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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 피나 바우쉬 몸짓을 다시 무대에

중앙일보 2017.03.17 00:55 종합 22면 지면보기
2시간 이어지는 공연을 통해 인간 움직임의 의미를 탐구하는 ‘스위트 맘보’. [사진 우술라 카우프만]

2시간 이어지는 공연을 통해 인간 움직임의 의미를 탐구하는 ‘스위트 맘보’. [사진 우술라 카우프만]

이 한 장의 사진. 한 여성이 남성에 머리채와 치맛자락을 잡힌 채 끌려가는 아찔하고 급박한 순간.
 

죽기 1년 전에 남긴 ‘스위트 맘보’
24~27일 LG아트센터서 한국 초연
여러 장르 혼합한 도발적 내용 담겨

이 인상적인 장면은 춤이다. 현대 무용의 한 동작이다. 현대 무용의 전설이라 불리는 피나 바우쉬(1940∼2009·사진)가 암으로 죽기 1년 전 남긴 작품 ‘스위트 맘보’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 사진 바로 앞 장면을 보자. 무대에서 이동하려는 여성을 남성 두 명이 계속 제자리로 돌려보낸다. 여성은 소리를 지르며 반항한다. 그러나 남성들은 여성을 붙들고 가둔다. 여성의 갈망은 꺾이고 끝내 폭력에 제압당한다. 이 일련의 동작은 춤인가? 이 몸짓들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피나 바우쉬의 작품은 하나같이 도발적이고 충격적이다. 오는 24∼27일 LG아트센터에서 초연되는 ‘스위트 맘보’ 역시 불편하고 불분명하다. 춤이라지만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동작 앞에서 관객은 의미를 찾고 이야기를 읽으려고 애쓴다. 하나 피나 바우쉬 작품은 한 번도 온전히 해석된 적이 없다. 생전의 그가 작품에 대해 일절 말을 삼갔기 때문이다. ‘스위트 맘보’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초연 이후 전 세계에서 무수히 무대에 올랐지만, 왜 2시간이나 이어지는 이 몸부림이 ‘스위트 맘보’라 불려야 하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무대를 보자. 무대를 가득 채운 하얀 커튼이 흩날린다. 이 커튼 사이로 무용수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커튼 위에는 독일 흑백영화 장면이 투사돼 흐른다. 여성 무용수 7명은 노랑·분홍·하양·검정 등 원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 그들은 말하고 뛰어다니고 춤을 춘다. 반면에 남성 무용수 3명은 검은색 정장 차림이다. 말이 없고 동작도 매우 제한적이다.
 
피나 바우쉬의 의도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다음 장면이 있다. 여성 무용수들이 제 이름을 되풀이해 말하며 잊지 말라고 부탁한다. “내 이름은 레지나입니다. 레지나 애드벤도! 잊지 마세요!(My name is Regina, Regina Advento! Don‘t forget it!)”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바닥에 누워 양동이에 든 물을 제 몸에 끼얹는 장면도 있다.
 
‘스위트 맘보’가 먼저 공연된 나라의 언론들은 이러한 장면들에서 여성성을 읽어냈다. 영국의 가디언은 ‘천국과도 같은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은 여성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신호를 보냈다’고 해석했고, 텔레그라프는 작품에서 ‘깊은 슬픔’을 찾아냈다.
 
피나 바우쉬는 여러 장르를 혼합한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무용과 연극이 만나고 음악과 영상이 섞이는 작품을 생산했다. 다양한 장르를 활용했다지만 그의 주제는 언제나 하나였다. ‘무엇이 인간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가.’ 이번 작품에서 굳이 여성성을 읽지 못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피나 바우쉬 무용단은 현재 세계 순회공연 중이다. 창단 40주년을 기념해 2013년 9월부터 오는 5월까지 세계 각지에서 공연을 하는 중에 한국에도 들를 수 있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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