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중앙시평] 박근혜보다 더 불쌍한(?) 차기 대통령

중앙일보 2017.03.08 02:54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철호논설주간

이철호논설주간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적은 일어나기 쉽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내린 혼인빙자간음죄·간통죄·사형제·낙태금지·수도 이전·김영란법 등 주요 판결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재판관들의 성향보다 일반 국민의 여론에 충실히 따랐다는 점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이 77%나 된다.
 
탄핵이 기각돼도 온전히 대통령 역할을 할지 의문이다. 보수 정치인들부터 부정적 입장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국민은 어떻게 대통령이 저런 난잡한 애들하고 노는 허접한 여자(최순실)한테 인사를 묻고 정책을 물었을까,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은 “대통령답지 않은 행동을 너무 많이 했다”며 “본인도 비참한 최후를 맞을 것 같다”고 비판했다.
 
현재 판세만 보면 차기 대선은 야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특히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에겐 황금구도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보수 진영을 완전히 궤멸시켜 주었다. 여기에다 민주당은 좌우 윙이 눈부시게 뛰며 환상의 팀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왼쪽으로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맹활약하면서 정의당마저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오른쪽으론 안희정 충남지사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까지 확실히 견제하고 있다. 문 전 대표에겐 꽃놀이패나 다름없다.
 
문제는 앞으로 5년을 더듬어 보면 차기 대통령이 꽃길을 걷기보다 승자의 저주에 빠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첫 고난의 행군은 한·미 FTA 재협상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FTA 때문에 대한국 수출은 12억 달러 줄었고, 한국의 대미 수출은 130억 달러 늘었다”며 재협상을 압박한다. 야당은 과거에 내뱉은 말 때문에 곤란한 처지다. 문 전 대표는 2012년 “한·미 FTA는 재협상을 통해 불이익을 바로잡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훨씬 불리한 입장이다. 재협상으로 불이익을 바로잡기는커녕 본전만 챙겨도 다행이다.
 
전시작전권 환수도 마찬가지다. 자주국방과 전작권 조기 환수는 친노 진영의 오래된 생각이다. 한미연합사령부 해체, 주한미군 감축 등 연쇄반응을 일으킬 예민한 사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선을 치르면서 양국은 명분과 감정에 치우치는 분위기다. 미국의 트럼프는 국내총생산 대비 2.4% 남짓한 한국의 국방비를 미국 수준(4.3%)으로 올리라고 주문한다. 또 한국이 전작권을 요구할 경우 “트럼프는 ‘원한다면 당장 가져가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충동적·반사적 성향이 강하다.”(문정인 교수) 최근 미국의 포린폴리시(FP)도 “(진보 출신 차기 대통령이 요구하면) 한국은 아무 다툼 없이 미군을 떠나게 할 수 있다”며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열어놓았다.
 
무엇보다 어려운 문제는 먹고사는 일이다. 우선 인구분포를 보면 25~29세는 연령별로 평균 63만 명 정도다. 하지만 20~24세는 평균 70만 명이나 된다. 앞으로 5년간 훨씬 캄캄한 청년실업 절벽이 기다리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이창용 아시아·태평양 국장은 “한국은 향후 10년간 3%대의 꾸준한 성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차기 주자들 사이에 구조조정과 규제완화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당장 금융부터 불안하다. 미 연준(Fed)은 “요즘 나쁘게 나오는 경제지표가 없다”며 다음주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Fed가 지난해 12월 1년 만에 기준금리를 0.5~0.75%로 상향조정한 데 이어 이번에는 불과 석 달 만에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이다. 한국은행도 “예상보다 미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빠르다”며 당황하는 눈치다. 지금 추세라면 Fed는 올해 세 번 기준금리를 올려 연말께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될 수도 있다(한국 1.25%).
 
이주열 한은 총재는 “미국 금리인상에 기계적으로 반응하지 않겠다”며 패기를 보였다. 하지만 한·미 기준금리는 딱 두 번 역전된 적이 있다. 1999년 6월~2001년 3월과 2005년 8월~2007년 8월이었는데, 당시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한은은 하는 수 없이 금리를 올렸다. 그때 한·미 금리 고공행진의 후유증으로 터진 게 카드대란과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였다.
 
금리가 오르면 부채의 역습이 시작된다. 이미 가계대출은 1344조원이나 된다. 낮은 신용의 다중채무자 146만 명부터 위험에 빠지게 된다.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좀비 기업 3278개가 파산에 몰리고, 부동산시장도 흔들린다. 한국 경제가 총체적으로 어려워지는 것이다.
 
어쩌면 차기 대통령은 적폐를 대청소하기 전에 적폐에 짓눌려 질식할지 모른다. 슬그머니 야당의 코드인사와 편가르기가 부활하는 조짐도 불길하다. 얼마 전 모 방송의 보도본부장 출신이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내정됐다가 ‘없던 일’로 됐다. 출근 직전에 진보단체들이 “왜 부역자에게 중요한 자리를 주느냐”며 난도질한 것이다. 승자의 저주에다 벌써 홍위병 그림자까지 어른거린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이철호 논설주간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