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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 참사

중앙일보 2017.03.24 01:00 종합 28면 지면보기
한국 축구가 중국 창사에서 치욕을 당했다. 시종일관 무기력한 경기 끝에 중국에 무릎을 꿇었다. 한국축구가 중국에 패배한 것은 지난 2010년 2월 이후 7년1개월 만이다. 중국 원정에서 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 한국 선수들. [창사(중국)=뉴시스]

한국 축구가 중국 창사에서 치욕을 당했다. 시종일관 무기력한 경기 끝에 중국에 무릎을 꿇었다. 한국축구가 중국에 패배한 것은 지난 2010년 2월 이후 7년1개월 만이다. 중국 원정에서 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 한국 선수들. [창사(중국)=뉴시스]

무기력한 경기였다. 전술도 없었고, 투지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화살은 울리 슈틸리케(63·독일) 축구대표팀 감독을 향한다. 중국과의 경기에서 맥없이 패배한 이후 “슈틸리케 감독을 더이상 믿을 수 없다”는 축구팬들의 의견이 줄을 이었다.
 

월드컵 최종예선 6차전
주도권 쥐었지만 해결사 없어
경고 누적 결장 손흥민 공백 커
위다바오에 헤딩골 내주고 자멸
“슈틸리케 경질 마땅” 목소리 커져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40위 한국축구대표팀이 86위 중국에 무릎을 꿇었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중국은 ‘공한증(恐韓症)’을 깨뜨린 반면 한국은 ‘창사’에서 ‘참사(慘事)’를 당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의 긴장감이 높은 가운데 열린 양국의 축구경기. 한국은 23일 중국 창사의 허룽스타디움에서 열린 중국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6차전에서 0-1로 졌다. 전반 34분 코너킥 상황에서 중국의 위다바오(베이징 궈안)에 헤딩 결승골을 내주고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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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가득 메운 3만여명의 중국 관중들은 경기 전 애국가가 나올때 야유를 퍼부었다. 경기 전 한국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고 다짐했다. 이 문구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지난해 클린턴 후보를 지지하며 남긴 말이다. 하지만 한국은 품위있는 승리는 커녕 무기력한 경기로 일관했다. 경기 내내 답답한 흐름이 이어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중국과의 경기에 2부리그(K리그 챌린지) 부산 공격수 이정협을 선발 기용했다. 슈틸리케의 ‘황태자’라 불리는 이정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한국은 전반 중반 이후 주도권을 잡았지만 골을 터뜨릴 만한 스트라이커가 없었다. 단조로운 공격 패턴이 이어졌고, 경기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졌다. 중국의 압박에 밀려 패스도 원활하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후반전에 이정협을 빼고 장신 공격수 김신욱(전북)과 황희찬(잘츠부르크)을 기용했지만 끝내 중국의 골문을 여는데 실패했다.
 
한국은 이날 패배로 3승1무2패(승점10)를 기록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월드컵 본선 직행을 위해 ‘승점 22점’ 획득을 목표로 세웠지만 이날 패배로 본선 진출이 쉽지 않게 됐다. 그의 말대로라면 한국은 남은 4경기에서 전승을 거둬야한다. 카타르(6월13일), 우즈베키스탄(9월5일)과 2차례 원정경기를 남겨둔데다 껄끄러운 이란과의 홈경기(8월31일)도 남겨놓고 있다.
 
반면 중국은 2무3패 뒤 첫 승을 거두고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갔다. 한국은 중국과 32차례 맞대결에서 2패째(18승12무)를 당했다. 2010년 동아시안컵 0-3 패배 이후 7년 만에 두번째 패배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우승을 이끌었던 ‘명장’ 마르첼로 리피(이탈리아) 중국 감독은 이날 경기 내내 집요하게 한국의 뒷공간을 노리는 ‘롱볼 축구’ 를 펼쳤다. 중국은 전반에 수차례 오프사이드를 범했지만 결국 코너킥 상황에서 세트 피스로 한국 골망을 열었다. 지난해 10월 중국대표팀을 맡은 리피 감독은 한국전을 철저히 준비했다. 올해 초 두차례나 소집 훈련을 했고, 한국전 준비를 위해 자국 리그 일정도 조정했다. 중국은 한국을 이기기 위해 한번도 지지 않았던(4승4무) ‘약속의 땅’ 창사를 경기 장소로 정하는 세밀함도 보였다.
 
한국으로선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손흥민(토트넘)의 공백이 컸다. 후반전 기성용(스완지시티)의 중거리슛과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의 헤딩슛이 중국 골키퍼 정청(광저우 헝다)의 선방에 막힌 것도 아쉬웠다.
 
이날 패배로 슈틸리케 감독은 또다시 벼랑 끝에 섰다. 한국은 지난해 FIFA랭킹 100위권 밖인 시리아와 0-0으로 비겼고, 이란전에선 유효슈팅을 하나도 날리지 못한 채 0-1로 완패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11월 우즈베키스탄에 2-1로 진땀승을 거두면서 간신히 경질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이날 경기 후 인터넷 포털사이트엔 "슈틸리케 경질이 해답”이라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이천수 JTBC 해설위원은 "슈틸리케 감독은 1차전부터 중국전까지 늘 똑같은 전술을 고집했다”고 지적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2015년 아시안컵 준우승 이후 전술 발전이 없었다. 아직 시리아전이 남았지만 이제는 슈틸리케 감독의 퇴진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 총 책임자로서 죄송하다. 남은 4경기동안 변화를 통해 러시아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4일 귀국하는 한국대표팀은 28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리아와 최종예선 7차전을 벌인다.
 
한편 같은 조의 우즈베키스탄은 이날 시리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우즈베키스탄은 3승3패(승점 9점)를 기록했다. 
 
창사=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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