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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렬한 반발은 기우 … 그러나 일부 세력은 여전히 불복

중앙선데이 2017.03.12 00:56 522호 6면 지면보기
[포스트 탄핵 정국] 깃발 내리는 두 개의 광장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첫 주말인 11일에도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에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각각 열렸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폭죽을 쏘아올리며 파면을 축하했고,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탄핵 무효를 외쳤다. 오종택·조문규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첫 주말인 11일에도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에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각각 열렸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폭죽을 쏘아올리며 파면을 축하했고,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탄핵 무효를 외쳤다. 오종택·조문규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다음 날인 11일, 서울 도심 광장의 열기는 눈에 띄게 수그러들었다. “박근혜 탄핵”을 소리 높여 외치던 촛불집회는 축제 형식으로 마지막 행사를 치렀다. 전날 탄핵 결정에 반발해 유혈시위를 벌인 태극기집회도 예상과 달리 규모와 열기가 확 줄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지난해 10월 이후 서울 도심 광장에 세워진 탄핵 찬반의 2개의 깃발이 기울고 있다.

탄핵 반대 단체 “파면 결정은 반란”
김평우 “국시에 대한 반역세력 도전”
집회 참가자 수와 열기는 확 줄어
전날 사망 사고 의식해 비폭력 강조
시민들 “이제는 일상으로 복귀할 때”

 
경찰은 특히 태극기집회에 바짝 긴장했다. 탄핵 인용 당일인 10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사망자를 낸 격렬한 폭력시위 때문이었다. 경찰은 촛불집회 참가자들과의 충돌을 우려해 1만6500여 명의 경찰력을 투입했고 폭력시위 증거 확보를 위한 채증팀도 대거 현장에 배치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이날 오후 2시 태극기집회 직전까지 세종대로의 자동차 부분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참가자가 적었다. 집회 중에도 서울광장과 인접한 서소문로에 차량이 다닐 수 있었다. 인근 도로에 빼곡하게 세워져 있던 집회 참가자들의 대절 버스도 이날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경찰도 의외로 적은 참가자 규모에 놀라는 표정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올 들어 주말마다 서울 도심을 가득 채웠던 탄핵 찬반 시위의 에너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과 함께 힘을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태극기집회의 주체는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에서 ‘국민저항본부’로 변했다. 또 ‘제1차 탄핵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국민대회’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저항본부는 “탄핵 결정은 역모였고 반란이었다. 탄핵이냐, 불복이냐 두 갈래 길뿐인데 국가 반란적 결정에 승복할 수 없다.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사망을 선고하며 국민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자는 누구에게나 처절하게 저항할 것”이라고 밝혔다. 탄핵 무효 서명도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가운데)씨가 탄핵무효 국민대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가운데)씨가 탄핵무효 국민대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공동취재단]

태극기 측 “대한민국 법치주의 사망”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 변호사인 김평우(전 대한변협 회장) 변호사는 “이번 탄핵은 대한민국의 국시 자유주의·법치주의·개인주의·민주주의를 완전히 짓밟고 민주·민족·민중의 삼민주의, 즉 김일성의 주체사상으로 대한민국의 국시를 바꾸려는 반역세력들의 대한민국 국시에 대한 도전”이라고 정의했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도 한결같이 불복을 외쳤다. 태극기집회에 다섯 차례 참가했다는 현광훈(41)씨는 “소수의견 없이 8대 0이란 결정이 나온 것을 보면 짜맞췄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번 헌재 결정은 당연히 무효이고 대통령도 나라를 위해 불복의사를 내비쳐야 한다”고 말했다.
 
송원성(78)씨는 “고영태가 진범인데 왜 수사를 안 하는가. 박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많은 뇌물을 먹은 것도 아니다. 언론 선동이다. 나라를 빨갱이에게 내줄 수 없다”고 억울해했다. 검은색 근조 리본을 단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한 중년 여성은 “헌재의 탄핵심판이 나라에 일어난 커다란 참사여서”라고 했고, 한 남성은 “어제 헌법재판소 앞에서 일어난 애국시민의 사망 때문”이라고 했다.
 
태극기집회 측의 신문 ‘애국일보’는 전날 사망한 시위자 시신을 덮은 태극기와 핏자국 사진을 게재하고 ‘태극기! 피로 물들다’란 제목을 달았다. 저항본부는 “어제 희생은 국민의 정당한 헌재 방문을 막은 경찰 측에 1차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도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누구에게나 처절히 저항해 피의 대가를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집회 참가자 수가 줄어서인지 열기는 전처럼 뜨겁지 않았다. 또 주최 측은 전날 시위자 사망사건을 의식해서인지 비폭력과 질서를 강조했다. 저항본부는 집회 시작 전 “국민저항권에서 정당한 폭력은 용인돼야 하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점에 통곡해 지금부터 다시 무저항 비폭력의 숭고한 투쟁방식으로 회귀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자는 “절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우리의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자 폭행사건을 의식해 “젊은 기자들이 절대 우리의 적이 아니니 비난하거나 폭행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어 “계엄령을 내리라는 등의 구호에는 절대 동의하면 안 되고 경찰관의 지시에 잘 따라야 한다”고도 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방송사 카메라를 보고 “너네는 언론사도 아니야!”라며 항의하기도 했으나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김평우 변호사 연설 도중 흥분한 일부 참가자가 “세월호 텐트를 불태워 버리겠다”며 인화물질을 가지고 광화문광장으로 가려고 시도했으나 연단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을 제지해야 한다”고 말렸다. 이 시위자는 경찰에 제지됐다.
 
태극기집회 참가자 중 헌재 결정을 수용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집회 말미에 “슬퍼하고 실망할 시간도 없다. 59일 뒤 대선에서 확실한 역전승을 합시다”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발언은 참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태극기집회 참가자 상당수는 탄핵 결정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히는 대목이다.
 
정치인의 참가도 줄었다. 이날 태극기집회에는 한국당의 윤상현·조원진·김진태 의원 등만 모습을 나타냈다. 대선주자인 이인제 전 최고위원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보이지 않았다.
 
헌재 인근에서 장사를 하는 박선희(가명·55)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나라를 잘살게 해 줘서 그 딸인 박근혜를 뽑았다. 탄핵은 지나친 것 같았다. 그러나 지도자라면 억울하더라도 탄핵 결정을 받아들이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자고 한마디 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박근혜가 어려서 부모를 다 총탄에 잃어 정신적으로 트라우마가 많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이게 나라다. 이게 정의다”
이날 오후 4시 광화문광장에서는 “국민이 승리했다. 촛불이 승리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는 시민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촛불집회를 주최해 온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청와대 본관이 뚜렷이 보일 정도로 맑은 날씨에 마지막 촛불집회를 열었다.
 
‘박근혜에게 고하는 8자시’란 자작시를 들고 단상에 오른 박춘명씨는 “탄핵 인용 되었구나. 빨라 가라 순실 옆에”라고 읊었다. 시민들 손에 들린 피켓 문구는 박 전 대통령 파면 이전과 달랐다. ‘박근혜를 탄핵하라’는 피켓 구호는 ‘박근혜를 구속하라’로 바뀌었다. 헌재의 탄핵 인용을 자축하는 “이게 나라다! 이게 정의다!”라고 쓰인 피켓이 곳곳에서 보였다. 광장 중간 세종대왕상은 탄핵 인용을 축하하는 화환으로 둘러싸였다. 탄핵 인용을 축하하는 마지막 집회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이날 집회는 탄핵 결과에 항의하다 숨진 태극기집회 참가자 3명에 대한 조의로 시작됐다.
 
안수영(34·여)씨는 “박 전 대통령의 거짓말을 꾸짖고 시민들의 손을 들어 준 헌재가 고맙다”고 말했다. 대학생 아들과 함께 집회에 참가한 이만수(50)씨는 “평화로운 집회를 통해 헌법을 어긴 대통령을 몰아낸 지금 이 순간은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퇴진행동은 오후 2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7 촛불권리선언’을 발표했다. 지난달 18일 장충체육관에서 진행된 ‘2017 대한민국, 꽃길을 부탁해’ 시민 대토론 결과물을 모은 것이다. 이들은 촛불 개혁과제로 공안통치기구 개혁, 재벌체제 개혁, 정치 및 선거제도 개혁 등을 꼽았다. 퇴진행동은 “촛불집회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권력을 독점한 소수에게 유린되고 조롱당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였다”며 “광장을 지켜 왔던 뜻을 이어받아 삶의 현장과 일터를 바꾸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29일 첫 촛불집회 이후 광장의 계절은 두 번 바뀌었고 다양한 기록을 쏟아냈다. 퇴진행동에 따르면 지난 134일간 열린 20차례 촛불집회에 전국적으로 연인원 1600만 명이 참가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최대 규모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그동안 집회에서 허용되지 않았던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국론 분열을 의식한 듯 이날 촛불집회에 정치인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촛불집회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 등 대선주자들은 이날 보이지 않았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만 해바라기 분장을 하고 나와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정당 연설회를 열었다. 심 대표는 “박근혜는 파면됐을 뿐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출국금지와 소환조사 등 엄정한 수사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회에서는 “박근혜는 황교안이다. 황교안도 탄핵하라”는 구호도 나왔다. 김정현(46)씨는 “촛불집회는 충분한 성과를 냈다.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탄핵하라는 지나친 주장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고 말했다.
 
 
성호준·강기헌 기자, 조수영·나영인 인턴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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