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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장애 이긴 인간승리' 봅슬레이 美 간판 파일럿 홀컴

중앙일보 2017.03.17 06:10
15일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 훈련을 마친 뒤 만난 스티븐 홀컴. 평창=김지한 기자

15일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 훈련을 마친 뒤 만난 스티븐 홀컴. 평창=김지한 기자



17일부터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릴 봅슬레이·스켈레톤 월드컵 8차 대회는 한국에서는 처음 열린다. 이번 대회엔 각 부문 세계 1위를 비롯한 톱랭커들이 모두 출전한다. 시즌 마지막 대회일뿐 아니라 내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장소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수준급 선수들이 대거 나섰다. '미리 보는 평창동계올림픽'이라 해도 될 정도다.
 
유럽세가 강한 썰매 종목에서 북중미의 강국으로 꼽히는 미국엔 스티븐 홀컴(37)이라는 탁월한 간판 파일럿(조종수)이 있다. 그는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때 봅슬레이 4인승에서 1위에 올라 이 종목에선 무려 62년 만에 미국 봅슬레이에 올림픽 금메달을 선사했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때도 2인승과 4인승에서 모두 동메달을 땄던 그는 올 시즌에도 4인승 부문 세계 3위에 올라 내년 평창올림픽 봅슬레이 종목 유력한 메달 후보로 꼽힌다.
 
지난 15일 연습 주행을 모두 마친 뒤 만난 홀컴은 새로 접한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의 트랙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챌린지(challenge·도전)'라는 단어를 수차례 쓰면서 트랙에 많은 흥미를 보였다. 그는 "연습이다보니 즐기면서 탔다. 모든 게 새롭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면서 "주행을 하기 전에 운동하는 '웜업(warm-up)' 공간도 깨끗했다. 좋은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것도 처음이라는 그는 "사람들이 환상적이고, 음식도 맛있다. 즐기면서 보내고 있다"며 만족해했다.
 
알파인 스키 선수를 하던 홀컴은 축구, 미식축구, 농구, 야구, 육상 등을 두루 경험한 다재다능한 스포츠맨이다. 그러다 1998년 미국 봅슬레이대표팀 선발전을 통해서 푸시맨(4인승에서 2~3번째 순서로 앉는 사람)으로 봅슬레이와 첫 인연을 맺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경기 전 트랙 상태를 점검하는 전주자를 경험하면서 올림픽 출전의 꿈을 키운 그는 2006년 토리노 대회를 시작으로 올림픽에 세 차례 출전했다. 세계선수권에선 4차례 우승했다. "모든 순간들이 내겐 도전과 같다"던 홀컴은 "이제는 나이 어린 선수들과 협력해서 더 좋은 결과를 내는 목표를 갖고 달린다. 언제나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고 말했다.
 
홀컴의 성과가 더 빛난 건 그가 갑작스럽게 얻은 장애를 딛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그는 선수 생활을 하던 2007년 선수 생활을 접을 뻔 했다. 갑작스레 퇴행성 시력 장애를 앓으면서 선수뿐 아니라 삶에도 치명적인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는 한때 수면제를 먹고 자살 기도를 할 만큼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의사의 권유로 홀컴은 콘텍트렌즈를 눈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실명할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을 넘긴 뒤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선수로서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시각 대신 감각으로 조종하는 자신만의 조종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수술 1년 만인 2009년 2월 세계선수권 4인승에서 우승했고, 바로 이듬해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땄다. 2012년에 그는 '이제 나는 볼 수 있습니다(Now I can see)'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내기도 했다. 홀컴은 "처음에 치유가 어렵다는 말에 크게 실망했지만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수술과 재기 과정을 통해) 시력을 회복하곤 또 한번의 삶의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목표가 다시 생겼고, 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됐다. 그 때문에 인생도 더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15일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 훈련을 마친 뒤 동료들과 썰매 앞에 선 스티븐 홀컴(왼쪽). 평창=김지한 기자

15일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 훈련을 마친 뒤 동료들과 썰매 앞에 선 스티븐 홀컴(왼쪽). 평창=김지한 기자

 
"봅슬레이는 내 인생이다. 내 모든 것의 중심과도 같다"고 한 홀컴에겐 4번째 올림픽 출전이 될 평창 올림픽에 대한 꿈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내년 올림픽 때도 꼭 이 자리에 다시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은 그는 "그땐 무조건 우승을 목표로 달리겠다"고 말했다.
 
평창=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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