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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포스트86세대, 사적 이익 침해에 분노해 시위

중앙선데이 2017.03.12 01:43 522호 10면 지면보기
[창간 10주년 기획] 14년간 바뀐 세대별 정치·사회 성향 분석
세대의 특성은 유동적이다. 생물학적으로 나이를 먹기도 하고 새로운 인구 집단의 유입으로 성향이 변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 세대 구분 방식인 산업화(1959년생 이전), 86(1960~69년생), 포스트86(1970년생 이후)으로 나뉜 세대도 마찬가지다. 변화는 외형적 측면에서 시작된다. 산업화세대는 갈수록 규모가 줄었으며 혈기왕성했던 86세대는 중·장년이 됐다. 세대 끝에 위치하지만 연장자 나이가 어느덧 40대를 넘기게 된 포스트86세대는 우리 사회 중추로 자리 잡았다.
 

이대생 ‘왜 학위 장사하나’ 시위
선배들은 공적 목표가 시위 명분

산업화세대 지지 받은 박근혜 정부
포스트86 낮은 지지, 세대 간극 커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 낮아지고
사법부를 사회 최후 보루로 여겨

중앙SUNDAY는 이원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가 한국종합사회조사(KGSS) 통계 데이터를 3개 세대 집단으로 나눠 시계열적(2003~2016년)으로 분석한 ‘노무현 정부 이후 한국 사회 세대별 정치·사회 성향 변화’ 자료를 통해 지난 10여 년간 이들 세대의 외형이 아닌 내면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추적했다.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 이들 세대 집단의 힘은 한국 현대사에서 극적 변화를 일으켜 온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세대 집단이 일으킨 과거의 변화를 통해 미래를 진단해 본다.
 

“기대가 컸던 만큼 지지세력의 염원을 실현시키지 못한 점에 대한 실망도 컸다.”
 
대학 재학 시절 한국대학생총연합회(한총련) 대변인을 지내는 등 진보 운동권이었던 박병언(44)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이후 비판적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원래 싫어하던 사람은 계속 싫어했고 지지했던 진보 운동권 진영은 실망감으로 더 강하게 돌아섰다. 신자유주의 노선을 택해 놓고 경제도 어렵게 했으며 아파트값도 올려놨다. 도덕성만은 믿었는데 측근 비리 등이 터진 걸 보면 ‘똑같구나, 얘네도’란 정서마저 생겼다. 기대가 워낙 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만족시키기 더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 설명처럼 당시 노무현 정부 지지도는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낮았다. KGSS의 ‘현 정권의 국정 운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5점 척도, 숫자가 높을수록 지지)라는 설문 항목에 대한 답변에서 2003~2007년까지 정부 지지도는 평균적으로 산업화(2.30점), 86(2.25점), 포스트86(2.32점)으로 조사됐다. 원래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산업화보다 오히려 지지세력이었던 86이 더 비판적이었다. 86은 2006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전 세대 중 가장 낮은 지지를 나타냈다. 진보세력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이 됐지만 진보가 반대하는 정책도 실행한 점 등이 이유로 거론된다. 당시 일각에선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간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당시만 해도 노 전 대통령의 싸우자고 덤비는 리더십 스타일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이가 많았다. 자기 지지기반의 절반가량을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떨어뜨려 낸 것도 낮은 평가의 한 요인이다. 지금 보면 이후 들어선 정권들보다 경제지표·부패지표 등에서 훨씬 괜찮았는데 당대 평가는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세대별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산업화의 지지도가 가장 가파르게 올라갔으며 86이 중간, 포스트86이 가장 비판적이었다. 이 같은 흐름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부터 더욱 가속화됐다. 지난해 기준 산업화는 2.92점, 86과 포스트86은 각각 2.16점, 2.05점으로 산업화와 나머지 세대 간 간극이 가장 크게 벌어졌다. 이원재 교수는 정권별로 지지층을 어떻게 대했는지가 세대별 분화를 이끈 것으로 분석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중도적 입장에서 정책을 실행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보수와 진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쳐 지지도가 낮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부터는 일관되게 보수적 정책을 펼치니 이를 지지하는 산업화 세대의 확고한 지지를 얻게 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이 간극이 더 벌어진 것은 더 강력한 보수이기 때문이다. 이 정부에서 일했던 이들 상당수가 박정희 전 대통령 때의 인물이다. 비슷한 시기를 경험했던 산업화세대에 더 호소할 수 있는 요인이었다.”
 
대북 태도는 적대적 입장으로 변해
북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설문조사 항목은 전 세대가 적대적 입장으로 변하는 추세다. 하지만 세대별로 속도는 차이가 난다.
 
가장 젊은 세대인 포스트86은 2008년까지 86과 비슷한 입장이었으나 이후 적대적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는 해당 시점 이후 박왕자씨 피살사건(2008년 7월)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천안함이 침몰(2010년 3월)된 뒤 연평도 포격사건(2010년 11월)이 발생하는 등 북한이 도발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점과 관계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시립대 학생인 김주휘(25)씨는 “어릴 땐 한 민족이란 생각이 더 강했지만 커 가면서 보니 북한 정권은 ‘노답(답이 없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연평도 포격사건 때 충격을 받았다. 실제 우리 국민이 공격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86은 전 세대 가운데 북한에 대해 가장 온정적 입장이다. 2003년과 비교해 보면 적대적 입장으로 이동했지만 다른 세대와 비교하면 그 속도가 가장 느리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86은 민족주의적 입장에 서다 보니 북한에 마냥 비판적일 수 없었다. 북한이 뭘 하더라도 너무 자극하지 말고 봐줘야 한다는 심리가 있었다. 하지만 포스트86은 민족주의 프레임보다는 보편주의, 세계시민주의적 프레임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북한이 국제적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이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에 대한 태도 외에도 포스트86은 전 세대와 차이점이 많다. 지난해 하반기 미래라이프대(평생교육 단과대) 설립에 반발해 일어난 ‘이화여대 학생시위’가 그 예다. 기존 86세대 입장에서 보면 이 시위는 독특했다. ‘학교가 왜 학위 장사를 하느냐’는 사적 이익 침해의 관점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 학교 87학번인 이현재(48·여성철학) 서울시립대 교수의 설명이다.
 
“공동체의 ‘공정한 룰’이 깨져 사적 이익이 침해된 데 대한 분노로 시위가 시작됐고 그 자체가 사람이 모이는 명분이 됐다. 사적 이익을 금기시하고 독재 타도 등 공동체적 목표만이 시위 명분이 될 수 있었던 86세대와는 다르다.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에서 자라온 포스트86에게 진보는 이 같은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보다. 출발점은 달랐지만 이 시위는 정유라 사태라는 변곡점을 지나 체제 변혁을 위한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자체로 긍정적이다.”
 
美·日에 우호적인 포스트86
미국·일본·북한·중국·러시아 등 한국 주변을 둘러싼 국가들에 대한 태도는 어떻게 나뉠까. 포스트86은 지난해 기준 전체 설문 응답자의 72.8%가 미국을 가장 가까운 나라로 꼽았다. 일본(10.6%)·중국(9.7%)·북한(6.5%)·러시아(0.4%) 순이었다. 하지만 2003년 조사에선 북한이 35.6%로 가장 많았으며 미국은 31.8%로 2위였다.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효순·미선양 사망사건’ 등으로 반미 여론이 커졌던 영향으로 분석된다. 포스트86의 미국에 대한 선호는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학원 강사인 박경흠(30)씨는 미국 선호에 대해 영어의 영향력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미국을 가장 가깝게 느끼는 건 영어 때문이다. 다른 나라는 언어조차 모르는데 영어는 좋든 싫든 아는 언어다. 또 일본과 중국은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우리와 각을 세우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거리감이 있다. 북한은 가장 최근에 있던 교류에서 ‘포탄’이 날아다녔던 탓에 적대감이 크다.”
 
86은 전 세대 중 중국(13.7%)과 북한(16.9%)에 대한 선호가 가장 컸다. 산업화는 미국(79.2%)에 압도적 지지를 보였다. 진보 진영에서 활발히 학생운동을 한 A씨(46)는 “북한과 원수처럼 지내긴 하지만 그래도 언제가 하나가 돼야 할 통일 주체가 아닌가. 이념을 떠나 한 민족이라는 점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중국도 한반도 평화체제 유지를 위해 지렛대 역할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어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는 전 세대가 추세적으로 하향세를 보였다. 4점 척도로 숫자가 클수록 신뢰도가 높게 설계된 설문 항목에서 포스트86의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는 2003년 2.1점에서 지난해 1.9점으로 하락했다. 86(2.1점→1.8점), 산업화(2.0점→1.7점)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사회 변화를 이끌어 가는 개혁적 이미지로 신뢰받았지만 지금은 시민단체 수가 늘어나면서 이미지가 퇴색됐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예전엔 사회 부정부패를 고발하고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쳐 개혁하는 긍정적 이미지였다. 하지만 정치색을 강하게 띤 단체들이 시민단체를 자처하면서 이 같은 이미지가 흐려졌다. 요즘 시민단체라고 얘기하는 곳들 중 저런 단체도 시민단체인가 싶은 곳이 많아졌다.”
 
국가 위기 땐 군조직에 전폭적 지지
또 시민단체를 이끌어 가는 지도층 일부가 일탈행위로 형사처벌받게 된 점도 영향이 있다. 실제 2015년엔 미국계 투자회사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강하게 반대했던 장화식 전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가 비판을 하지 않는 대가로 론스타 측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군조직에 대한 신뢰도는 특이한 변화를 보였다. 산업화가 가장 높은 신뢰를 보내고 86·포스트86 순이었으며 이 추세는14년간 동일했다. 하지만 천안함·연평도 포격사건이 있었던 2010년 국민 전체의 지지가 일시적으로 동시에 상승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군조직 전체에 전폭적으로 지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입법·사법·행정부의 지도층 중 가장 신뢰받는 것은 사법부였다. 입법부는 1.32점으로 가장 낮았으며 행정부는 1.59점, 사법부는 1.83점이었다. 이원재 교수는 “법조 비리 등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사법부에 대해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로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입법부와 행정부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평가가 갈릴 수 있어 사법부가 상대적으로 높은 신뢰도를 보인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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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제 기자, 조수영 인턴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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