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V 속 패션 읽기] 대충 두른 빨간 담요에 담긴 패션 코드는?

중앙일보 2017.03.07 00:01
'신혼일기' 포스터 촬영 현장의 안재현 구혜선 부부. [사진 tvN]

'신혼일기' 포스터 촬영 현장의 안재현 구혜선 부부. [사진 tvN]

 부러우면 지는 거다, 라면 이미 패배를 인정한다. tvN '신혼일기'3월 10일 종영)의 완벽한 승리다. 결혼 8개월 차에 접어든 배우 구혜선과 안재현의 소소한 일상을 그려내는 이 예능 프로에서는 깨도 모자라 꿀이 뚝뚝 떨어진다. 요리와 설거지를 도맡아 하며 '여보는 아무것도 안해도 예뻐'라고 말하는 남편이나, 남편이 좋아하는 과자를 잔뜩 차 트렁크에 숨겨놨다 깜짝 선물 이벤트를 벌이는 아내나, 보고 있노라면 미소가 절로 생긴다. '결혼 장려 예능'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하다.
 

슬로 라이프를 완성하는 니트룩
예능 '신혼일기' 속 스웨터·카디건의 의미

이들이 샘나는 건 단지 신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강원도 인제의 호젓한 산골집에 사는 두 사람에게 고단한 밥벌이는 없다. '24시간을 함께 보내라'가 유일한 미션이다. 마치 무균의 실험실마냥 어떤 외부적 갈등 요소, 가령 맞벌이의 가사노동 분담이나 시댁·처가의 참견, 가계 관리 같은 문제가 어느 하나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둘이 보내는 시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게 느리다, 아니 느려도 된다. 두 사람은 그저 따사로운 겨울 햇살에 눈을 떠서 삼시세끼 천천히 밥을 지어 먹다가 해가 지고나면 맥주 한 잔과 먹태(반건조 명태)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될뿐이다. 이들이 꼭 해야할 일은 어쩌다 먹거리를 사기 위해 장을 보는 것 말고는 딱히 없어 보인다. 늦은 오후 남편의 무릎에 누워 하루의 피곤함을 달래는 아내, 그리고 아내를 위해 푹 익힌 총각무를 넣어 라면을 끓이는 남편의 모습은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는 느릿하고도 완벽한 삶인 것이다.
 
 
부부가 직접 담근 오미자 담금주를 마시는 장면. [사진 방송 캡처]

부부가 직접 담근 오미자 담금주를 마시는 장면. [사진 방송 캡처]

 
 
시골집에서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는 부부. [사진 방송 캡처]나

시골집에서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는 부부. [사진 방송 캡처]나

 
강원도 인제에서 엿보는 '휘게' 스타일 
흥미로운 건 식(食)과 주(住)만큼이나 의(衣)역시 이 슬로 라이프를 위해 완벽한 3박자를 이룬다는 점이다. 부부가 줄곧 입고 나오는 옷은 그냥 홈웨어가 아니다. 포근하면서도 편안해보이는 니트 스웨터와 카디건이 주를 이룬다. 만약 이들이 도시의 흔한 신혼부부처럼 발열 내복 위에 시커먼 트레이닝복과 후드 점퍼, 혹은 레깅스와 롱티셔츠를 입었다면 어땠을까. 잠시만 떠올려봐도 니트라는 옷이 얼마나 시골이라는 공간, 느리게 사는 일상에 적합한 패션인지 새삼 깨달을 터다.
 
절대 비약이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덴마크어 휘게(Hygge, 일상의 편안함과 아늑함을 뜻하는 말)를 스타일로 보자면 바로 니트다. 날씨가 추운 북유럽에서는 집에서도 차갑고 뻣뻣한 가죽·면보다는 따뜻하고 소박한 니트를 집에서도 애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 그러니까 어느날 저녁, 난로 앞에 앉아 담요를 무릎에 덮고 뜨개질을 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휘게 라이프라면, 니트는 그 안락한 분위기와 꼭 어울리는 소재인 것이다.
 
 
눈 쌓인 마을 길을 산책하는 장면. [사진 tvN]

눈 쌓인 마을 길을 산책하는 장면. [사진 tvN]

톤다운된 스웨터와 뜨개 모자로 멋 낸듯 안 낸듯
게다가 이 부부의 니트 룩은 자연스럽지만 패셔너블하기까지 하다. 결코 막 입은 게 아니다. 얼짱 배우와 모델 출신이라는 본색이 가려질 리 없다. 두 사람이 손을 꼭 잡은 채 입고 나온 겨자빛 터틀넥 스웨터와 벽돌색 스웨터는 겨울 잿빛을 머금은 한옥집과 묘하게 어울린다. 이뿐이랴. 스웨터 위에 우윳빛 털조끼를 덧입는다거나 매번 손뜨개 모자를 챙겨 쓰는 걸 두고 '너무 추워서' 혹은 '머리 감기가 귀찮아서'라고만 보긴 어렵다. 외출 전 들뜬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섰던 아내의 모습을 기억해보라. 모자를 이리 쓰고 저리 써보면서 연신 머리카락 몇 가닥을 뽑아냈던 그다.
 
그중에서도 두고두고 기억나는 커풀룩이 있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시내로 걸어가던 장면이다. 니트와 카디건을 겹쳐 입은 아내는 검정 바지에 어그 부츠로 단단히 무장을 했다. 자칫 아줌마처럼 보일 법한 이 평범한 모습이 변신하는 시키는 게 있었으니 바로 빨간 체크 담요였다. 바지 위로 랩스커트처럼 무심하게 두른 스타일링으로 보온성과 센스를 모두 챙겼다. 그 옆을 나란히 걷는 남편 역시 겨울 니트라면 빠질 수 없는 노르딕 무늬의 카디건으로 응수했다.
 
'느리고 불편하지만 한번 견뎌보고 싶었던' 이들의 시골 생활은 끝났다. 봄이 오면 니트를 벗듯, 신혼의 콩깍지도 언젠가는 벗겨질 터다. 하지만 부디 느리고 더뎠던 이 시간들을 잊지 말기를. 넉넉하고 여유롭게 몸을 품어주던 니트처럼 말이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