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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우리는 무엇으로 행복해 지는가

중앙일보 2017.03.23 01:00 경제 9면 지면보기
유경준통계청장

유경준통계청장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가 소득수준이 낮아 가난했던 시절에는 소득이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오늘날 소득만이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민소득 180개국 중 122위 부탄
국민행복지수는 아시아서 1위
소득만으론 국민 행복 지표 안돼
삶의 질 측정 논의 본격화 기대

부탄이라는 재미있는 나라가 있다. 부탄에서는 일찍이 명상·기도와 같은 영적 활동을 포함하는 국민행복지수를 개발하여 1982년부터 국가정책의 목표로 삼아 왔다. 부탄은 2006년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의 국민행복지수 조사에서 아시아 1위, 세계 8위를 차지했다. 부탄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5년 기준으로 2656달러로 180개국 중 122위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라는 생각해 봄 직한 가설이 있다. 1970년대 미국경제학자 이스털린은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늘어나도 행복은 더는 증가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인간의 욕구가 크지 않는 상황에서는 소득의 증가가 행복으로 이어지지만, 인간의 욕구가 커지면 소득의 증가가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는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가까워졌고, 개인의 다양한 욕구가 분출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과거와는 달리 소득이 국민의 행복을 측정하는 단일한 지표가 되기는 어렵다.
 
이미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인간의 행복증진을 위해서는 소득보다는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논의가 지속해서 제기돼 왔다. 실제로 UN(국제연합)이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같은 대표적인 국제기구뿐만 아니라 미국·일본·캐나다·영국 등 선진국들도 국민 삶의 질 측정을 위한 다양한 지수를 제시한 바 있다.
 
UNDP(유엔개발계획)의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HDI)와 OECD의 더 나은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 BLI)는 각각 4개와 24개로 구성된 부분지표를 종합한 지수이다. HDI로 한국은 좋은 평가(188개국 중 17등)를 받았지만, BLI로는 낮은 평가(38개국 중 28위로)를 받았다. 즉, 객관적인 지표만 다루는 HDI는 좋은 평가를 내리는 반면, 주관적인 지표를 포함하는 BLI에서는 별로 평가가 좋지 않다. 따라서 한국에서 물질적인 삶은 좋아지고 있지만 삶의 질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갤럽에서 전세계 공동으로 조사하는 ‘삶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한국의 점수는 2011년 이후 낮아지고 있다.
 
한편, UN에서는 삶의 질과 관련하여 최근 별도의 논의를 하고 있다. 2015년 9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라는 인류의 공통된 목표가 그것이다. 여기서는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를 핵심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필자는 3월 초에 유엔 통계위원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한국은 2년간 부의장국으로서 관련 논의를 조정하고 있지만 합의 과정은 매우 느리다. 경제와 통계의 발전수준이 다른 전 세계 국가들이 합의된 지수를 만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전이 없는 것도 아니다. 17개 분야 169개 세부 목표가 제시되었고, 2030년까지 세계 모든 국가가 목표이행에 협력하기로 하였다.
 
지난 주 통계청은,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어, 한국 삶의 질 학회와 공동으로 ‘국민 삶의 질’ 종합지수를 발표하였다. 2012년부터 제공하던 12개 부분 80개의 개별지표를 학회의 도움을 받아 종합지수화하여 처음 발표한 것이다. 여기에는 소득과 실업률 같은 객관적 지표뿐 만 아니라 ‘삶의 만족도’, ‘일자리 만족도’와 같은 30%의 주관적 지표도 포함돼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국내외에 삶의 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기를 기대한다. 인간은 무엇으로 행복해지는가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는 관련 지수의 완성도를 더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차원뿐 만 아니라 학계와 시민사회의 폭 넓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유경준 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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