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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도 멋지게 지어야 다양한 계층 어울릴 수 있어”

중앙선데이 2017.03.12 02:45 522호 16면 지면보기
[창간 10주년 기획] 프랑스 3개 부처 장관 역임한 플뢰르 펠르랭
장관 재직 시절 미니스커트도 종종 입어 화제가 됐던 플뢰르 펠르랭. 그는 이날 정장 대신 몸에 붙는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10㎝가 넘는 하이힐을 신고 연단에 섰다. 그리고 스스로를 “유연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김경빈 기자

장관 재직 시절 미니스커트도 종종 입어 화제가 됐던 플뢰르 펠르랭. 그는 이날 정장 대신 몸에 붙는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10㎝가 넘는 하이힐을 신고 연단에 섰다. 그리고 스스로를 “유연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김경빈 기자

프랑스인 플뢰르 펠르랭(44)은 2012년 한국에서 스타가 됐다. 프랑스의 중소기업·혁신·디지털 경제 담당 장관으로 ‘한국계 입양아 출신 여성’이 임명됐다는 뉴스가 알려지면서다. 그는 이후 대외교역·관광개발·재외동포 담당 장관을 거쳐 문화·커뮤니케이션 장관까지 세 부처의 수장을 역임한 뒤 지난해 초 공직을 떠나 벤처 투자 회사 코렐리아(Korelya)를 설립했다.

‘한국계 입양아 출신 장관’ 유명세
문화·중소기업·혁신 담당 수장 거쳐
“문화계 블랙리스트, 있어서 안될 일
한국여성 ‘자기 비하’ 열등감 버려야 ”

 
지난 1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그를 만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건축가협회(회장 배병길)가 주관한 ‘2017 국제건축문화정책심포지엄’의 연사로 참석한 터였다. 그는 이날 기조 연설에서 프랑스 문화장관 시절의 경험에 근거해 ‘프랑스 건축을 위한 국가 전략’을 들려주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건축은 문화부와 시설부 두 정부 부처 산하에 있으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고아 같은 존재였다”며 “장관 재직 시절 나라 전체에 건축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일반 대중과 건축가를 대상으로 대토론회를 개최하고 전략을 입안하고 실현했다”고 덧붙였다.
 
건축이 왜 중요한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는 공간을 만드니까. 훌륭한 건축물이 주는 혜택은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프랑스 센 강변 정비사업의 경우 파리 13지구 강둑에 지어진 지 오래되고 방치된 집들을 정비하면서 일부를 공공 주거지로 바꿨다. 13지구의 경우 역사유적지로 지정되지 않은 덕분에 규제가 많지 않아 비교적 자유롭게 지을 수 있었다. 센 강변의 영구 임대주택은 주변 환경도 좋고, 건물도 멋있다. 건물 일부는 일반 분양도 했다. 임대인과 같은 건물에서 함께 산다. 도시 정책에서는 여러 계층이 어울려 사는 ‘소셜 믹스’가 중요하다.”
 
제 돈 주고 입주한 사람들이 임대주택에 반대하지 않나.
“서민용 임대주택이지만 예쁘게 지어 놓으니 사람들의 저항감이 덜하다.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사람들도 저소득층이 밀접한 다른 지역과 달리 재정비한 구역이 아름다우니까 만족하며 자신들의 공간을 아끼며 살게 됐다.”
 
서울의 경우 청년 주거 문제가 심각하다.
“프랑스의 경우 법으로 지자체마다 주거의 20%를 서민용 임대 주거로 지어야 한다고 규정해 놨다. 지자체장이 어느 지역에 임대주택을 지을지 결정할 수 있다. 파리의 경우 시장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중심 지역에 공공주택을 짓고 있다. 임대주택이라고 도심에서 멀거나, 좋지 않은 환경에 짓다가는 정책 자체가 실패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플뢰르 펠르랭은 장관에 취임한 이듬해인 2013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에 열 번 이상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인연의 물꼬가 한번 트이자 봇물이 터진 모양새다. 첫 방문 당시 “나는 프랑스인”이라고 잘라 말하던 그는 이번엔 “서울에 오면 집에 오는 느낌이 든다. 자꾸 오다 보니 한국의 정치·문화 등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방한한 날이 마침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진 날이었다. 그는 “직전 방한했을 때가 지난해 10월 말로, 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PC 관련 첫 뉴스를 내보낼 때였다”며 “그간 SNS를 통해 뉴스를 접하며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국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 논란을 어떻게 보나.
“문화부 장관 재직 시절 나는 (블랙리스트에) 반대하는 일을 했다. 문화 안에서 다소 낮게 평가되던 장르를 오히려 장려하기도 했다. 비디오 게임·만화·랩 등이다. 이런 장르도 문화적 표현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봤다. 사실 프랑스 일부 도시에서 예술인의 성향을 따지며 검열하는 일이 있곤 했다. 하지만 예술인이 자신의 창작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검열도 당해선 안 된다는 게 내 신념이다. 소아성애자라든지, 법에 저촉되는 창작 표현을 했다면 모를까.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고 해서 배제하는 것은 그야말로 프랑스적 가치에 반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수개월간 진통을 겪은 한국과 한국인을 위해 조언한다면.
“내가 뭐라 이야기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프랑스 역시 정치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 다만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투표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지난 대선 때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젊은 층이 많았다고 들었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표현이다. 두 달 뒤 대통령 선거가 열릴 때 젊은이들도 꼭 투표했으면 한다.”
 
최근 네이버와 라인으로부터 1억 유로를 출자받아 유럽 투자 펀드 ‘K-펀드 1’을 출범시켰다.
“코렐리아 캐피털은 벤처 투자 펀드다. 프랑스의 스타트업 기업들이 투자를 받는데, 단순히 은행처럼 돈만 대출받는 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옆에서 지원하는 게 목표다. 최근 ‘드비알레(Devialet)’라는, 최첨단 기술로 고급 앰프를 만드는 프랑스 벤처 회사에 투자했다. 한국 시장에서도 이들의 제품을 볼 수 있길 희망한다.”
 
공직생활을 한참 하다가 이제 민간인이 됐다. 어려운 점은 없나.
“다른 환경에서 잘 적응한다. 생각이 유연한 편이다. 여러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많이 배웠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자신한테 충실하고 일관성 있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지난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성공한 여성 리더로서 한국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기 검열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성들은 특히 ‘내가 저 자리에서 잘할 수 있을까, 내가 능력이 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예를 들면 월급을 많이 받고 싶어도 강력히 요구하지 않고, 승진을 노리지도 않는다. 여러 연구결과에서도 증명됐듯, 여성들은 남성과 달리 스스로를 평가 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콤플렉스를 덜 갖고, 부정적인 질문을 덜하고, 여성들끼리 네트워크를 갖고 가치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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