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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대책 회의에서 실무자들은 ‘멀뚱멀뚱’, 왜?

중앙일보 2017.03.18 10:00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방문이지요. 당장 우리에게 시급한 현안은 두 가지입니다. 북핵과 사드(고도도 미사일방어체계). 사드 문제로 연일 중국에 난타당하고 있는 우리에겐 조그만 희망(?)입니다. 
 

사드 대책 현장에선...
실국장들이 신문에 난 것 종합해 보고하고 끝
"대책은?" 하고 장관이 물으면
실무자들은 눈만 '멀뚱멀뚱'...

그러나 틸러슨 장관이 한국 입장을 거들고, 18일로 예정된 미·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사드 해결에 대한 긍정적 신호(?)가 나온다 해도 우리에게는 더 시급한 문제가 있습니다. 정부와 공직 사회 문제입니다. 어느 공직자의 전화 한 통이 이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의 절규는 위기의 대한민국을 현장에서 전하는 '뉴스 분석'입니다.
공무원의 길...중국 베이징의 길에 나붙은 한 플랙 카드

공무원의 길...중국 베이징의 길에 나붙은 한 플랙 카드

엊그제 중앙 부처 고위 공무원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참다 참다 분통이 터져 핸드폰을 들었다는 겁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중국의 사드 보복을 전후한 부처의 대응을 보면서 "정말 이건 아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국민의 녹을 받는 공복으로서 부끄럽기도 했다네요. 차분히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우선 그는 사드 문제에 관한 한 정부에 대책이나 책략은 '거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그냥 넋 놓고 있다고 합니다. 경제부총리가, 외교부가 몇 마디 했지만, 정책이 아니라는 거죠. 초등학생도 그 자리 가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가 속한 부처에서도 대책 회의를 좀 했답니다. 한데 회의 참석자가 장관, 실·국장, 과장 뭐 이 정도인데 장관이 한마디 하면 실 국장들이 신문에 난 것 종합해 보고하고 끝이래요. 보고 내용이 뭐냐고 했더니 중국이 오늘은 어떤 업종을, 어떤 기업을(주로 롯데가 당한 것) 후려쳤는지, 뭐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책은?" 하고 장관이나 실·국장이 물으면 실무자들은 눈만 '멀뚱멀뚱'한답니다. 
 
무슨 대책이 있겠습니까. 중국이 이렇게 나올 줄 예상도 못했고, 목숨걸고(?) 중국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겠지요.
최근 국회 정책위 회의실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중국의 사드 보복 관련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당정협의가 열렸다. 당정은 중국의 무역 보복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검토하기로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왼쪽)이 회의 도중 메모를 읽고 있다.

최근 국회 정책위 회의실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중국의 사드 보복 관련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당정협의가 열렸다. 당정은 중국의 무역 보복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검토하기로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왼쪽)이 회의 도중 메모를 읽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두 가지를 물었습니다.
 
우선 부처에서 중국 전문가들 자문을 받는지 말입니다. 사드 보복과 관련 포럼, 아니 그 정도는 기대하지 않고 간담회라도 한 적이 있냐고요.
 
그가 답합니다. 
 

단 한 번이라도 했으면 내가 이렇게 열 안 받고 전화도 안 하죠"라고요. 솔직히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주변에 수준 높은, 그리고 사명감 투철한 공직자가 적지 않아 섭니다. 한국 공직사회의 수준에 대한 믿음도 있었고요. 부처마다 고시 출신들 즐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두 번째 질문을 했습니다. 부처에서 대책 회의를 할 때 토론을 할 것 아닙니까?
 
그가 목청을 높입니다.
 

토론요? 다 아시잖아요. 장관이나 실 국장 앞에서 실무자들이 어디 속내를 얘기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었다면 최순실 국정 농단이니 블랙리스트, 뭐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그의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한 마디 더 할까요. 요즘 고위 공직자들 진짜 관심은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냐입니다. 벌써 모 대선 캠프에 줄 대는 사람 많습니다. 사드요? 솔직히 별로 관심 없습니다. 어차피 다음 정권에서 미국, 중국이 협의해 해결 할 것이라고 믿어요.

 
보충 질문을 했습니다. "혹시 사드 대책을 논의하는데 중국 전문가, 아니 중국을 좀 아는 실무자, 혹은 국 실장은 없나요?"
 
그의 답.
 

중국에서 연수했거나 주중 한국 대사관에 나갔다 온 분들이 있긴 한데 별로 핵심 위치에 있지 않아 '말발'이 안 서지요." 미국파이거나 청와대 백(?) 없으면 전부 벙어립니다 벙어리, 그래야 살아남죠.

 
"그래도 주무 부처인 외교부나 산업통상자원부는 좀 다르지 않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웃습니다.
 

내부에서 치열하게 토론한 적 없습니다. 심각하게 토론 한 번이라도 했다면 보복이 한참 지난 후에야 'WTO 제소 어쩌고, 기업 피해 조사 어쩌고' 그런 말이 나오겠습니까. 또 '중국도 (우리와 무역에서 손해 볼 것 많으니) 보복 심하게 못 할 거다'라는 어린이같은 사태 파악을 하겠습니까. 중국을 모르거나 관심이 없거나 둘 중 하나죠.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 당국의 보복으로 한국관광 금지령이 내려진 후 한국을 찾는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 당국의 보복으로 한국관광 금지령이 내려진 후 한국을 찾는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심하게 허탈했습니다. 


한데 그가 마지막으로 부탁을 합니다. "사람들이 이런 실정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말을 잇습니다.


다음 정부에선 딱 한 가지만 바꿨으면 좋겠어요. 공직사회에 자유롭게 토론하는 문화가 좀 정착됐으면 합니다. 토론하면 대책이 나오거든요. 중국을 잘 모르면 전문가들 모시고 얘기 한 번 해보자, 그래도 답이 안 나오면 외국은 (중국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외국과 협력할 필요는 없는지, 역사적 사례는 없는지, 뭐 이렇게 찾다 보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나오지요. 한데 지금은 '바른 소리=골통'이라는 공식이 너무 강해서...

 
사실 이 공직자는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조목 조목 부처의 사드 대책을 질타했습니다. 구체적인 공직자 이름까지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의 소중한 '절규'를 보호하기 위해 그 실례와 실명은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차이나랩 최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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