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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믿고보는 배우 박정민, '아티스트:다시 태어나다'

중앙일보 2017.03.14 15:20
어떤 예술 혹은 예술가든 그 자체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알아봐 주는 이가 있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 태어난다. 우리 시대 예술의 허와 실을 발랄하게 풍자하는 ‘아티스트:다시 태어나다’(3월 9일 개봉, 김경원 감독, 이하 ‘아티스트’)에서 각각 무명 화가 지젤 역과 갤러리 대표 재범 역을 맡은 류현경(34)과 박정민(30)도 그런 사이다. 서로의 재능 그리고 가능성을 알아봐 주고 응원하는 지우(知友).
 

류현경 & 박정민, 서로 묻고 답하다

두 사람에게 서로를 직접 인터뷰해 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 두 사람의 스마트폰 메모장은 전날 밤까지 고심한 질문들로 빼곡했고, 서로를 잘 아는 이들만이 묻고 답할 수 있는 알토란 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하나 더. 두 사람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예술가’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의상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고심 끝에 두 사람은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며 진짜 그들이 입어 왔던 옷(청 재킷)을 가져왔다. 친근한 푸른빛의 재킷이 두 젊은 배우의 솔직함을 빼닮았다. 두 사람 곁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기자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티스트’의 재범에게는 예술만큼이나 현실도 중요하다. 일찍이 지젤의 재능을 알아본 재범에게 지젤의 뜻하지 않은 죽음은, 그가 지닌 예술적 이상과 현실의 욕망을 하나로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요절한 천재 화가’의 전설은 그만큼 강력한 것이니까. 하지만 지젤이 깨어나고, 재범은 그 어느 때보다 아슬아슬하게 흔들린다. “배우라면 누구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라 말하는 박정민. 하지만 결정적인 대목에서 그는 재범과 다르다. 박정민은 흔들릴 때마다 그 누구보다 확고하게 중심을 잡는 배우다.
사진=라희찬(STUDIO 706)

사진=라희찬(STUDIO 706)

 
류현경: 평소 어떤 상황을 바라볼 때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박정민만의 힘’으로 작용하는 느낌이다.
 
박정민: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본다기보다,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거다. 난 기본적으로 내가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뭘 시작할 때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해내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러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게 내 성격이다. 연기만 그런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모든 일에 그랬다. 그래서 어떤 성과가 났을 때도 그걸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건 좀 아쉽다.
 
류현경: ‘동주’의 송몽규 역으로 지난해 제37회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을 탔을 때도 그랬나.
 
박정민: 물론 기분 좋았다. 그런데 ‘우와! 뭔가 달성했다!’가 아니라 ‘어휴, 다행이다’ 하는 느낌. 그나마도 하루 이틀 지나니 스스로 그런 기분을 계속 가져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류현경: ‘동주’를 찍기 전, 연기를 그만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박정민: 맞다. 나 스스로 배우로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주변에서 내게 요구하는 방향이 다를 때마다 타협해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연기를 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걸 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5년이 지나도록 그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 자신도 싫었고. 그때 ‘동주’ 시나리오를 받았다. ‘일단 이것까지만 열심히 해 보자’는 마음으로. 그런데 ‘동주’를 찍으며 첫 영화 ‘파수꾼’(2011, 윤성현 감독)을 촬영하던 때처럼,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그 작품에만 빠져 연기하는 기분을 다시 느꼈다. ”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사진=영화사)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사진=영화사)

 
류현경: ‘연기의 진심’이란 무엇일까.
 
박정민: 연기든 공부든, 결국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느냐의 싸움인 것 같다. ‘전설의 주먹’(2013, 강우석 감독)에서 권투 선수 임덕규를 연기할 때, 석 달 동안 하루에 열 시간씩 권투 훈련을 한 것도 그래서다. 사실 권투 장면을 기술적으로 잘 찍기 위해서라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그런데 진짜 권투 선수들은 그렇게 혹독하게 연습할 것 아닌가. 덕규가 편파 판정으로 지는 장면을 찍는데, 나도 모르게 진짜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힘들게 연습한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두 시간 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더라.
 
류현경: 맞다. 연기는 ‘기술적으로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진심이 보이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 ‘아티스트’를 찍으면서 그런 진심을 느낀 순간은.
 
박정민: 지젤이 재범의 갤러리와 계약 후 갑자기 불안해 하지 않나. 구석으로 재범을 불러서 ‘그거 가짜잖아요’ 할 때, 그 순간 류현경이 속으로 파르르 떨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사진=라희찬(STUDIO706)

사진=라희찬(STUDIO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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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경: 나도 최근 박정민의 연기를 인상 깊게 본 순간이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에서 로미오로 그 뜨거운 에너지를 두 시간 넘게 발산하는 모습 말이다. 내가 아는 박정민이 아닌 다른 사람 같았다.
 
박정민: 내게 연극 무대는 ‘도전’의 의미였다. 2014년에 내가 제작하고 주연한 소극장 연극 ‘G코드의 탈출’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로미오와 줄리엣’은 대극장(국립극장)에서 하는 규모가 큰 공연이다 보니 부담이 컸다. 도전을 넘어서 ‘무조건 잘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드니까 더 힘들었다. 공연 초기에는 욕도 많이 먹었다. 내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아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그 스트레스로 살이 10㎏ 가까이 빠졌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주연 배우 박정민과 문근영.    [자료제공=샘컴퍼니]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주연 배우 박정민과 문근영. [자료제공=샘컴퍼니]

류현경: 그런 수많은 고비와 역경에도 ‘나만의 길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 있다면.
 
박정민: 돌아보면, 난 어떤 목적을 의식하고 뭘 하면 대부분 잘 안 됐다. 오히려 앞뒤 안 가리고 연기에만 빠졌을 때 예상치 못한 성과가 따라왔다. 그게 나만의 징크스인 건지, 세상의 진리인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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