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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보통사람' 장혁, 이 악역 보통이 아니네...

중앙일보 2017.03.24 00:01
 지금 한창 그 끝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TV 드라마 ‘보이스’(OCN)의 형사 무진혁은, 뜨겁고 거칠고 사람 냄새 나는 배우 장혁(40)의 대표적 이미지를 한데 모은 캐릭터다. ‘보통사람’의 최규남은 정반대다. 1987년의 숨 막히는 한국 사회,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안기부 실장, 그것도 속내를 읽을 수 없는 표정이 더욱 섬뜩한 인물이다. 1997년 데뷔해 20년 넘게 연기를 해 왔지만 “앞으로 해 보고 싶은 역할이 많다”고 말하는 장혁. 그 이야기를 하는 얼굴에, 매일같이 아침 훈련을 빼먹지 않는 운동선수의 성실한 희열 같은 것이 스쳤다. 
사진=전소윤(studio706)

사진=전소윤(studio706)

한마디로 이 영화의 악역인데. 

“내겐 세 번째 악역이다. 법정 스릴러 ‘의뢰인’(2011, 손영성 감독)에서 용의자 한철민 역을 맡았고, 1398년에 벌어진 제1차 왕자의 난을 소재로 한 사극 ‘순수의 시대’(2015, 안상훈 감독)에선 미인계로 일을 꾸미는 이방원 역이었다. 악역을 연기하는 재미가 있다. 극 전체를 끌고 가는 틀 안에서 주인공이 움직여야 한다면, 그를 막아서는 안타고니스트는 훨씬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규남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차가운 무표정이다. 

“김봉한 감독님은 규남을 ‘벽’과 같은 인물이라 했다. 주인공 강성진을 막아서는 벽이고, 당시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벽인 셈이다. 그는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신념으로 뒤에서 모든 일을 꾸미고 조종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런 뉘앙스만 암시하는 것이 관객에게 훨씬 무서운 여운을 남길 거라 봤다. 그런 인물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무엇일까, 작은 표정과 몸짓으로 어떻게 그 여운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했다.”

보통사람 / 사진=영화사 제공

보통사람 / 사진=영화사 제공

 -규남은 어쩌다 그렇게 생각하는 인물이 됐을까. 

“‘촉망받는 젊은 검사 출신’이라는 설정인데, 처음에는 규남 역시 사회를 개선해 보고자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권력관계의 현실 안에서 조금씩 바뀌었을 테고, 그러다 지금과 같은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그가 사익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단지 그 행동이 사회를 위한 길이라 믿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에서 자신과 처지가 다른 사람들, 권력의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겠지.”

 
손현주와의 연기는 어땠나. 

“이 작품에 출연한 이유 중 하나가 (손)현주 형과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배우로서는 물론이고, 사람으로서 ‘나도 저 형처럼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신 분이다. TV 드라마 ‘타짜’(2008, SBS)에서 처음 만났을 때, 현주 형이 지금 내 나이 즈음이었다. 30대 초반이던 내게 현주 형이 ‘친구들 많이 만나라’고 했는데, 그 말뜻을 지금 더 잘 알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친구들에게 전화 걸어 ‘야, 나와!’ 하면 언제든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편하게 불러내기가 쉽지 않다. 다들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라 각자의 생활이 있으니까. 평소 현주 형은 자신이 살면서 느껴 온 것에 대한 좋은 말씀들을 참 많이 해 주신다.”

보통사람 / 사진=영화사 제공

보통사람 / 사진=영화사 제공

 -1997년 TV 드라마 ‘모델’(SBS)로 데뷔 후 20년 넘게 연기해 왔다. 

“그해 겨울, 당시 서울 여의도에 있던 SBS 사옥으로 오전 6시쯤 첫 대본 리딩을 하러 갔었다. 그때 맡았던 그 묘~한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한강에서 넘어온 바람과 추위, 그 느낌. 어릴 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운동선수를 꿈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연극부 친구 따라 서울예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면서 연기를 시작했다. 데뷔 초, 어떤 선배 배우가 나에게 연기 못한다며 화를 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 ‘난 지금껏 운동을 했지, 연기를 해 온 것이 아닌데 나한테 왜 이러지?’ 이런 생각만 들었다. 내가 배우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건,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였다. 작품과 캐릭터가 다 다르고, 그마저도 어떤 감독과 배우를 만나느냐에 따라 늘 새로운 경험이 된다. 그래서 지금도 연기가 매번 새롭다.”

 
‘장혁’ 하면 갖은 역경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헤쳐 가는, 정의로운 방랑자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을 연기한 적이 거의 없다. 가만 보면, 대부분 밖을 떠돌다 가정과 일상으로 돌아오는 캐릭터였던 것 같다. 배우란 직업 자체가 촬영이 시작되면 매일 집에 꼬박꼬박 들어갈 수 없지 않나. 그렇다 보니 가정과 일상에 대한 갈망이 커서, 자꾸 그런 역할에 끌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극적인 이야기, 그러니까 엇박자의 연기를 보여 줄 수 있는 인물을 좋아하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모두가 웃을 때 울고, 우는 게 당연한 상황에서 웃는, 그런 감정의 어긋남을 표현할 수 있는 인물 말이다.”

보통사람 / 사진=영화사 제공

보통사람 / 사진=영화사 제공

 -사람 장혁은 어떤가. 연기를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얼마나 달라졌나. 

“글쎄, 좋아하는 게 있으면 파고드는 편이다. 뭔가를 시작하면 적어도 10년은 하는 성격이라….”

 
뭔가에 싫증을 느껴 본 적 있나. 

“음, 7~8년 전부터 절권도 도장 대신 권투 도장에 나가는 것? 오랫동안 절권도를 하면서 액션 연기나 삶의 자세를 갖추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어느 시점이 되자, 도장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절권도를 가르쳐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전보다 땀을 덜 흘리게 되더라. 그래서 절권도는 혼자 단련하면서, 새로 권투 도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참 한결같아 보인다. 

“한 가지 일을 10년 이상 한다고 해서 똑같은 걸 반복하는 게 아니다. 그 안에서도 상황과 단계에 따라 매번 새로운 것이 펼쳐지지 않나. 연기 역시 그렇다. 그 안에 내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것들이 더 남아 있다고 느끼는 거지. 내가 특별한 게 아니라, 다들 각자 뭔가를 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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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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