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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서 막힌 포퓰리즘 광풍 … 극우정당 제1당 실패

중앙일보 2017.03.17 01:19 종합 16면 지면보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으로 몸집을 키운 포퓰리즘 태풍이 유럽 대륙에 상륙했으나 네덜란드에서 미풍으로 변했다.
 

자유당 20석, 예상에 크게 못미쳐
집권당이 33석 얻어 제1당 유지
기득권 정당들 부진, 불씨는 여전
프랑스서 르펜 당선 땐 안심 못해

15일(현지시간) 실시된 네덜란드 총선에서 마르크 뤼테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유민주당(VVD)이 전체 150석 가운데 최소 33석을 얻어 제1당을 유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개표가 96% 진행된 결과다. 반(反) 유럽연합(EU), 반 이슬람을 내건 극우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자유당(PVV)은 2012년 총선보다 5석 많은 20석을 얻는데 그쳤다. 빌더르스는 선거 초반 여론조사에서 30석 가량을 얻어 1당이 될 것으로 예측됐으나 실제 선거에선 그에 미치지 못했다.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왼쪽)의 자유민주당(VVD)이 15일(현지시간) 실시된 네덜란드 총선에서 제1당을 유지했다. 극우 성향 헤이르트 빌더르스(오른쪽)의 자유당(PVV)은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됐으나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를 얻었다. [로이터=뉴스1]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왼쪽)의 자유민주당(VVD)이 15일(현지시간) 실시된 네덜란드 총선에서 제1당을 유지했다. 극우 성향 헤이르트 빌더르스(오른쪽)의 자유당(PVV)은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됐으나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를 얻었다. [로이터=뉴스1]

중도 보수성향의 기독민주당(CDA)과 온건 진보성향의 민주66당(D66)이 각각 19석을 차지했다. 30세로 ‘네덜란드의 트뤼도’로 불리는 예시 클라버 대표의 녹색좌파당(GL)은 지난 총선보다 10석을 늘린 14석을 얻는 기염을 토했다. 좌파 사회당(SP)도 14석을 확보했다.
 
네덜란드 총선은 4~5월 프랑스 대선, 9월 독일 총선과 함께 유럽의 운명을 결정하는 3대 선거로 꼽혀왔다. 극우 정당인 네덜란드 자유당, 프랑스 국민전선(NF),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이 다크호스로 급부상했고, 가장 먼저 실시되는 네덜란드 총선은 포퓰리즘 열풍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여겨졌다.
 
한때 VVD에서 주목받는 젊은 정치인이었던 빌더르스는 2006년 탈당해 자유당을 창당한 후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폐쇄, EU 탈퇴, 국경 감시 강화 등을 주장해왔다. 네덜란드에서 그의 약진은 영국과 미국에 이어 유럽 대륙에서도 이민자들로 인한 일자리 부족과 치안 불안에 대한 백인들의 불만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였다.
 
하지만 네덜란드 유권자의 다수는 빌더르스의 선동적 공약에 고개를 돌렸다. 이번 총선의 잠정 투표율은 80.2%로, 1986년 총선(86%)이후 가장 높았다. 극우를 견제하려는 유권자 다수가 투표장에 나왔다는 분석이다.
 
특히 총선 직전 불거진 터키 개헌관련 집회 논란은 빌더르스에겐 악재였다. 이 집회에 참석하려던 터키 장관들의 네덜란드 입국이 금지되자 터키가 강하게 반발했다. 이 때 강경 대응만을 요구한 빌더르스보다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대처한 뤼테 총리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뤼테 총리는 이날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 이후 네덜란드가 잘못된 포퓰리즘에 ‘그만(STOP)’이라고 외친 저녁”이라며 승리를 자축했다.
 
과반 정당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CDA, D66 등과 연정 협상에 착수한 뤼테 총리가 차기 정부를 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넥시트(네덜란드의 EU 탈퇴) 가능성도 사라져 브렉시트 도미노를 우려하던 EU 지도자들은 환호했다. 4선 연임에 도전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뤼테 총리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극단주의에 대항한 명백한 승리”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네덜란드 총선 결과를 통해 극우 포퓰리즘 확산이 멈췄다고 분석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관측이 나온다.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마린 르펜 후보의 당선 여부 등을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네덜란드 총선에서도 VVD는 지난 총선 대비 8석 가량을 잃었고, 연립정부를 함께 구성했던 노동당은 29석을 잃는 참패를 당했다. 양대 정당을 떠난 표는 중도 정당이나 이해집단을 대변하는 소수 정당으로 흩어졌다. 빈부격차 확대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주류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했다는 국민의 불만이 여전하다는 얘기다.
 
빌더르스는 투표 후 “한 번 병을 빠져나온 지니(알라딘의 거인)는 다시 들어가지 않는다”며 극우 지지 민심이 다시 불붙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네덜란드의 트럼프’를 꺾는데 일조해 유럽 진보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클라버 대표는 “가짜 인기를 얻기 위해 애쓰지 말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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