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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시각각] 문재인, ‘천상클럽’을 아는가

중앙일보 2017.03.24 02:31 종합 34면 지면보기
강찬호논설위원

강찬호논설위원

문재인의 김종인 영입 시도는 지난해 한 번이 아니다. 4년 전에도 있었다. 18대 대선을 열흘 앞둔 2012년 12월 5일쯤 문재인이 김종인을 찾아왔다.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책사였던 김종인은 자신의 야심작인 ‘경제민주화’ 공약을 박근혜가 걷어차 실의에 빠져 있었다. 문재인은 “어려우신 상황을 안다. 내게 와달라”고 제안한다. 전쟁의 초절정기에서 적군의 전략가를 빼내 충격과 공포를 안기려 한, 정치공학의 극치다. 그러나 김종인은 “선거 와중에 주군을 버리고 적진에 갈 순 없다”며 거절했다.
 

김종인 이어 안희정도 ‘친문 패권’에 당해
보편의 광장으로 지지층 견인하는 용기를

4년 뒤인 2016년 1월, 문재인은 또다시 김종인을 찾아 사흘을 매달렸다. “당 대표자 안 해주면 못 나간다”며 무릎 꿇고 버텼다. 보다 못한 김종인 부인이 남편에게 “이렇게까지 하시는데 봐주라”고 했다고 한다. 새누리당을 떠난 지 오래라 부담이 없던 김종인은 결국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에 취임해 이해찬 등 친노 핵심들을 낙천시킨 끝에 4·13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다. 한데 총선 뒤 친문들의 입장은 확 달라졌다. “박근혜에 팽당한 노인네에게 일자리를 줬더니 호남에서 패배해 놓고 문재인만 씹는다”며 김종인을 맹공했다. 격분한 김종인은 “당이 친문 패권주의로 돌아갔다”며 금배지를 던지고 탈당했다.
 
안희정이 그제 새벽 1시에 “문재인은 사람을 질리게 한다”는 글을 올린 것도 김종인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물론 문재인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과 논쟁을 벌이는 정치인은 어김없이 ‘배신자’ ‘죽여버리겠다’ 같은 문자폭탄에 도륙을 당한다는 점, 또 문재인이 이런 문자폭탄을 막지 않고 오히려 “정치인은 문자테러도 받을 줄 알아야 한다”고 감싼 점은 ‘패권주의’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박영선·박용진·이철희 등 안희정 편에 선 의원들은 요즘 “천상클럽에 가입했다”고 말하고 다닌다. ‘반문질’ 토벌에 나선 ‘문빠’(문재인 열혈 지지층)들에게 찍혀 문자폭탄을 하루 1000건 이상(천상) 받는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는 뜻이다.
 
‘문빠’들의 이런 패권적 행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별세와 무관치 않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트라우마에 휩싸인 친노들은 문재인을 노무현의 후계자로 점찍고 ‘친문’의 이름으로 결집했다. 문재인에 대한 어떤 비판도 부당한 공격으로 여기며 ‘밀리면 끝장’이란 생각으로 문자폭탄 같은 집단린치로 전면전을 벌인다. 안희정처럼 같은 식구라도 문재인을 공격하면 예외가 될 수 없다.
 
결국 문제는 문재인이다. 민주당 사람들에 따르면 문재인은 친문들의 과격한 행태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는 정당한 분노라며 동의하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문자테러도 받을 줄 알아야 한다” 같은 말이 문재인 입에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문재인이 친노 내부에서 무슨 언행을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 자리가 걸린 대선판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피해의식과 방어적 폐쇄주의로 뭉친 특정 계파에 얹혀 자신의 잘못은 “네거티브 하지 말라”며 넘어가고, 비판하는 상대방을 문자폭탄으로 재갈 물리는 행태는 박정희 향수로 뭉친 박사모에 얹혀 불통과 독주를 일삼아 온 박근혜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핵심 지지층을 버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지지층의 독선적 행태에 끌려다니는 대신 보편의 광장으로 그들을 견인하는 노력을 하라는 것이다. 우선 측근들이 써준 원고부터 버리고,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얘기하는 버릇을 들이기 바란다. 그러면 ‘하룻밤 사이 말을 뒤집는 사람’ ‘남이 입력한 내용을 재생하다 스텝이 꼬인 사람’ 같은 비난은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 대신 문재인이 가진 철학과 콘텐트에 대한 투명한 평가가 가능해진다.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 불안하다고? 그러면 살던 대로 사시라. 대신 지지율만큼 비호감도도 치솟을 위험은 각오해야 한다. 대통령이 돼도 임기 내내 ‘대독·짝퉁·아바타 대통령’이란 비아냥을 달고 살게 될 공산이 크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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