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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단지 수집하다가 호적 회복한 할머니...성, 본도 새로 얻어

중앙일보 2017.03.23 11:17
 70년 동안 호적 없이 폐지를 팔아 생계를 이어 온 할머니가 뒤늦게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소원을 풀었다.
경기도 안산시에 거주하는 이모(70)할머니는 지난해 1월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솥단지 2개와 아동복 1벌을 수집하다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불려 갔다. 경찰 조사에서 이 할머니는 지문이 등록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안산시청을 통해 무호적자임을 확인했다.

70년 무호적 끝내고 건강보험 혜택

안산시청이 나섰다. 담당 공무원은 대한법률구조공단 안산출장소에 법률적 도움을 요청했다. 할머니처럼 무호적자 대부분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자신이 직접 가족관계를 취득하지 못해서다. 법률구조공단은 '성·본 등 창설 허가신청' 절차를 밟아 법원의 결정을 받아냈다. 할머니가 새로 얻은 본관과 성은 '안산 이씨'였다.
본관 안산은 현재 사는 지역을 따고, 성은 할머니가 기억하고 있는 어릴 때 이름에서 따와 그대로 살렸다. 할머니는 1947년 부산에서 태어난 것 말고는 정확한 출생 날짜와 부모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본관도 몰랐다.
삶은 기구했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생활하다가 8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부산 영도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길을 나섰다. 부산에서 만난 아버지는 판잣집에서 계모, 이복형제들과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가족들과 4개월간 같이 살았으나 보육원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계모는 어려운 살림 형편으로 할머니를 다른 집에 양녀로 보냈다. 양부모는 할머니를 호적에 올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11세가 되기 전에 양부모의 버림을 받았다. 그때부터 여러 집을 전전하며 15년간 식모로 살았다.
할머니는 이후 안양에서 김모 씨를 만나 사실혼 관계로 20년을 함께 살다 사별했다. 그러나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자녀도 없었다. 이후 지금까지 폐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할머니는 서류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무호적자였다.
할머니는 무호적자로 정상적인 경제 활동은 물론 아파도 병원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인권과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호적 취득에 이어 현재 주민등록번호를 받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그 절차까지 마치면 완전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거듭나게 된다. 안산시 월피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주민등록번호가 나오면 할머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돼 한 달에 48만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주거가 임대일 경우 한 달 최고 17만4000원의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된다. 선거권도 주어진다.
할머니는 가족관계등록창설 허가 결정문을 받아들고 "이제 더는 '우리나라 사람 아니네!'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김천혁신도시에 자리한 법률구조공단은 최근 3년간 총 370여 건의 가족관계 미등록자에게 기초생활보장 등 사회안전망을 제공했다.
김천=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김천혁신도시에 들어서 있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사진 법률구조공단]

김천혁신도시에 들어서 있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사진 법률구조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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