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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과 다른 시선, 그게 내 영화의 힘

중앙일보 2017.03.23 01:05 종합 24면 지면보기
화제의 일본 영화 ‘분노’를 연출한 재일동포 3세 이상일 감독. [사진 라희찬(STUDIO 706)]

화제의 일본 영화 ‘분노’를 연출한 재일동포 3세이상일 감독. [사진 라희찬(STUDIO 706)]

“그래 봤자 달라질 게 없다는 이유로 분노하기를 포기한다면, 그 감정은 사라지고 마는가. 아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그렇게 우리 내면에 남아 무엇으로 변할지 모르는 ‘분노의 씨앗’을 가리킨다.”
 

재일동포 3세 이상일 감독
30일 개봉하는 ‘분노’ 홍보차 내한
“한국영화 같은 뜨거움 느껴진대요”

30일 개봉하는 일본영화 ‘분노’ 홍보차 내한한 이상일(43) 감독의 말이다. 재일동포 3세인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일본영화학교에 입학해 영화를 공부하고 1999년 재일동포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멜로영화 ‘푸를 청’으로 데뷔했다. 현재 일본의 젊은 작가 감독으로 꼽힌다. ‘분노’는 그의 일곱 번째 장편으로,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 이 감독이 요시다의 소설을 영화화한 건 ‘악인’ 에 이어 두 번째다. 두 영화 모두 살인 사건이 발단이다.
 
‘분노’는 살인사건에 얽힌 세 명의 용의자, 그리고 충격적인 범인의 정체를 그린다. 범인은 어느 부부를 살해하고 현장에 피로 ‘怒’(노할 노)란 글씨를 남긴다. 1년 뒤 공개수배가 진행되는 가운데, 살인범일지 모를 세 남자가 각각 지바현(縣)의 항구 도시, 도쿄, 오키나와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다. 후반으로 갈수록 ‘누가 범인인가’하는 문제보다 주변 인물들이 세 남자를 ‘믿을 것인가, 의심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중요해진다. 이 감독은 영화의 기획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본에서 한 범인이 1년여간 도망다닌 사건이 있었는데, 지명수배 사진이 전국에 뿌려지며 수천 명이 신고를 했다. 원작자인 요시다씨는 거기서 모티브를 얻어 소설을 썼다. 그 많은 사람들이 주위 사람을 의심했다는 사실 말이다.”
 
이 감독은 “요시다씨의 소설은 현대사회의 공기를 잘 담아낸다”며 “타인을 너무 쉽게 배척하는 분위기가 인간관계에서 어떤 갈등을 만들고 파국을 빚는지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 ‘분노’의 한 장면.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영화 ‘분노’의 한 장면.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악인’ ‘용서받지 못한 자’ ‘분노’ 등 이 감독의 최근작은 이전 작품들인 ‘69 식스티 나인’ ‘훌라걸스’ 같은 청춘물과는 그 결이 다르다. 도덕적 가치나 신념을 잃어버린 인물들의 사투를 치열하게 그린다. 그는 “지금 사회에 대해 내가 느끼는 바가 영화에 반영되는 것 같다”며 “이전 작품들이 어떤 인물과 외부 인물 혹은 세상과의 갈등을 그렸다면 ‘악인’부터는 그 인물 내면의 갈등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일본영화계에서 재일동포 감독으로 살아가는 게 장점이 된다고 했다.
 
“내가 일본인들과 다른 존재라는 건 영화감독으로서 큰 무기가 된다. 일본인들과 다른 시선으로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모든 작품에 그런 ‘다른 시선’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일본 영화인들은 내 작품에서 한국영화 같은 뜨거움이 느껴진다고 한다”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몸 안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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