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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대폿잔 나누자더니 … " 경기고 '백남준 추모의 밤'

중앙일보 2006.02.04 06:08 종합 20면 지면보기
3일 오후 서울 청담동 경기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백남준 추모의 밤'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고 백남준에게 보내는 추모의 말을 쓰고 있다. 왼쪽부터 경기고 학생 대표 김태림군, 안숙선 명창, 이홍구 전 국무총리, 황병기 명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이수영 경기고 총동창회장(사진위). 아래 사진은 이날 행사에서 공개된 1990년대 백남준의 행위예술 영상 자료. 김형수 기자
"졸업 못했으나 모교 그리워"


생전의 영상 메시지 상영

"경기중학을 다니면서 여러 자극을 받아 내 예술과 인생에 큰 이익을 봤어요. 졸업은 못했지만 (옛 경기고가 있던) 화동 시절이 늘 그립습니다."



영상으로 살아 돌아온 백남준은 말은 어눌했지만 눈빛만은 생생했다. '백남준 추모의 밤'을 여는 고인의 육성 화면은 모교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쓴소리로 빛났다.



"경기고가 이제는 관리 양성 기관을 그만두고 한국 사회의 진보적 세력으로 커가길 간곡히 바랍니다. 내가 곧 서울에 나가니 죽기 전에 대폿잔이나 기울입시다."



고인이 2000년 경기고 100주년을 기념해 보낸 영상 메시지를 지켜보는 선후배들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고향에 돌아가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세상을 뜬 백남준이지만 그의 모교 사랑이 물씬 풍기는 마지막 인사였다. 이어진 경기고 47회 김우중 동문회장(GeneSxst-Korea 회장)의 추모사는 비범했던 고인의 학창시절을 돌아보게 했다.



"한국인으로서 백남준 동문만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는 없었습니다. 그는 말은 별로 없었지만 진지하고 생각이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소매에 코를 풀어 반들반들하게 하고 다니던 그 기행이 뒷날 기발한 비디오 아트로 연결됐던 모양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던 고인의 가는 길에 음악을 깔 듯 가야금의 명인인 황병기씨가 '침향무'를 연주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생소했던 1960 ~ 70년대부터 그의 전위적 작품과 발맞추며 행위예술을 함께 펼쳤던 황병기씨는 추억에 젖은 듯 가야금을 타는 손길이 진중했다. 마침 화면에서는 갓 쓰고 지게까지 등장시켜 행위예술을 펼치는 백남준의 젊은 시절 모습이 나타났다. "나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절대로 발설하지 않고 참는다. 한국을 선전하는 길은 내가 잘되면 저절로 이루어진다"던 고인의 생전 목소리가 배어있는 화면이었다.



황병기씨가 고인의 영정에 깊이 머리 숙이고 떠나자 안숙선 명창이 무대를 이어받았다. 백남준이 편히 저승에 가 이승에서 못다한 일 다 하고 놀도록 비는 안 명창의 절절한 소리가 사람들 가슴을 울렸다.



경기도 용인시에 백남준 미술관 건립을 주관하고 있는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백남준의 집을 잘 지어 세계적 미술관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손 지사는 "지난해 여름 미국에 가 백 선배님을 뵈었을 때 미술관 운영 계획을 들으시며 천진난만하게 웃으셨는데 그 미소가 마지막이 돼 안타깝다"며 "자신의 미술관 건립을 손꼽아 기다린 고인에게 바치는 사후 선물을 근사하게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고 100주년 기념관에 차려진 분향소는 대선배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도하는 동문과 후배들 발길이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국화꽃 한 송이를 고인의 영전에 바치며 위대한 예술가의 넋을 기렸다.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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