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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듣는 대신 VR기기 만들어 학점 받았죠

중앙일보 2017.03.23 02:08 종합 14면 지면보기
한양대 비즈니스랩에서 이재홍·김은진·강희윤씨(왼쪽부터)가 소상공인의 점포 입지 진단 프로그램 제작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들은 강의를 안 들어도 과제를 마치면 학점 받는 ‘프로젝트 학기’에 참가 중이다. [사진 조문규 기자]

한양대 비즈니스랩에서 이재홍·김은진·강희윤씨(왼쪽부터)가 소상공인의 점포 입지 진단 프로그램 제작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들은 강의를 안 들어도 과제를 마치면 학점 받는 ‘프로젝트 학기’에 참가 중이다. [사진 조문규 기자]

22일 오전 9시쯤 한양대 경영학부 4학년 김은진(23)씨가 서울 성동구의 대학 캠퍼스에 도착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긴 그는 9학점을 더 따야 한다. 그런데 김씨가 향한 곳은 강의실이 아니라 경영관 3층의 ‘한양비즈니스랩’이었다. 130㎡ 규모의 공간은 사무용 책상에 컴퓨터, 화이트보드로 채워져 있어 마치 벤처 사무실 같았다. 김씨는 이곳에서 소상공인의 점포 입지 선정을 돕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예비창업자가 창업을 원할 경우 장소와 콘셉트를 입력하면 예상 고객·매출 등이 산출되는 프로그램이다.
 

학생이 과제 정하는 ‘도전 학기’ 확산
경주용 차 제작, 벤처 프로젝트 …
장학금 주고 목표 달성 땐 학점 인정
아주·한양·건국대 등 잇따라 도입
웹드라마 제작해 영상업체 취직도

새 학기가 시작된 이후 김씨는 이곳에서 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졸업엔 지장이 없다. 학기 말까지 해당 프로젝트를 끝내면 15학점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4년 내내 경영학을 배웠어도 실제로 현장의 문제에 도전한 적이 없다”며 “소중한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양대 경영대가 올해 처음 시도한 ‘프로젝트 학기’의 참가자다. 모두 50여 명이 지원해 면접 등을 거쳐 25명이 선발됐다. 상거래 사이트 구축, 중국 경영정보 플랫폼 등의 창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사무공간과 함께 1인당 200만원의 장학금을 제공한다. 김씨의 지도교수이자 프로젝트 학기를 설계한 장석권 경영대 학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엔 교수가 말하고 학생은 듣는 ‘일방통행’ 수업 대신 도전 속에서 스스로 배우는 교육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학생이 스스로 정한 과제를 완수하면 일정 규모의 학점을 주는 ‘도전 학기’가 국내 대학에 속속 도입되고 있다. 목표와 내용을 학생이 직접 설계하는 방식이라 ‘자기설계 학기’로도 불린다.
 
아주대생 오복 성 씨가 만든 손목부착형 VR 게임기기. [사진 아주대]

아주대생 오복 성 씨가 만든 손목부착형VR 게임기기.[사진 아주대]

도전 학기를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은 아주대다. 지난해 1학기부터 ‘파란 학기’를 시작했다. 첫 학기가 끝날 무렵 열린 성과 발표회는 다른 대학 관계자 10여 명이 참석할 만큼 관심을 끌었다. 당초 파란 학기 도입을 앞두고는 학생들이 제대로 과제를 마칠 수 있을지, 수업만큼의 교육 효과가 있을지를 두고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김동연 아주대 총장이 직접 설명회를 통해 교수들의 협조를 구하고 전담부서(대학교육혁신원)를 정해 학생 지원에 나섰다.
 
지난해 1년 동안 201명이 이수했고 올 1학기엔 145명이 뛰어들었다. 성과는 상당했다. 지난해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기계공학과 학생들은 600㏄급 경주용 차량을 직접 제작해 일본에서 열린 학생 포뮬러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또 문화콘텐츠학과 학생들은 대학 밴드들의 대결로 진행하는 ‘서바이벌 공연’을 기획해 네 차례 공연이 모두 매진되는 성공을 거뒀다.  
이러한 도전 학기는 취업과 창업의 디딤돌도 되고 있다. 지영림(22·문화콘텐츠학과 4년)씨 등 10여 명이 참여한 ‘시나브로’팀이 제작한 웹드라마는 포털 TV캐스트 등을 통해 일반에 상영됐다. 모바일영상업체 PD로 취업하는 지씨는 “드라마를 실제 제작한 경험이 진로를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또 가상현실(VR) 게임용 하드웨어를 개발한 오복성(25·기계공학과 4년)씨는 정부로부터 1억여원을 지원받아 창업의 꿈을 이뤘다. 오씨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지도교수와 다른 학생들로부터 벤처 설립·경영 노하우를 얻었다”고 전했다.
 
올해부터 ‘드림학기제’를 도입한 건국대의 강소이(22·영상학과 4년)씨도 요즘 하루 8시간 이상 그래픽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5~7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완성하면 9학점을 받을 수 있다. 강씨는 “졸업을 미루지 않고도 해외 페스티벌 입상이라는 꿈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의 지원도 활발하다. 
 
글=천인성 기자 guchi@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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