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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순신·진린 가문 400년 우정, 사드 갈등에 금 가다

중앙일보 2017.03.17 02:30 종합 2면 지면보기
명나라 진린 장군의 위패가 있는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황조별묘. 1871년에 건립됐다. 해남 황조마을에 뿌리를 내린 진린의 후손인 광동 진씨 종친회는 중국인 방문객이 잇따르자 1년 전 ‘한중우의 진린 장군’이라고 적힌 비석을 세웠다. 진현모 종친회장이 이순신 장군과 진린 장군의 우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명나라 진린 장군의 위패가 있는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황조별묘. 1871년에 건립됐다. 해남 황조마을에 뿌리를 내린 진린의 후손인 광동 진씨 종친회는 중국인 방문객이 잇따르자 1년 전 ‘한중우의 진린 장군’이라고 적힌 비석을 세웠다. 진현모 종친회장이 이순신 장군과 진린 장군의 우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역사상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마다 한국과 중국은 서로 도우며 고통을 극복해 냈다. (명나라) 등자룡(鄧子龍) 장군과 (조선)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함께 전사했다. 명나라 장군 진린(陳璘)의 후손은 오늘날까지도 한국에서 살고 있다.”
 

왜군 맞서 정유재란 함께한 전우
진린, 이순신 장군 장례도 치러
시진핑, 서울대 특강서도 언급
진린 후손, 18년째 한국 찾아 교류
올해 행사는 여행통제 탓에 못 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7월 4일 서울대 특강에서 이렇게 한·중 우호를 역설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과 진린 장군의 400여 년 우정에 요즘 금이 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을 찾아 우정을 이어온 진린 장군의 중국 거주 후손들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복 공세로 방한이 쉽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16일 전남 완도군에 따르면 중국 거주 진린 장군 후손들은 당초 다음달 14일 개막하는 완도국제해조류박람회에 참석하려고 했으나 계획을 사실상 포기했다. 진린의 후손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계속 방한했고 1년 전부터 완도군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진린의 후손들을 공식 초청하는 등 공을 들여 왔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진린 후손들은 진린이 나고 자란 중국 광둥(廣東)성 사오관(韶關)시 웡위안(翁源)현과 윈푸(雲浮)시 윈안(雲安)구 관계자 30명과 함께 방한해 박람회에 참석하고 진린 관련 유적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중국 측은 당초 이번 박람회의 성공을 위해 중국인 관광객 150여 명도 모집해 보내 주기로 했으나 무산됐다.
 
전남 해남군에 뿌리를 내린 진린의 후손으로 완도군과 중국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온 진현모(55) 광동 진(陳)씨 종친회장이 지난해 12월 중국에 갔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진 회장이 지난달 말 다시 방중했을 때 “방한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중국인들의 한국 여행이나 방문을 통제하는 (중국) 정부의 방침을 거스를 수 없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중국 정부의 무리한 사드 보복 조치가 400년 이상 이어져 온 이순신 장군과 진린 장군 가문의 국적을 뛰어넘는 우정에까지 악영향을 준 셈이다. 완도군 관계자는 “진린의 후손들은 한국에 올 수도 있지만 중국에 돌아갔을 때 감당해야 할 부담을 크게 걱정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진린 손자, 조선 건너와 ‘광동 진씨’ 개창
 
이순신 장군과 진린 장군의 특별한 우정은 정유재란(1597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592년에 시작된 임진왜란에 이어 터진 정유재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1598년)이 전우애가 빛난 무대였다. 이 전투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른 주인공이 명나라 수군 도독(都督) 진린 장군이었다. 전남 지역을 비롯해 국내에는 두 장군의 우정과 한·중 우호 관계를 엿볼 수 있는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진린 장군은 전남 완도군 고금면 묘당도에 관왕묘(삼국지 속 관우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를 만들었다. 1666년 조선 현종 때 관왕의 양옆에 이순신 장군과 진린 장군의 초상을 모셨는데 일제 때 관왕묘는 폐허가 됐다.
 
해남군 산이면 황조마을에는 진린의 후손 70여 명이 모여 사는 광동 진씨 집성촌이 있다. 명나라가 망하고 들어선 청나라 때 조선에 들어온 진린의 손자를 시작으로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두 장군의 우정에서 시작한 한·중 우호 관계는 그동안 양국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진린의 후손들은 2015년 10월 충무사를 찾아왔고, 완도군은 그해 12월 중국에서 열린 ‘진린 장군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했다. 99년 광둥성 웡위안 현 정부와 자매결연을 맺은 해남군은 매년 명량대첩 축제에 후손을 초대해 왔다.
 
진린의 후손들은 매년 이 축제에서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과 만나 ‘가문의 우정’을 나눠 오고 있다.
 
이처럼 일본(왜)에 맞서 싸우며 꽃피었던 이순신과 진린 장군의 우정은 400년 세월을 뛰어넘었으나 중국 정부의 최근 사드 보복 조치로 퇴색될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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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에는 17일 진린 장군의 하사품이 전시된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관’이 문을 열지만 후손들의 방문은 어렵게 됐다. 남해군이충무공 순국공원에 세우고 있는 ‘순국의 벽’에는 노량해전에 참여한 진린과 등자룡이 그려지고 있다.
 
진현모 회장은 “노량해전 때 이순신 장군과 진린 장군이 힘을 합친 것처럼 한·중 정부가 대화와 협력을 통해 사드 갈등을 끝내고 우호적인 관계를 회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완도=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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