감독) ‘그레이트 월’(2월 15일 개봉, 장이머우 감독) 그리고 재개봉 전 열린 ‘라빠르망’(1996, 3월 9일 재개봉, 질 미무니 감독) 스페셜 GV(관객과의 대화) 등 총 6편을 봤다. B씨도 상업영화보다 다양성 영화 관람이 많았고, 직접 GV를 찾아보는 관람 형태였다. 이는 영화 몰아 보기에 적극적인 관객일 경우, 박스오피스 순위와 입소문보다 자신이 선호하는 영화 취향이 뚜렷하고 다양성 영화를 찾아보는 관객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로 풀이될 수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무엇을 볼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부터 굉장히 꼼꼼하게 신경 쓴다”며 “이들에겐 같은 영화를 여러 차례 반복해 보는 것만큼, 자신이 선택한 작품을 관람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보고 또 보고, ‘N차 관람’과의 연결 고리
몰아 보기는 N차 관람과 연결된다. A씨가 ‘캐롤’을 하루에 두 번 본 것처럼, 몰아 보기 할 영화를 고를 때 본 영화 또 보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요즘엔 2D와 3D, IMAX, 4DX,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 등 상영 포맷이 다양해 한 편의 영화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2D로 본 ‘라라랜드’(2016, 데이미언 셔젤 감독) 음악이 좋아서 바로 돌비 애트모스 버전으로 다시 관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것. ‘로건’(3월 1일 개봉, 제임스 맨골드 감독) 상영관에서 만난 대학생 강성렬(25)씨는 “벌써 ‘로건’을 여섯 번 봤다. 매번 같은 부분에서 눈물이 나는 게 신기해서 계속 보게 된다”며 “IMAX로 보고 나서 바로 4DX로도 봤는데 느낌이 다르더라. 하루 종일 극장에서 ‘로건’만 보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자료=CGV리서치센터

자료=CGV리서치센터

극장가에 몰아 보기와 N차 관람은 이제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요즘 관객은 좋아하는 영화의 피 튀기는 각도까지 나노 단위로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한 장면도 무심코 스쳐 지나가게 놔두지 않는다”며 “영화 한 편을 두고 재미있는 ‘놀이’를 하려는 관객에게, N차 관람과 몰아 보기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몰아 보기를 완벽하게 즐기는 법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영화 몰아 보기’를 하려는 당신을 위한 사소하지만 유용한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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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보다 평일을 선택할 것 관객이 몰리는 주말엔 흥행작의 스크린 수가 평소보다 더 늘어난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골고루 보고 싶다면 평일을 이용하자. 다양성 영화인 경우, 주말엔 상영관이 아예 없을 수도 있으니까.
 
영화를 분류하라 그날의 영화 주제를 정하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한국영화와 외화를 구분하거나, 애니메이션만 보는 식으로 말이다. 혹은 앤드루 가필드가 출연하는 ‘핵소 고지’(2월 22일 개봉, 멜 깁슨 감독)와 ‘사일런스’(2월 28일 개봉,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를 몰아 보는 등, 같은 배우의 작품별 변화를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
 
과욕은 금물 영화를 많이 보겠다는 욕심으로 영화와 영화 사이에 잠깐의 쉬는 시간조차 없이 예매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시간에 쫓겨 화장실에도 제대로 들르지 못하고, 바로 다음 영화를 봐야 할 수도 있으니까.
 
식사 거르지 말자 영화 한 편 봤을 뿐인데 진이 다 빠지는 경험, 누구나 해 봤을 거다. 몇 편의 영화를 몰아 보려면 그만큼 체력이 중요하다. 영화만 보지 말고 든든하게 챙겨 먹을 것, 자투리 시간엔 충분히 휴식을 취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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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사진=강경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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