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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 어디로] 은행 지원 없이는 그룹 해체 불가피

중앙일보 2017.03.12 00:02

원전 부문 투자 손실을 책임지고 물러난 시가 시게노리 전 도시바 회장.

 
전 세계가 밸런타인데이 축제로 들뜬 2월 14일. 도시바는 원래 이날 2016년 3분기 결산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원자력 자회사 웨스팅하우스(WH) 내부 통제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산 발표가 지연됐다. 결국 당일 오전 발표를 연기한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대규모 추가 손실 가능성 커... 남는 것은 인프라 사업 뿐


사실 이번 발표는 단순한 3분기 결산이 아니었다. 도시바는 지난해 12월 27일 “WH가 2015년 말 실시한 인수합병으로 인해 수천억엔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발표했다. 부정회계 파문이 일단락되고, 실적이 회복세로 돌아서는 상황에서 다시 찾아온 매머드급 위기였다. 주요 신용평가사는 일제히 도시바의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채권단인 은행도 칼을 뽑아들었다. 
 
갑자기 연기된 3분기 결산 발표
 
그런데 갑자기 연기됐다. 그렇다고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결국 도시바는 감사법인의 승인을 받지 못한 채 ‘당사 책임 차원의 전망’으로 3분기까지의 결산을 공표했다. 이에 따르면 원전사업 손실은 무려 7125억 엔에 달했다. 


2016년 말 시점의 자기자본은 마이너스 1912억 엔이었다. 확실한 채무 초과 상태다. 다행히 메모리반도체 등 원전 외 사업 실적이 나쁘지 않아 그나마 손실이 줄었다. 그러나 향후 자산매각 등이 없다면 2016년 최종 자기자본(3월 말 기준)은 마이너스 1500억 엔 수준이 될 전망이다. 본 결산에서 채무초과가 확정되면 도시바는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서 2부로 지정 변경된다. 여기서 1년 내에 채무초과를 해소하지 못하면 상장 폐지된다.

놀랄만한 소식도 있었다. 기자회견에서 쓰나카와 사토시 사장은 “메모리 사업에 관해 도시바의 과반수 지분 확보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도시바는 스마트폰 등에 사용하는 낸드플래시메모리 분야에서 한국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다. 도시바 전체 영업이익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말 그대로 핵심 사업이다. 이 때문에 2월 초까지는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20% 미만으로 제한해 도시바가 주도권을 쥐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다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2월 말엔 더 전향적인 입장이 나왔다. 아예 전부 팔겠다는 것이다. 지분을 모두 팔고,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2조4000억~2조 6000억 엔(약 24조~26조원)까지 끌어 모으겠다는 구상이다.

그만큼 상황이 급하다. 도시바는 3월 주주총회에서 메모리 부문 분사를 확정한 뒤 우선협상대상자를 압축할 계획이다.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 있지만 20%라는 어중간한 출자비율로는 좋은 조건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게 현실적 판단이다. 이미 도시바는 값나가는 자산을 거의 다 처분한 상태다. 마지막 보루인 메모리 사업은 가능한 비싸게 팔아야 할 필요가 있다.

‘도시바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라는 기자의 물음에 쓰나카와 사장은 “2008년에 수주한 원전 사업”이라고 대답했다. 또한 “WH를 인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기자본이 1조 엔에 불과했던 2006년 약 6000억 엔을 투자한 WH 인수는 애초부터 비싼 값에 사들였다는 비판이 많았다.

도시바 경영진 내에서도 찬반이 갈렸다. 오카무라 다다시 당시 회장은 반대했고, 원전 사업 최고책임자조차 2800억 엔 이상의 인수는 무리라고 했다. 이를 무릅쓰고 인수를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 니시다 아츠토시 전 사장이었다. 인수를 후원했던 타이조 니시무로 상담역은 치솟는 가격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WH 공동 출자를 고려했던 마루베니는 인수 막판 포기를 선언했고, 다른 종합상사도 거절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도시바는 인수대금의 87%를 혼자 마련했다.

고가 인수를 어떻게든 만회하고자 원전 수주에 힘썼으나 현실은 가혹했다. 미국에서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한 도시바 전직 임원은 “당시에도 미국의 전력회사는 적극적이지 않았다”며 “값싼 천연가스가 있는데 굳이 원전을 지을 필요가 있느냐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고 회고한다. 이런 분위기였으니 수주가 순조로울 리 없었다. 이번 손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2월 15일 시게노리 회장이 사임했다. 
 
성장 시나리오 찾기 힘들어 
메모리 사업 매각도 아슬아슬하다. 매각을 전제로 한 분사를 하려면 3월 하순으로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에서 출석 주주 3분의 2가 ‘특별결의’에 찬성해야 한다. 그 외 여러 절차를 밟으면서 도시바의 생각대로 3월 말까지 매각 대상을 확정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매각을 하지 못하면 채무초과는 해소되지 않는다. 
 
물론 ‘채무초과=경영파탄’이 아니다. 은행의 지원만 있다면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2월 15일에 거래처 금융회사를 불러모은 설명회에서 도시바는 3분기 결산에서 채무초과 상태가 확정돼도 3월 말까지는 융자액을 유지하겠다는 합의를 얻어냈다. 어찌 보면 다행이지만, 도시바의 운명을 은행이 쥐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게다가 아직 남은 위험도 있다. 도시바는 좌절된 미국의 원전 사업 계획에 얽혀 2019년부터 20년간 연 220만t의 액화천연가스를 인수할 계약을 맺고 있다. 그러나 팔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 이대로는 최대 1조엔 규모의 손실이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2011년 산업혁신기구와 공동 출자한 스위스 정밀기기 제조업체 랜디스기어는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다. 영국에서 추진 중인 원전 사업도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다. 현재의 취약한 재무 체질로는 이 문제들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2월 14일 기자회견 직전 도시바 사내 직원들에게 쓰나카와 사장의 영상 메시지가 전달됐다. 결산 연기에 대한 사죄로 시작해 원전사업의 손실과 실적, 재무상황 등이 언급됐다. 메모리 사업 과반수 지분 유지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방침을 언급했을 때는 직원들 사이에 놀라움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메모리 사업이 떨어져 나가면 남는 것은 인프라 사업뿐이다. 가까스로 살아남더라도 이후의 성장 시나리오를 찾는 게 쉽지 않다. 미증유의 위기에 놓인 명문기업의 ‘해체’가 시작됐다.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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