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구 회장(左), 정의선 부회장(右)
‘현대모비스 아닌 현대차가 지주사’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주가 급등
회사측도 잇단 주주 친화책 발표
핵심 3사 합병 땐 오너 지분율 낮아
지배구조 취약해지는 게 걸림돌
상법개정안 국회 통과 초읽기
삼성전자·SK텔레콤 주가도 올라
‘방아쇠’는 골드만삭스가 20일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 경로가 명확해진다: 엄청난 잠재력이 드러날 것’이란 제목의 보고서였다. 현대차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지주사가 될 수 있다는 게 보고서 골자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를 각각 투자·사업 부문으로 분할한 뒤 투자 부문을 하나로 묶어 현대차를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현대엔지니어링 등 보유 자산으로 현대차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한국거래소
보고서는 그렇게 보는 근거로 ▶지배주주가 현대차를 지주회사로 삼을 인센티브가 높고 ▶배당을 늘릴 수 있는 현금이 충분하고 ▶그룹 내 브랜드 로열티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회사란 점을 꼽았다.
신승준 골드만삭스 한국법인 리서치본부장은 “현금 보유량이 많은 현대차 중심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 배당 확대 가능성이 커져 소액 주주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가 파격적인 보고서를 낸 배경은 지주회사 전환 이슈에 묵묵부답하던 현대차가 최근 잇달아 변화의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17일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구성한 주주권익 보호 기구인 ‘투명경영위원회’를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현대·기아차에 이어 현대모비스까지 주주 친화책을 들고 나온 건 투자자 마음을 끌어안아 지배구조를 개편하겠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같은날 현대차가 현대제철·현대글로비스에서 ‘현대차그룹 브랜드 사용료’ 139억원을 받는다고 공시한 것도 기폭제가 됐다. 통상 지주사가 계열사로부터 받는 브랜드 사용료를 현대차가 처음 받았기 때문이다.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한국거래소
유력한 다른 시나리오는 정 부회장이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인 모비스를 지배하는 것이다. 다만 지분 매입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기아차-모비스 간 연결 고리를 끊으면서 모비스 지분을 정 부회장이 확보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김준성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모비스 중심 지주사 체제로 개편할 경우 기아차의 모비스 지분(16.9%)과 정 부회장의 글로비스 지분(23.3%)을 맞교환하는 방식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현대차와 기아차 등을 각각 투자·사업 부문으로 인적분할하고 투자 부문을 합병한 후 현대글로비스와 추가 합병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풀어 총수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경영의 책임성·투명성을 제고하는 효과가 있다. 이는 외국인이 주식을 사들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다만 막대한 돈이 드는데다 증여세 등 세금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이 건재해 지배구조 개편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 한국거래소

자료: 한국거래소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27일 주주총회에서 4월부터 현대로보틱스를 지주회사로 세워 지배구조를 재편하겠다고 발표했다. SK텔레콤과 현대중공업도 최근 주가가 급등했다. 대형주의 지주회사 이슈가 급물살을 타는 건 상법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에 초점을 맞춘 개정안에 따르면, 소액주주 권한이 강화되고 인적 분할시 자사주를 활용하는 ‘자사주의 마법’도 금지된다.
자사주를 일정수준 이상 갖고 있지만 지배주주 지분이 높지 않은 회사라면 개정안 시행일 전에 지주사 전환의 첫 단계인 인적 분할을 마무리해야 자사주를 활용할 수 있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1년 뒤 시행하기 때문에 기업들의 지주회사 전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