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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커 방한금지 부메랑 … 제주 중국인들 “일자리 잃을 판”

중앙일보 2017.03.14 01:54 종합 12면 지면보기
제주시 연동의 귀금속점에서 일하는 중국인(한족) T씨(45·여)는 요즘 잔뜩 풀이 죽어 지낸다. 중국을 떠나 1년 전 돈을 벌기 위해 제주에 왔지만 중국 정부가 지난 2일 자국민의 한국 여행 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매출이 줄어 한국인 사장의 눈치를 계속 보고 있다.
 

15일부터 단체관광 예약 0
중국인 운영 대형 여행사 휴업
“중국 돌아가거나 새 일 찾아야 하나”
가이드 2400명도 불안에 떨어
“중국 정부, 자국민 발등 찍고 있어”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조치로 한국 내 중국인들에게 불똥이 튀었다. 13일 제주의 한 중국인 식당이 텅텅 비어 있다. [제주=최충일 기자]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조치로 한국 내 중국인들에게 불똥이 튀었다. 13일 제주의 한 중국인 식당이 텅텅 비어 있다. [제주=최충일 기자]

지난해 10월 이전까지 이 점포를 찾는 중국인 손님은 하루 20명 이상이었지만 지난 2일 이후 3~4명으로 급감했다. T씨는 “제주의 쇼핑센터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은 얇은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불안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중국 정부의 조치가 결과적으로 한국에 사는 중국인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중국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구실 삼아 부당한 보복 조치를 가하면서 한국에 진출한 중국 기업과 중국인 직원들이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N여행사의 텅 빈 15일 이후 스케줄표. [제주=최충일 기자]

중국인이 운영하는 N여행사의 텅 빈 15일 이후 스케줄표. [제주=최충일 기자]

관광업계에 종사하는 중국인들이 특히 직격탄을 맞았다. 제주시 연동의 N여행사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중국 업체다. 제주도 내 중국인의 한국 관광 시장에서 1위를 달리는 여행사지만 직원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5월 1일까지 잠정 휴업을 결정하고 지난 3일부터 비상근무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이 업체는 직원 200여 명, 관광안내사(가이드) 500여 명 등 고용 인원이 700여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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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사의 스케줄을 보니 중국 정부의 한국 여행 금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5일(중국 소비자의 날) 이후는 텅 비어 있다. 여행사 산하의 직영호텔 4곳, 사후면세점 3곳의 운영도 15일 이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여행사 관계자는 “3월부터 8월까지 올해 관광객의 30~40%가 몰리는데 사실상 시장이 사라졌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직원 30명과 가이드 300여 명이 일해 온 인근 Y여행사 관계자는 “중국계 여행사들은 중국 정부 눈치가 보여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불안해했다.
 
 
제주도관광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360만3021명의 약 85%인 306만1522명이 중국인이었다. 이 중 80~90%를 이 두 여행사가 담당했다. 업계에 따르면 제주도에서 중국인을 상대하는 가이드는 3000여 명인데 이들 중 80%(약 2400명)가 중국인이다. 중국인 가이드 L씨(47)는 “일부 가이드는 이미 중국으로 돌아갔거나 다른 일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를 주로 상대해 온 요식업계의 중국인 종사자들도 불안해 하고 있다. 갑각류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즐겨 찾았던 제주시 연동의 중국인 거리인 바오젠(寶健)거리 인근의 킹크랩 전문점.
 
지난해까지 하루 20마리 이상의 킹크랩을 팔았지만 이달 들어 하루 2~3마리에 그치고 있다. B킹크랩 전문점의 한국인 사장은 “8명이던 중국인 직원을 지난달 4명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중국 식료품을 취급해 온 제주시 연동의 Y유통은 하루 40만원 이상이던 매출이 15만원 수준으로 줄었다.
 
중국 정부의 자국민 발등 찍기는 중국 국내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 정부에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 대해 중국 정부가 무리한 보복을 가하면서 중국인들에게 불똥이 튀었다. 중국에 진출한 롯데마트 99개 점포 중에서 55곳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최소 5000명의 중국인 직원이 고용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한다.
 
오상훈 제주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정치·군사적 목적을 위해 경제제재 수단을 동원한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는 국제규범에 맞지 않는다”며 “한·중 관계를 악화시키고 자국민조차 배려하지 않는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는 멀리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인천시는 대규모 기업회의 등을 위해 인천을 찾으려던 중국 기업들(8개 사 4만여 명)의 입국 시기가 불투명해지자 이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미국·유럽·동남아에서 대체 시장을 개척하고 나섰다.
 
인천시는 미국 유타주에 본사를 둔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 등을 제조·판매하는 업체(포라이프 리서치)의 아시아 지역 회원 5500명의 인센티브 관광을 송도컨벤시아에 유치했다. 이들은 5월에 방한한다.
 
인천시 관계자는 “유럽 지역 자동차기업(1000명)과 동남아 모 백화점(200명)의 기업회의를 유치하기 위한 협상도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고 전했다.
 
제주·인천=최충일·최모란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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