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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국민 칭송받는 매력적인 리더 '세종대왕·오바마'의 공통점 아세요?

중앙일보 2017.03.23 01:26 종합 22면 지면보기
미래 리더십의 핵심, 경청 능력 
2013년 5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 국방대학교에서 연설했다. ‘9·11 테러’ 이후 12년 만에 미국의 대(對)테러 정책이 바뀐다는 것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청중 속에 반전 운동가 미디아 벤저민이 있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바마의 정책을 비판하는 바람에 세 차례나 연설이 중단됐다. 오바마는 정중히 “자리에 앉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벤저민은 막무가내였다. 그러자 오바마가 연설을 멈추고 벤저민을 향해 말했다. “언론의 자유에는 당신이 말할 자유가 포함되지만 당신이 듣고 제가 말할 자유도 포함됩니다.”
 

자신의 연설 계속 비판한 청중에게
기꺼이 말할 기회 준 대통령 오바마
세종도 늘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국정에 다양한 의견 반영, 업적 남겨
경청은 공감·이해하려는 열린 마음
‘나만 옳다’는 생각 버리는 게 핵심

그러나 벤저민의 소란은 그칠 줄 몰랐다. 결국 오바마는 원고를 덮고 그에게 다시 이야기했다. “당신이 주장한 많은 부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목소리는 충분히 경청(傾聽)할 가치가 있습니다. 기꺼이 말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이날 벤저민은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의 인권 상황, 무슬림에 대한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런 벤저민이었지만 일주일 후 영국 가디언지에 실은 칼럼에선 오바마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계속된 공격에도 오바마는 온화한 태도로 내 말을 들어줬다”는 것이었다. 이 일로 오바마는 미국의 정책을 반대하던 반전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신임을 얻게 됐다.
 
지난 8년간 미국을 이끈 오바마는 퇴임 직전 미국 내 지지율이 취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보다 오히려 높았다. 그의 인기를 실감하듯 지난달 미국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는 판권료로는 역대 최고인 6000만 달러(약 680억원)에 오바마와 자서전 출판을 계약했다. 프랑스에선 그를 대통령으로 ‘스카우트’하자는 서명까지 진행됐다. 이처럼 오바마는 세계인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지도자로 남았다. 비결은 무엇일까.
 
중앙일보가 2016년 시민 3061명에게 국외 인물 중 가장 ‘매력적인 리더와 그 이유’를 주관식으로 물었다. 이 질문에 오바마(8.7%)를 써낸 이가 가장 많았다. 오바마를 선택한 이들은 그의 매력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소통 능력’을 꼽았다. 김종영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주장도 경청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오바마를 매력적인 리더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특히 “미래사회는 오바마처럼 다양한 생각의 차이를 조율할 줄 아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기업과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미래의 핵심 역량을 연구한 ‘데세코 프로젝트’(2003년)에서 21세기 인재가 갖춰야 할 능력의 하나로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꼽았다.
 
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임금으로 추앙받는 세종도 경청 능력이 탁월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종은 어전 회의에서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란 말을 자주 했다.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장은 “강력한 왕권을 가진 군주지만 모든 결정을 신하들과 의논해 내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세종은 임금으로 있던 32년간 ‘경연’(임금이 신하와 함께 공부하거나 국사를 논하는 자리)을 1898회나 마련했다. 직전 임금인 태종이 18년간 경연을 60여 회 한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수치다. 세종은 전분 6등법과 연분 9등법으로 나눈 토지조세 제도를 실행하기에 앞서 무려 17년 동안 일반 백성 16만 명의 의견을 조사했다. 박 소장은 “세종은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반영하는 노력 덕분에 문화·과학 등에서 수많은 업적을 냈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은 예나 지금이나 리더가 갖춰야 할 필수 능력 중 하나며 인간 생활의 가장 핵심적 요소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래리 버커(Lary L. Berker)에 따르면 보통사람은 깨어 있는 시간의 70%를 커뮤니케이션하는 데 쓴다. 그중 가장 많은 것은 듣기(48%)고 그 다음이 말하기(35%), 쓰기(7%), 읽기(1%) 순서다.
자료 : 한국리서치, 2015년 시민 1006명 조사

자료 : 한국리서치, 2015년 시민 1006명 조사

 
하지만 듣기가 커뮤니케이션의 절반을 차지함에도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리서치가 2015년 시민 1006명을 조사했더니 ‘소통을 잘 못한다’는 응답자가 40%나 됐다. ‘소통을 잘한다’는 8%에 그쳤다. 소통을 잘 못하는 이유로는 ‘경청하지 못해서’(75%, 복수응답)가 가장 많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사람으로는 친구(63%, 복수응답)와 어머니(60%)를 제일 많이 떠올렸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런 사람으로 아버지를 꼽은 비율이 44%에 그쳐 ‘업무로 처음 만난 사람’(46%)보다 오히려 적었다는 점이다.
 
자료 : 한국리서치, 2015년 시민 1006명 조사

자료 : 한국리서치, 2015년 시민 1006명 조사

경청이 어려운 이유로 김주환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은 집중력과 의지 부족을 꼽았다. 김 원장에 따르면 뇌의 정보 처리는 사람이 말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보통 사람은 1분간 150~250개 단어를 말하는데 뇌는 400~800개 단어를 이해한다. 타인의 말에 집중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다른 생각에 빠지기 쉽다는 얘기다. 경청이 잘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판단을 미리 정해놓고 남의 말을 형식적으로 듣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처음부터 결론을 내려놓고 들으면 상대방이 아무리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자료 : 한국리서치, 2015년 시민 1006명 조사

자료 : 한국리서치, 2015년 시민 1006명 조사

경청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상대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김 원장은 “커뮤니케이션의 라틴어 어원인 ‘코뮤니카레’는 ‘공유한다’는 뜻이다. 소통의 본질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 : 한국리서치, 2015년 시민 1006명 조사

자료 : 한국리서치, 2015년 시민 1006명 조사

공익단체 ‘함께하는 경청’의 창립멤버인 노익상 한국리서치 회장은 20여 년 전 소통의 본질을 깨닫는 진기한 경험을 했다. 회사 조직·인사를 싹 바꾸는 개혁안을 구상해 실무 과장 7명에게 공개했는데 다음날 5명이 사표를 들고 찾아왔다. 노 회장은 “그들은 자신과 한마디 상의 없이 결정한 것에서 무시당했다고 느낀 것 같다. 그때 내가 반성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코끼리와 시각장애인 이야기를 예로 들며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알기 위해선 자기만의 경험에 확신을 가질 게 아니라 다른 부분을 만져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리는 게 경청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자료 : 한국리서치, 2015년 시민 1006명 조사

자료 : 한국리서치, 2015년 시민 1006명 조사

이 같은 경청 능력을 키우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김종영 교수는 ‘구성적 듣기와 말하기’를 제안한다. 그림이나 영상 등 자신이 본 것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말하는 훈련이다. 반대로 들은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보며 귀담아 듣는 습관을 들이는 방법도 있다. 두 가지 방법은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관찰력과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선 경청을 배려 정도로 생각하지만 프랑스·독일 등에선 ‘경청은 의무’라고 가르친다. 경청은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유대인의 ‘하브루타’ 교육방식도 비슷한 원리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수업은 물론 일상에서 짝을 지어 토론하며 반대 의견을 존중하는 법을 익힌다.
 
자료 : 한국리서치, 2015년 시민 1006명 조사

자료 : 한국리서치, 2015년 시민 1006명 조사

이처럼 경청은 개인의 매력과 평판, 사회적 지위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기업·조직 업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함께하는 경청’이 자체 개발한 경청진단지수로 2016년 대흥소프트밀 임직원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경청과 조직문화 간에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 사이의 관계가 가까운 정도를 상관계수라 하는데, 이것이 경청과 업무효율성 간에선 0.86, 경청과 업무몰입도 간에선 0.81로 나왔다. 조사 책임자인 김춘석 한국리서치 본부장은 “경청이 10만큼 오르면 효율성은 8.64, 몰입도는 8.06 오른다는 의미”라며 “경청하는 문화가 뿌리내린 기업일수록 조직의 성과 또한 높아진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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