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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놓고 시민들 134일 만에 일상으로

중앙일보 2017.03.12 16:15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 결정 후 처음 맞은 주말. 그동안 주말이면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혔던 시민들은 모처럼 가족 나들이에 나서는 등 휴일을 만끽했다. 박 전 대통령의 퇴진을 목이 터지라 외쳤던 촛불 시민들이 탄핵이 이뤄지자 134일 만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순간이다.
 

등산에 찜질방까지...촛불 놓고 주말 여유 즐겨
국민의 힘으로 역사 바꿀 수 있다는 것 보여줘

11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에 사는 직장인 안모(40)씨 부부는 북한산국립공원을 찾았다. 평소 같았으면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외출 준비를 서둘렀을 시간이다.
 
안씨 부부는 지난해 10월 29일 최순실(61·구속기소)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뒤 점화된 1차 촛불집회부터 탄핵 심판 선고 전인 지난 4일 열린 19차 집회까지 4차례를 빼고는 모두 참석했다. 그는 불참한 4차례 집회일을 모두 기억하는데, 꼭 참석해야 할 결혼식 등과 겹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안씨 부부는 이날 4시간의 산행에서 등산 동호인들 사이에서 비경으로 꼽히는 원효봉(505m) 등에 올랐다. 손에는 촛불 대신 카메라를 들고 풍경 사진을 담았다. 안씨는 “내려온 사람의 뺨을 때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지막 20차 촛불집회(11일)에는 참석하지 않았다”며 “기분 좋게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양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38·여)씨 역시 일상을 되찾았다. 김씨는 단 한 차례의 촛불집회도 빠지지 않은 열혈 '촛불 시민'이었다. 엄동설한에도 초등학교 1학년생 딸을 데리고 광화문으로 향했었다. 헌재 결정 과정은 직장에서 몰래 생중계로 지켜봤다. 헌재 이정미 주심이 파면을 말하는 순간 주위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김씨는 11일 가족들과 집 근처의 찜질방 나들이를 즐겼다. 그는 “우리 역사가 탄핵 인용 결정으로 묵은 때를 벗듯 우리 가족도 몸을 새단장하는 기회를 가졌다(웃음)”며 “'시민은 위대하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앞서 파면 결정일인 지난 10일 치킨 전문점의 매출이 최대 20%가량 늘어났다고 한다. 헌재의 결정을 자축하는 ‘치맥(치킨과 맥주를 함께 즐긴다는 의미) 모임’이 많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대다수의 ‘촛불’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촛불 시민들은 다양한 기록을 역사에 남겼다. 최대 인파 참여(연인원 1600만명)와 최장기간(134일) 집회로 결국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촛불 시민들은 대체로 “국민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촛불 여론은 지난해 12월 9일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헌재는 12월22일 첫 준비기일 이후 79일 만에 이를 인용했는데, 촛불 집회는 민심을 헌재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안양=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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