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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보통사람' 손현주, 출구없는 매력이란 이런 것

중앙일보 2017.03.24 00:01
 그야말로 빠져들었다. 뚜렷한 소신이 담긴 한마디, 소탈한 매력, 적절한 유머 감각, 오픈 마인드로 현장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손현주(51). 그는 사진을 찍고 인터뷰하는 내내 ‘선배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확인시켰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을 이리도 담백하게 할 수 있는 선배가 과연 몇이나 될까. 별 이야기 아니라는 듯 툭 던진 한마디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촌철살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손현주의 출구 없는 매력에 확실히 갇혀 버린 것 같다.
사진=전소윤(studio706)

사진=전소윤(studio706)

-‘숨바꼭질’(2013, 허정 감독) ‘악의 연대기’(2015, 백운학 감독) ‘더 폰’(2015, 김봉주 감독) 등 주로 스릴러 장르에서 활약해 왔다. ‘보통사람’은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봤는데, ‘주위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배우’라는 제목이었다. 클릭해서 보니 내가 출연한 영화 이야기였다.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숨어 산다(숨바꼭질)’ ‘내가 죽인 시체가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났다(악의 연대기)’ ‘1년 전 살해당한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다(더 폰)’까지, 어쩌면 이토록 절묘하게 연결되던지 한참 웃었다. 돌이켜 보니 영화 속 내 주위에서는 진짜 이상한 일들만 벌어졌더라. 예전부터 인터뷰 때마다 ‘손현주표 스릴러’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너무 그쪽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게 아닌지 고민스럽더라. 하지만 ‘다른 장르에 출연해야겠다’는 강박 때문에 ‘보통사람’을 선택한 건 아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끌렸다.”

 
‘보통사람’ 시나리오의 첫 느낌은 어땠나. 

“극 중 배경인 1980년대 후반에 나는 대학생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그대로 느껴졌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건, 그때와 지금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잘 담겨 있어 더욱 애정이 갔다. 강성진에겐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오순도순 살고 싶다는 꿈이 있다. 그 꿈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와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영화를 통해 당시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 주고 싶었다.”

보통사람 / 사진=영화사 제공

보통사람 / 사진=영화사 제공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형사 역을 정말 많이 연기했다. ‘보통사람’의 성진도 강력계 형사다. 

-“실제로도 서울지방경찰청 명예 경찰관 직분을 수행 중이다(웃음). 극 중 성진은 평범함을 추구하는 형사다. 자기가 할 일만 딱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만 있다면 자신의 삶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러던 중 나라가 주목하는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면서 인생 자체가 흔들린다. 아마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성진은 늘 그렇듯 가족과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다. 사람 눈을 멀게 만드는 욕심과 권력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게 안타까울 뿐이지.”=

이번 역할도 거대 권력과 싸우면서 인간 본성을 마주하게 만드는 역할이다. 

“스릴 넘치고 아슬아슬한 것을 좋아한다. 약자가 절대 강자를 상대로 싸워 이기거나, 게임이 안 될 것 같은 싸움인데도 역경을 헤쳐 나가며 해결하는 이야기가 재미있더라. 그래서 지금까지 그런 캐릭터를 많이 맡아 온 것 같다. 사실 현실에서 그렇게 싸우기는 힘들지 않나. 영화나 TV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대리 만족해야지.”

보통사람 / 사진=영화사 제공

보통사람 / 사진=영화사 제공

‘보통사람’은 스릴러 장르는 아니지만, 역시나 몸으로 부딪히며 무언가를 밝혀내고 파헤치는 이야기다. 체력적인 부담도 컸을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는 기본적인 ‘합’으로 이뤄지는 액션보다 생활 액션이 많았다. 그래서 배로 힘들었다. 합을 맞추는 액션은 몇 달 동안 액션스쿨에서 연마하면 된다. 하지만 생활 액션은 합을 정확히 맞추면 티가 난다. 티 나지 않도록 하려다 촬영 현장에서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엔 최대한 합을 맞춘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다치지 않는 데 초점을 뒀다.”

 
영화를 보니, 체중이 는 것 같던데. 

“조금 늘긴 했다. 극 중에서 장발 스타일로 나오는데, 직접 머리를 길렀다. 1980년대 유행 스타일인 어깨 폭이 넉넉한 가죽 재킷에 통바지를 입어서 실제보다 조금 더 부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몸이 옷을 알아본다고, 촬영할 때 큰 옷을 입으니까 밥차에서 주는 식사가 더 맛있더라(웃음). 촬영 끝나는 날, 바로 머리카락을 잘랐다. 운동해서 살도 조금 뺐고.”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계속하면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연기도 마찬가지일 텐데.

 “익숙해지면 그만둬야지. 연기란, 익숙해지고 노련해지지 않으려 자꾸 밀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쉬운 시나리오는 절대 없다. 그래서 나는 시나리오 한 편을 오래 읽는 편이다. 일반 책은 쉽게 페이지를 넘기며 읽기도 하지만, 시나리오는 한 장면 한 장면을 천천히 머릿속에 그리며 경험하듯 본다. 어떤 제작자는 시나리오를 주고 나서 빨리 결정해 달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보니 놓치는 작품도 많다.”

보통사람 / 사진=영화사 제공

보통사람 / 사진=영화사 제공

무슨 일이든 한 번 결정한 것은 반드시 책임지는 성격으로 유명하더라. 

“배우로서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책임지려 한다. 어쨌거나 자신이 선택한 작품 아닌가. 카메라 밖에서 짜증내고 투덜대면 그게 스크린에 그대로 나타나는 법이다. 간혹 영화 개봉 무렵에 인터뷰나 홍보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배우들도 있다. 아니, 내가 나온 내 영화인데 누구더러 홍보해 달라고 하나. 당연히 본인이 해야지.”

 
멋있는 마인드다. 

“멋있는 게 아니라 당연한 거다. 나는 투정 부리지 않는 배우들이 오래간다고 본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본인이 선택한 부분에 대해서는 비겁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후배들이 비겁한 배우가 되지 않길 바란다. ‘왜 이렇게 촬영장에 일찍 불렀어.’ ‘나 언제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해.’ 그런 상황들이 그렇게 싫으면 배우 일을 하지 말아야지. 배우가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아 촬영이 1시간 늦춰지면 굉장한 손해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구든 체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니까. 약속을 잘 지키는 것도 관객이나 시청자에 대한 예의다. 약속을 잘 지키는 선배 배우들이 정말 많다. 그들이 어렵고 힘든 이 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살펴보면, 아마 답이 딱 나올 거다.”

 
차기작은 TV 드라마가 될 것 같다고. 

“영화도 찍고 TV 드라마도 찍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내게 주어진 일은 즐겁게 해야지. 아마 차기작은 TV 드라마일 것 같다. ‘쓰리데이즈’(2014, SBS) 이후 3년 만의 TV 출연이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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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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