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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가 점령군 행세해선 안되고 패자는 승복해야

중앙선데이 2017.03.12 01:01 522호 7면 지면보기
7인 원로의 고언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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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자가 점령군 행세를 해선 안 된다. 패자도 승복해야 다음에 기회를 얻는다.”
 
“8대 0 결정은 분열을 끝내고 통합의 길 가자는 뜻이다.”
 
“새 지도자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정체성을 지킬 의지가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내몰았던 탄핵 정국이 일단락됐다. 이제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둘러싼 외교안보 현안과 민생경제 등 나라 안팎의 시급한 과제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각계 원로들은 당면한 도전들이 만만치 않다면서 탄핵 이후가 더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을 회복하기 위해선 갈라진 민심을 수습하는 사회통합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촛불 측은 ‘너희가 틀렸다’고 해서는 안 되고 태극기 측은 진심으로 승복해야 한다”며 “한마음으로 뭉쳐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홍구 전 총리는 “헌법 질서 속에서 대통령의 선출과 퇴진을 다 이뤘다”면서 “헌법에 의해 움직이는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원로들은 불행한 대통령이 반복되는 권력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다시는 이렇게 불행한 역사를 쓰지 않기 위해 정치권이 반성하고 개혁해야 한다. 헌법·국회법 대수술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김병준(전 청와대 정책실장) 국민대 교수는 “권력에 따른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공유하는 권력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홍구 전 총리]
87년 체제 후 30년, 권력 집중 손 봐야 
1987년 헌법 체제에서 우리는 지도자를 직접 뽑아왔다. 이번에 탄핵 결정으로 헌법 질서 속에서 지도자의 진퇴를 이뤘다는 점에서, 크게 보면 헌법에 의해 움직이는 공동체·공화국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긍정 평가하는 게 옳다고 본다. 스스로 만든 헌법을 갖고 한 일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다. 이제는 앞으로 30년을 어떻게 갈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현행 1987년 헌법은 과도하게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문제를 다시 노출시켰다. 4·13 총선은 이런 제도로는 안 되겠다는 국민의 총의나 다름없었다. 국회 개헌특위가 곧 성과물을 내놓겠지만 이제는 각 정파의 지도자들이나 대선주자들이 권력구조를 손보는 개헌에 대해 각자의 소신과 입장을 밝혀야 할 때가 됐다.
 
향후 대선 국면에서 안보 사안, 특히 사드 체계 배치 문제가 극명한 대립각을 부르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분명한 입장과 논리를 다듬어야 한다. 애매한 입장만 되풀이해서는 또다시 국론 분열과 혼란을 초래할까 우려된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정부·권력 간섭 없으면, 기업들 더 일 잘할 것
최고 권력자라 하더라도 법의 테두리를 넘어 민간 영역을 침해하는 일은 헌법 위반이라는 것이 이번 판결의 의미라고 본다. 관 주도 사업, 관이 하고 싶은 사업에 기업이 거액의 출연금을 내는 한국적 관행을 끊어내야 한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각종 준조세나 정치 간섭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또 생길 수 있다. 대기업도 관으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바라서는 안 된다. 새 지도자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정체성을 지킬 의지가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파면됐으니 더욱 경제에 집중해야 할 때다. 모두가 정치에만 관심이 있다면 소는 누가 키우나. 지난 10년간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가 860억 달러에 불과한데 밖으로 나간 한국 기업의 투자는 2200억 달러에 달한다. 성장 동력이 훼손되는 건 구조조정이 지연된 까닭이 크다. 새 정부는 시장 자율의 구조조정을 뒷받침해 주지는 못할지언정 합리적인 구조조정을 정치적 명분으로 가로막아선 안 된다. 망할 기업은 망하게 놔두자. 정부의 간섭이 없으면 기업들은 죽기살기로 일할 것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정치권 먼저 반성하고, 개혁하는 계기 삼아야
정말 국민이 애 많이 썼다. 촛불이나 태극기나 모두의 아픔과 상처다. 승자가 점령군이나 해방군 행세를 하려고 한다면 또 다른 나라의 비극을 불러올 수 있다. 승자의 도량과 도리를 발휘하고 진 쪽은 눈물은 흘리더라도 극단적인 행동까지 해서는 안 된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은 쪽도 일단은 승복해야 한다. 승복하는 쪽은 다음에 승복함으로써 기회를 얻는 것이지 승복하지 않으면 기회마저 영원히 없고 이 나라는 더 어려워진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끝난 게 아니다. 이제 과제가 남았다. 권력의 사유화가 아니고 권력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철저히 되새겨야 한다. 제도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려는 정치권과 국민적 의지가 결집해 나가야 한다. 이번 탄핵 전 과정을 보면 국민이 끌고 갔고 정치권은 따라갔다. 돌팔매를 맞더라도 ‘국민 여러분, 이제는 저희에게 맡기고 들어가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정치인의 용기이고 정의다. 정치권이 자중자애해야 하겠다. 탄핵 사태가 주는 엄중한 교훈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는 불행한 역사를 쓰지 않기 위해 정치권이 반성하고 개혁해야 한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
발전 청사진 구체화, 국민 화합 이끌어낼 때
이번 탄핵 결정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전 사회적으로 환기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를 바탕으로 경제민주화·교육·사회복지·남북문제 등 우리 사회의 굵직한 과제들을 해결해 가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가도록 힘을 합치고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가 됐다.
 
이를 위해 치유와 화해의 과정으로 가야 한다. 그것 없이는 발전의 동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가야 한다. 국민이 더 이상 서로 상처를 주지 않도록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 이제는 정책을 통해 그동안 쌓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곧 있을 대선을 통해 민심이 요구했던 내용들을 정책으로 발전시키고 구체화하도록 해야 한다.


선거를 통해 갈등과 분열로 인한 나쁜 기운을 발전적으로 해소시켜 나가야 한다. 정치권은 정책 경쟁을 통해 평화적 개혁 발전에 대한 청사진을 낼 책임이 있다. 이를 통해 올바른 정치를 이끌어 나간다면 일부가 불만이 있더라도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고 따라가는 것, 그것이 국민적 합의이고 통합일 것이다.
 
[김용담 전 대법관]

헌재 결정 따르는 게, 법치국가 기본 원칙

이제 정말 나라 전체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가 왔다. 재판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재판 전에 이런저런 자기주장을 펼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결과가 정해졌으면 승복해야 한다. 그게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의 기본원칙이다.
 
이를 지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은 단심제다. ‘불복’ 수단을 우리 법체계 안에 별도로 두지 않은 입법자의 의도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설사 자기주장과 다른 결론이 내려졌다고 해도 그걸 존중해야 한다. 재판관 전원이 같은 의견을 낸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1954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공립학교의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브라운 대(對) 교육위원회’ 사건을 판결할 때 9대 0 전원 일치 결과가 나왔다. 당시 연방대법관들은 ‘이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 얘기했다.


의견이 나뉘었으면 더 큰 갈등을 일으킬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탄핵심판도 같은 관점에서 전원일치 결정이 나와 다행이다. 또 이번 탄핵 심리 과정에서 나온 문제점들을 검토해 보다 안정적인 심리가 가능하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8대 0 탄핵 결정은, 통합하자는 메시지
헌법재판소의 이번 탄핵 결정은 우리 공직자와 국민에게 미래를 위한 두 가지 길을 제시했다고 본다. 첫 번째는 공직자에게 제시한 정의(定義)의 길, 즉 바른 길이다. 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봉사자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며 이는 헌법에 명시돼 있다. 봉사자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주어진 권한을 사사롭게 행사하면 안 된다. 이 부분을 다시 명백하게 선언한 것이다.
 
두 번째는 통합의 길이다. 재판관 8명이 모두 인용 결정으로 뜻을 모았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다른 의견도 많았을 것이고 아마도 치열하게 논쟁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대 0으로 결론이 나왔다는 것은 헌재가 이번 탄핵 결정을 통해 그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 통합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이미 결론이 난 마당에 ‘촛불집회’ ‘태극기집회’로 분열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촛불 측은 ‘너희가 틀렸다’고 해서는 안 되고 태극기 측은 진심으로 승복해야 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데 진보가 어딨고 보수가 어딨나.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이제는 한마음으로 뭉쳐서 선진국으로 나가야 한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권한·책임 공유하는, 권력구조 만들어야
대통령 탄핵 사태는 사람(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제로만 봐선 안 된다. 그동안 모든 대통령이 국가의 지도자로서 실패한 근본 원인을 알아야 한다. 공장이 제대로 운영돼야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정치라는 공장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 과거 18대 대선 때도 조직을 운영해 보거나 중요한 결정을 해본 적이 없는 이들이 전직 대통령의 딸 또는 비서실장이라는 이유로 대선후보가 됐다.


현재 거론되는 대선후보자 중에서도 누구 하나 경제나 사회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풀어낼 이가 없다. 일자리 문제만 해도 공약만 나열할 뿐이지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방법을 찾아볼 수 없다. 혼란한 탄핵 정국 속에서 팔로어들만 있고 민심을 이끄는 리더가 없다는 게 안타깝다. 권력에 따른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공유하는 권력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개헌이 필요한 이유다. 저성장 국면에 봉착한 한국 사회는 정치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 기업 수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기고 지는 것만 생각한다면 민심은 분열되고 더욱 혼란한 정국으로 빠질 수 있다.




정용환·염지현·박민제 기자 cheong.yongw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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