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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김유신 빼다박은 야망가, 남편 죽자 태후 돼 권력 농단

중앙선데이 2017.03.05 02:03 521호 23면 지면보기
[추적, 한국사 그 순간] 김춘추 부인 문희
일러스트=강일구

일러스트=강일구

 페르시아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군주로 키루스(Cyrus) 2세, 또는 키루스 대제라 일컫는 인물이 있다. 기원전 576년경 제위에 올라 기원전 530년에 사망했다. 페르시아 아케메네스(Achaemenes) 왕조를 개창한 그는 성서에는 고레스 왕으로 등장한다. 그의 치세에 페르시아는 메디아와 신바빌로니아, 리디아를 무너뜨리고 중동의 패자가 된다.영웅에게는 어울리는 탄생담이 있게 마련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언니의 오줌 꿈 사 춘추와 결혼
큰아들 법민은 통일 후 당 축출
나머지 아들 8명은 각간 등 지내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목표 이뤄

 
 키루스는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지방을 다스리던 군주 캄뷔세스(Cambyses) 1세와 메디아 제국 마지막 황제 아스튀아게스(Astyages)의 딸 만다네(Mandane) 사이에 태어난 외아들이다. 아스튀아게스가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만다네가 어마어마한 양의 오줌을 누어 그의 도시가 잠기고 온 아시아가 범람하는 내용이었다. 이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버지는 해몽가들에게 물었다.『 역사』에서는 “그들의 해몽을 자세히 들은 그가 겁이 났다”고 한다. 이는 온 세상을 뒤엎을 영웅을 딸이 낳는다는 예고이면서 아스튀아게스에게는 자신의 왕조와 왕국을 외손자에게 빼앗기고 만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러자 아버지는 메디아인들 중에서 사위를 고르지 않고, 캄뷔세스라는 페르시아인에게 딸을 시집보낸다.
 
 시집간 첫 해,아스튀아게스는 또 다른 꿈을 꾼다. 딸의 생식기에서 포도 한 그루가 자라나더니 온 아시아를 덮는 것이 아닌가. 이 역시 해몽가들이 말하는 내용은 오줌 꿈과 같았다. 이에 더욱 불안해진 아버지는 임신 중인 딸을 페르시아에서 불러들여 감시하면서 딸이 아이를 낳으면 곧바로 그 아이를 죽일 생각이었다. “딸이 낳은 아이가 그를 대신해 왕이 될 것이란 마고스들의 해몽 때문이었다”고 헤로도토스는 말한다. 하지만 영웅은 언제나 이런 위기를 벗어난다.
 
문명왕후 된 김서현의 막내딸 
 이와 흡사한 오줌 꿈 이야기가 신라에도 있다. 아버지 유업을 이어 일통삼한(一統三韓)을 달성한 문무왕 김법민(金法敏)이 주인공이다. 그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맏아들이고, 어머니는 김씨 문명왕후(文明王后)이니 소판(蘇判) 서현(舒玄)의 막내딸이자 김유신의 동생이다. 문명은 문희가 왕비가 되면서 얻은 이름이다. 『삼국사기』는 그의 탄생담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그 언니가 꿈에 서형산(西兄山) 꼭대기에 올라앉아 오줌을 누었더니 온 나라 안에 가득 퍼졌다. 꿈에서 깨어나 동생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동생이 웃으면서 ‘내가 언니의 이 꿈을 사고 싶소’라고 했다. 그래서 비단치마를 주어 꿈값을 치렀다. 며칠 뒤 유신이 춘추공과 축국(蹴鞠)을 하다가 그만 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떼었다. 유신이 말하기를 ‘우리 집이 다행히 가까이 있으니 가서 옷고름을 답시다’라 하고는 함께 집으로 갔다. 술상을 차려 놓고 조용히 (언니인) 보희(寶姬)를 불러 바늘과 실을 가지고 와서 옷고름을 꿰매게 했다. 하지만 언니는 무슨 일이 있어 나오지 못하고, 동생이 나와서 꿰매 주었다. 옅은 화장과 산뜻한 옷차림에 빛나는 어여쁨이 눈부실 정도였다. 춘추가 보고 기뻐하여 혼인을 청하고 예식을 치렀다.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법민이다.”
 
이와 거의 같은 내용이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에 수록된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 이야기에도 나오는 것으로 볼때, 오줌 꿈 이야기는 제법 유명했던 듯하다. 이로 빚어진 언니 보희와 동생 문희 사이의 엇갈린 운명은 연재 첫 머리 ‘김유신, 춘추 방에 언니 대신 동생 들여보낸 까닭’(2016년 6월26일자)에서 다뤘거니와, 이 자리에서는 꿈 이야기를 통해 동생 문희에 집중하고자 한다.
 
 언니의 꿈을 가로챈 동생의 이야기는 문희의 정치적 야망을 느끼게 한다.당초 김유신이 김춘추의 짝으로 염두에 둔 건 보희였지만, 거사를 치를 그날 하필 보희가 달거리 중이었으므로,동생 문희가 김춘추의 방에 들어가게 된다.언니가 얻을뻔한 기회, 혹은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이용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어쩌면 오빠 김유신의 짙은 그림자를 본다. 그만큼 김문희는 언니 김보희에 견주어 맹랑한 여성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이 오줌 꿈 무대를 『삼국사기』에서는 서형산이라 하고, 『삼국유사』에서는 서악(西岳)이라 해서 다른 곳을 연상할 수 있으나 실상은 같은 곳이다. 경주 분지를 중심으로 서쪽에 위치한 진산(鎭山)인 선도산(仙桃山)을 말한다. 서형산은 서쪽에 있는 산 중에 상위에 위치한다는 뜻이요, 서악은 글자 그대로 당시 신라 서울 금성(金城) 혹은 계림(鷄林)의 서쪽에 있는 산이라 해서 이렇게 불렸다.선도산이라고도 신라시대에 부른 까닭은 이곳에 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를 낳은 어머니가 진좌(鎭坐)하는 곳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죽어서 신라라는 국토를 지키는 신으로 화한 이 어머니를 선도산성모(仙桃山聖母)라 한다.
 
 보희가 이곳에 올라 금성 전체를 물에 잠기게 하는 오줌을 눴다는 이 꿈은 천하를 호령할 아들을 낳을 것이란 전조(前兆)이자 예언이다.말할 나위 없이 김법민이다.문무왕 김법민은 태자시절엔 백제 정벌 전쟁에 참전하고,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왕으로서 당군과 연합해 고구려를 멸했으며, 곧이어 한반도 직접 지배라는 야욕을 노골화한 당 제국과 일전을 치러 그들을 이 땅에서 완전히 축출한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삼국유사』 ‘태종춘추공’ 이야기 말미에서는 “태자 법민(法敏)과 각간(角干) 인문(仁問),각간 문왕(文王),각간 노차(老且),각간 지경(智鏡),각간 개원(愷元) 등은 모두 문희가 낳은 아들이니, 전날에 꿈을 산 징조가 이에서 나타난 것이다”고 적고 있다.법민을 비롯,기라성같은 아들들을 둔 전조가 바로 서악 오줌 누기 꿈이었음을 분명하게 한다.
 
 김유신과 김문희는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금관가야 김수로에게 닿는다. 이들의 증조가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仇衡)이고, 그 아들 김무력(金武力)이 김서현(金舒玄)을 낳으니, 이 서현이 만명(萬明)이라는 신라 왕실 여인을 취해서 김유신 이하 형제 자매들을 낳았다. 그런 까닭에 김문희 소생인 문무왕 김법민 역시 가야 피가 흐른다. 『삼국유사』 기이편에서 ‘가락국기(駕洛國記)’라는 문헌을 인용한 다음 대목은 그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신라 제30대 법민왕이 용삭(龍朔) 원년 신유(661) 3월에 조서를 내렸다. ‘가야국 시조 9대손 구형왕(仇衡王)이 이 나라에 항복할 때 데리고 온 아들인 세종(世宗)의 아들 솔우공(率友公)의 아들 서운(庶云) 잡간(?干)의 딸 문명황후(文明皇后)께서 나를 낳으셨으니, 시조 수로왕은 어린 나에게 15대조가 된다. 그 나라는 이미 없어졌지만 그를 장사지낸 사당은 지금도 남았으니 종묘에 합해 계속 제사를 지내게 하라.’”
 
김유신은 금관가야 구형왕 증손자 
『가락국기』는 고려시대 금관주지사(金官州知事)를 지낸 사람의 문인(文人)이 썼다. 이것이 말하는 가야사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는데, 앞에 보이는 계보 역시 그렇다. 김수로에게서 시작하는 금관가야는 건국이 서기 42년이고, 마지막 구형왕이 신라에 투항할 때는 이미 500년 뒤라, 그 중간 왕들 계보가 많은 탈락이 있어 겨우 남은 이는 9명에 지나지 않는다. 구형왕 이래 문명에 이르는 계보에서도 혼란이 있다. 김유신은 구형왕 증손자로서, 그 아버지는 김서현(金舒玄)이니, 서운(庶云)이라고도 한다. 서현이 만명(萬明)이라는 신라 왕실 여인에게서 김유신과 김문희를 비롯한 형제자매들을 낳는다. 이것이 정확한 김유신의 계보다.
 
 역사상 언니와 동생간 싸움이 적지 않다.때로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끔찍한 혈투가 되기도 한다. 자매의 난이 왕자의 난 못지 않았다는 얘기다. 예컨대 전한시대 말기 황제 성제(成帝)를 사이에 두고 총애를 다툰 조비연(趙飛燕)·합덕(合德) 자매 역시 그러했다. 비연은 동생 합덕을 후궁으로 들였다가 나중에 동생에게 성제의 총애를 뺏겨버리면서 쟁투를 벌인다. 


 보희와 문희 역시 그러하다. 이들 자매는 김춘추라는 걸출하면서도 잘 생긴 남자 한 명을 사이에 두고 쟁투를 벌이다가 결국은 여동생 차지가 되고 만다. 이렇게 원하는 남자를 손아귀에 넣은 문희는 남편이 왕이 되자 왕후가 되고, 남편이 죽고 아들이 즉위하자 태후가 되어 권력을 농단(壟斷)한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희는 오빠 김유신을 빼닮았다.
 
 
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 ts1406@naver.com 
소백산맥 기슭 산골에서 태어났다. 연세대영문학과에 들어가 한때는 영문학도를 꿈꾸다 가난을 핑계로 접었다. 23년간 기자로 일했는데, 특히 역사와 문화재 분야에서 한때 ‘최고의 기자’로 불리며맘껏 붓끝을 휘두르기도 했다. 무령왕릉 발굴 비화를 파헤친 『직설 무령왕릉』을 비롯해 『화랑세기 또하나의 신라』 『풍납토성』 등의 단행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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