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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심판 92일, 세번의 위기

중앙일보 2017.03.12 18:16 종합 4면 지면보기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파면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그 92일간의 모든 과정을 역사로 남겼다. 헌재의 바람대로 이 결정이 국론 분열과 혼란을 종식시켜야겠지만 헌재의 결정 과정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겼다.


이번 탄핵심판 과정에서 갈등이 가장 첨예했던 선고일 결정 과정에 대한 아쉬움도 그중 하나다. 박한철(64) 전 헌재소장은 퇴임일을 엿새 앞둔 9차 변론(1월 25일)에서 구체적인 날짜를 언급했다. “헌재 구성상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3월 13일까지는 이 사건의 최종 결정이 선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에 이어 이정미 재판관까지 퇴임해 7인 체제가 되는 상황을 우려해 신속한 재판을 강조한 발언이었지만 박 전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강하게 반발했다. 재판의 공정성에 승복하지 못하게 하는 빌미를 준 측면이 있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이중환 대표 변호사는 헌재와 국회의 ‘사전 교감설’도 제기했다. 


정주백 충남대 법대 교수는 “헌재는 박 전 소장의 발언 이후 ‘졸속 재판’이라는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신속 재판에 대한 강한 의지는 재판부 내부에서만 공유하는 것으로 충분했다”고 지적했다.


헌재 재판부가 법정을 모독하는 발언 앞에서 모욕을 당한 점도 오점 중 하나다. 대통령의 운명과 국운이 직결된 심판정에서 박 전 대통령 측은 막무가내 변론을 펼쳐 논란이 됐다. 발언 기회가 주어지지 않자 “그럴 거면 왜 헌법재판관씩이나 해요”라고 소리를 쳤고, 이틀 뒤(16차 변론)에는 100분간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급 변론을 펼치면서 주심 재판관을 향해 “국회의 수석 대리인”이라고 비난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삿대질을 하기도 했다. “헌재가 (공정한 심리를) 안 해주면 시가전(市街戰)이 생기고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도 나왔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뒷목을 잡으며 답답함을 표출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나왔다. 헌재 관계자는 “법정 모독이 분명해 재판부가 김 변호사를 감치할 수 있었지만 더 큰 논란을 피하려 눈을 감았다”고 설명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재판부가 다른 논란을 고려치 않고 법치 훼손에 단호히 대처했어도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성 논란의 원인이 국회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가 의결한 탄핵소추 사유는 13가지였다가 재판부에 의해 5대 쟁점으로 압축됐고, 국회 측은 다시 4대 쟁점으로 재정리(2월 1일 준비서면)했다.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 부분을 ‘사인의 국정 농단 개입 허용과 권한남용’ 쟁점에 넣었다. ‘세월호 7시간’ 부분 등이 제외했다가 여론에 떠밀려 다시 포함되기도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탄핵소추안이 처음부터 헌법재판에 맞게 구성됐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13일 퇴임하는 이정미 재판관=이 재판관은 6년 임기를 마치고 13일 퇴임한다. 후임으로 이선애(50) 변호사가 대법원장에 의해 지명돼 국회 인사청문회와 임명 절차를 남겨 놓고 있다. 헌재는 13일 이후부터 당분간 7인 재판관 체제로 운영된다. 퇴임사에는 화합과 포용의 메시지가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 재판관은 선고 이후 지인에게 “힘들고 마음이 무겁다. 대한민국이 다시 하나 되어 더욱 발전하고 대통령을 사랑과 포용으로 껴안아 주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밝혔다.
 
윤호진·서준석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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