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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위협 아닌 기회가 될 브렉시트

중앙선데이 2017.03.12 02:49 522호 21면 지면보기
런던 아이(London Eye)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세계 무역 질서가 메가 쓰나미에 시달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파기를 언급하고,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유럽 단일시장에서 완전히 떠나는 브렉시트를 추진하면서 앞으로 10년간 쌍무협정이 국제무역을 지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는 한국에게 위협이라기보다는 기회가 될 수 있다.
 

EU의 영국 때리기, 영국의 반발로
4월부터 시작될 협상 난항 겪을 듯

자유무역 선도자 위치 굳히기 위해
경쟁력 있는 조세·금융제도 마련
양국 간 맞춤 협정의 계기 될 수도

브렉시트의 중심에 놓여진 불확실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를 둘러싼 혼란스런 견해와 정치적 수사들을 지워야 한다. 영국과 무역을 하는 한국 기업은 세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브렉시트의 현재 상황은?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래에 영국과의 무역에서 어떤 불확실성이 있을 것인가?
 
메이 총리의 입장은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다. 유럽연합(EU)의 모든 요소를 버린다는 것이다. 2019년까지 단일시장과 유럽관세동맹은 물론, 유럽사법재판소에서도 떠난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 대법원은 브렉시트로 가는 길을 더 명백히 했다. 협상 과정에서 브렉시트 반대의 온상인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의회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한 것이다. 메이 총리를 지지하는 영국 의회의 성향을 고려할 때 브렉시트 과정을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른 탈퇴 협상이 4월 1일에 개시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4월 1일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것이다. 2년 동안 한국과의 무역은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이어지겠지만 그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리스본 조약 50조는 영국과 EU가 탈퇴의 조건과 무역 협정을 함께 협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가지 결과가 가능하다. 첫째, 합의에 실패해 영국이 그냥 EU를 떠나는 것이다. 둘째, 한·EU FTA처럼 영국도 EU와 무역협정을 맺는 것이다. 셋재, 첫째나 둘째 결과를 얻을 때까지 과도기를 두도록 합의하는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한국은 영국과의 새로운 무역협정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한국 기업은 지금 당장 변화에 대비한 전략을 짜야 한다.
 
영국, EU 분담금 아끼고 무역적자 해소 기대
브렉시트가 실현되면 영국 총 수출의 44%에 달하는 2230억 파운드의 대EU 수출이 악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이 수치는 52%에서부터 몇 년 동안 하락해왔다. 게다가 영국의 대미(對美) 수출은 현재 1000억 파운드를 넘는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에 대한 수출을 합친 것보다 많다. 영국은 EU 외의 국가들과의 교역에서 흑자를 내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2015년 EU로부터의 수입은 수출의 1.3배에 달한다. 이 같은 무역 적자가 지난 몇 년간 증가해왔다는 점은 다가오는 협상에서 영국에게 유리한 카드가 될 것이다. EU는 영국과의 무역에 장애물이 생기면 잃을 것이 더 많다. 예를 들어, 독일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영국에 판매되는 제품에 세계무역기구(WTO )식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2년 내에 27개 EU 회원국이 모두 만족하는 합의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영국도 EU와의 브렉시트 협상 중에는 다른 나라들과 협상을 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과 영국 간의 무역 협상은 브렉시트 이후에나 가능하다. 이 점은 영국에도 부담이다.
 
영국에게 유리한 점은 연간 3500억 파운드에 달하는 EU 분담금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 수출의 절반에 달하는 이 돈은 내부 갈등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영국은 EU 국가들에게 자유롭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브렉시트가 런던 금융시장에 큰 위협이 된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국가별 금융 규제 때문에 이 권한을 잃더라도 실제로는 영향이 크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글로벌 금융 센터인 런던에 접근하기 어려워지는 EU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런던 금융시장은 아마 영국의 가장 강한 협상 수단이 될 것이다.
 
영국에게 또 다른 큰 이점은 트럼프 카드다. 트럼프는 단호하게 브렉시트를 옹호하며 전반적으로 세계 무역을 흔들어 놓고 있다. 대서양 너머의 분위기는 영국에 우호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어떤 합의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해도 역설적으로 영국은 유리한 상황에서 한국처럼 EU와의 무역협정을 논의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한·EU FTA는 협정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협상은 양쪽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를 남기지 못하는 고전적인 죄수의 딜레마에 갇힐 수도 있다. EU는 영국이 회원국으로 누리던 것보다 뚜렷하게 나쁜 결과를 영국에 부과하려 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2차대전 시 수용소를 탈출하려던 포로들에게 행해진 ‘때리기 벌칙(punishment beatings)’에 비유하기도 했다. 메이 총리는 “나쁜 거래보다 거래하지 않는 것이 낫다”며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도 불사할 태세다. 전선은 사실상 교착상태다.
 
프랑스 선거, 독일 반EU 정서가 변수
탈퇴 협상은 시간과 정치적 일정의 싸움이 될 것이다. 만약 EU가 유로화 약세나 다른 회원국의 탈퇴 같은 또 다른 위기를 겪는다면, EU의 영향력은 약화될 것이다. 합의에 따른 질서 있는 탈퇴가 유럽을 포함한 모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게다가 동쪽의 공격적 팽창주의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서쪽의 비협조적인 트럼프 사이에 갇힌 EU는 선거가 임박한 프랑스, 반EU 정서가 심해지는 독일·네덜란드까지 더해지면서 무질서한 브렉시트를 감당할 여유가 없다.
 
브렉시트 이후 한국 기업의 주요 관심사는 영국과의 무역 환경 개선일 것이다. 한국은 EU는 물론 영국에게도 중요한 무역 파트너이다. 영국은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이고, 금융 서비스와 방위 장비를 제공하는 곳이다. 영국은 자유 무역을 선도하는 부분에서 자신의 입지를 찾으려 할 것이고, 기존에 브뤼셀이나 EU를 통해야 했던 것과는 달리 직접적인 관계를 재정립하고자 분투할 것이다. 이를 위해 매우 경쟁력 있는 조세 정책과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2년간의 목표는 ‘끼워 맞추기(one-size-fits-all)’ 식의 획일적인 기존 협상이 아니라 양국의 필요에 맞게 조정된 새로운 무역 거래를 현명하게 준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1882년 영국 항해사가 축구공을 놓고 갔던 인천의 해변에서 1953년 영국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희생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잿더미에서 오늘날의 경제적 수퍼 불사조로 부상했다. 영국과 한국 사이의 유대는 이렇게 오래되고 깊다.
 
 
로리 나이트. 전 옥스퍼드대 경영대학장
위스 중앙은행 부총재와 옥스퍼드대 경영대학인 템플턴칼리지 학장을 역임했다. 현재 영국의 대표적 투자자문사인 옥스퍼드메트리카를 이끌고 있으며, 템플턴 재단 이사로 투자위원회 의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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