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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김민희, "진짜의 맘으로 산다는 건…"

중앙일보 2017.03.23 00:01
※'밤의 해변에서 혼자'(3월23일 개봉, 홍상수 감독)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김민희 서면 인터뷰

1부와 2부의 영희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비칩니다. 1부보다 2부에서 마음을 좀 더 다잡은, 차분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연기를 하면서 1부와 2부의 영희를 다르게 느끼셨나요. 

“2부의 시작은 강릉의 극장, 영화를 보는 영희의 얼굴입니다. 1부에서 홀연 사라져 버린 영희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을 때, 이 영화는 어떤 영화를 보고 있는 영희의 얼굴을 다시 비추며 묘하게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상상이 일어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꿈속의 이야기가 세상으로 빠져나온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모습이 담긴 영화를 보고 있는 영희의 얼굴일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1부를 환기시키며 그 감정을 고스란히 물려받으면서, 또 다른 새로운 감정이 뒤섞여 갈 것만 같았습니다. 이 영화에 보이지 않는 1부와 2부 사이 영희의 감정, 그 시간을 상상하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밤의 해변에서 혼자

1부에서 영희는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다짐해 보고” 싶은 마음에, 공원의 다리를 건너기 전에 절을 하죠. 아주 의미심장해 보였습니다. 이 장면을 연기할 때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홍 감독님께서 그걸 왜 쓰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연을 바라보며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십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볼 때가 아니라 그냥 지나쳐 버릴 것 같은, 소박하고 어찌 보면 너무 흔한 공간이나 꽃이나 풀잎이나 연못 위의 오리들이나 그런 것들을 대할 때, 감탄하고 깨끗해지고 순수한 맘으로 충만함을 느낍니다. 허명(虛名)을 벗어 버리고 작은 것부터 다시 볼 수 있는 그런 맘, 진짜로 예쁜 것이 무엇인지…, 진짜의 맘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왜 항상 감사하는 맘을 잊어서는 안 되는지 느꼈습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밤의 해변에서 혼자

-1부와 2부 모두 영희가 혼자 되는 공간은 바로 ‘겨울 바다’입니다. 외국의 바다와 강릉의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을 촬영할 때 무엇을 느끼셨나요. 

“바다를 좋아합니다.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과 같이 신비하게 느껴집니다. 알 수 없는 그 커다란 아름다움 앞에 서면 맘이 정화됩니다. 맘속에 일어났던 불안·욕망 그런 것들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바다가 자연스레 가져다 주는 평화가 감사하고, 그런 감사를 느낄 때 가슴속에 진심으로 담고 있던 사랑이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밤의 해변에서 혼자

-영희는 바다에 혼자 있을 때마다, 해변에 나뭇가지로 상원의 얼굴을 그리죠. 직접 그린 건가요. 누구의 얼굴을 생각하며 그리셨나요.

“홍 감독님의 얼굴입니다. 평소에도 그분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얼굴을 그리게 됩니다.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1부 해변에서 얼굴 그리는 신을 찍을 때는 상원을 누가 연기하게 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홍 감독님의 얼굴이 그려졌습니다.”

 
2부에서 영희는 커피숍 밖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며 가만히 노래를 부릅니다. 그 무엇보다 영희의 마음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듯한 노래라고 느꼈습니다. 어떤 노래인가요. 

“홍 감독님이 만드신 노래입니다. 아침에 노래를 만드시고 제게 들려주셨습니다. 제가 스마트폰으로 녹음하고 그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노래를 외우면서도 가슴이 뭉클뭉클 뜨거워지고 목이 메었습니다. 촬영을 할 때 매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바람에 띄워 보내는 편지 같았습니다.”

 
극 중 영희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이 나오지만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를 함께 작업했기 때문인지, 영희가 명수를 대하는 장면에서 정재영 배우를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시 함께 연기하는 기분이 어떠셨나요. 

“영희와 명수는 서로 잘 알고 지내던 인물로서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천우 선배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명수 선배한테는 그가 어떤 맘일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았습니다. 영희를 부르러 나온 명수의 모습과 둘이 같이 카페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온기를 만드는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밤의 해변에서 혼자

-여러 인물 중에서도 영희와 준희가 나누는 인간적인 위로가 각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준희 역의 송선미 배우와 연기할 때도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셨나요. 

“제가 좋아하는 언니 같은 느낌입니다. 좋아하는 사람, 우러러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 키도 크시니까 제가 언니 앞에서는 꼬마가 된 기분입니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맘입니다. 준희 언니는 영희에게 힘이 되는 사람입니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보다 이 영화가 김민희라는 배우의 더 다양한 얼굴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그 다양한 얼굴 중에서 직접 보기에, ‘인간 김민희’를 투명하게 보여 주는 표정이나 순간은 무엇입니까. 

“많은 순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철저히 준비된 연기를 하는 것과 반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되면 꾸미지 않은 저의 얼굴이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이 영화에서 새롭게 발견했다고 느끼는 ‘인간 김민희’의 얼굴이 있나요. 

-“저도 제 얼굴을 잘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양배추를 곱게 두 손으로 보듬을 때, 추운 겨울 바다에 누워 바다와 눈을 맞추고 잠이 들었을 때, 어느 때보다 온전한 영희 자신의 모습이 환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엔딩도 좋아합니다. 홀로 걸어가는 영희의 뒷모습과 거친 숨소리로 끝나는 그 장면은 맘이 아프지만, 새들도 멀리 훨훨 날아올라 영희와 함께하는 것 같고, 영희의 맘에 새롭게 봄이 시작되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개인적으로는, 상원이 영희에게 안톤 체호프의 ‘사랑에 관하여’를 읽어 줄 때 짓던 표정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희의 가슴에 휘몰아치는 감정이 보였다고 할까요. 그때 배우로서 어떠셨나요. 

“잠시 숨이 멈춰 버린 듯했습니다. 응어리진 슬픔과 원망이 맘속에 퍼져 밖으로 터져 나갈 듯하고, 심장은 요동치지만 작은 숨도 내뱉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책의 말들이 너무 귀하고 귀해서 가슴에 품었습니다. 품고 다시는 보내지 않을 것 같은 맘이었습니다.”

 
국내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일반적인 극영화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홍 감독님과 김민희 배우의 실제 관계와 겹쳐 볼 것 같습니다. 이런 시선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홍 감독님은 항상 솔직한 영화를 만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디테일이 다른 영화에 비하여 더 개인적인 것일 수는 있지만, 자전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은 원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영화는 영화로 보아 주시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밤의 해변에서 혼자

-극 중 영희는 수많은 질문들을 마주합니다. ‘연기를 계속할 것이냐’ ‘어떤 영화에 출연할 것이냐’ ‘어디서 살 것이냐’ ‘결혼할 것이냐’ 등등. 지난 2월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은곰상)을 수상하면서 

“상업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내게 의미가 없다”고 했는데요. 영화 속 영희의 고민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중 가고자 하는 방향은 무엇입니까. “제게 주어진 작품 속에서 더 비워 나가며 순수하게 연기하고, 그 연기의 순간만을 즐기는 배우로서 살고 싶습니다. 훌륭한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그 앞에 펼쳐진 자연에 빠져들고 그리는 일에 완전히 몰두하는 것처럼, 과정에만 몰두하고 그것으로 모든 게 채워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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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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