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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과 후회는 없어요 많은 관심 받은 나는 행복한 선수”

중앙선데이 2017.03.05 01:50 521호 25면 지면보기
떠나는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연세대)가 18년 동안 손에 꼭 쥐고 있던 리본을 내려놓는다. 손연재는 4일 서울 태릉선수촌 필승주 체육관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방긋 웃으며 등장한 손연재는 “은퇴 소감을 직접 써왔다”며 담담히 은퇴 소감문을 읽어 내려갔다. “5세 때 시작한 리듬체조가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이제는 24세 손연재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이후 은퇴를 직접 결정했습니다. 아쉬움과 후회는 없습니다. 리듬체조로 받았던 사랑과 관심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받은 사랑을 바탕으로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팔다리 짧고 키 작은 핸디캡 딛고
리우 올림픽 4위 아시아 최고 성적
늘픔체조 악플 시달리며 은퇴 결심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계 리듬체조계에서 손연재는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선수였다. 동양인인 손연재의 연기는 ‘귀엽다’ 정도로만 평가됐다. 리듬체조는 팔다리가 가늘고 긴 체형이 유리하다. 손연재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했던 ‘리듬체조 강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모두 키가 1m70㎝ 이상이다. 반면 손연재는 1m65㎝다. 팔다리가 길지 않은 동양인 체형이라 아기자기한 느낌이 강했다.
손연재가 4일 은퇴 기자회견 도중 후배들이 건넨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민규 기자

손연재가 4일 은퇴 기자회견 도중 후배들이 건넨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민규 기자

5세 때 리듬체조를 시작한 손연재는 아시아인의 핸디캡을 피나는 노력으로 극복했다. 그 결과 러시아와 동유럽의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이르렀다. 손연재는 2011년 17세의 나이에 홀로 러시아로 건너가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러시아 선수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아시아 선수를 무시했지만 손연재는 굴하지 않았다. 새벽 6시부터 자정까지 훈련하며 실력을 끌어올렸다.
 
혹독한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손연재는 한국 리듬체조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2010년 성인 무대에 데뷔한 뒤 그해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인종합에서 동메달을 따며 두각을 나타냈다. 손연재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리듬체조 시니어 선수로 나선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했다.
 
손연재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목표였던 ‘톱 10’을 뛰어넘어 개인종합 5위에 오르며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떠올랐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한국 리듬체조 사상 최초로 개인종합 금메달을 따냈다.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도 개인종합 금메달을 획득했다. 1976년 리듬체조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뒤 아시안게임과 유니버시아드에서 개인종합 금메달을 차지한 건 손연재, 단 한 명뿐이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 정식 종목이 된 리듬체조 개인전에서 지금까지 아시아 선수가 메달을 딴 적은 없었다. 손연재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메달이 기대됐다. 하지만 러시아 투톱인 마르가리타 마문, 야나 쿠드랍체바와 우크라이나의 간나 리자트디노바 등에 이어 4위에 그쳤다. 손연재가 기록한 4위는 아시아 선수로서는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이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손연재는 국민 설문조사에서 5년간 세 차례나 ‘올해를 빛낸 선수’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인터넷에는 손연재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는 유명해질수록 칭찬보다 비난을 더 받았다. 손연재의 인터넷 기사나 사진에는 ‘실력보다 후한 점수를 받는다’ ‘왜 이렇게 띄워주느냐’는 등의 악플이 끊임없이 달렸다. 펜싱·태권도·역도 등 다른 종목에서 세계 1위에 오른 선수들보다 세계 4위 손연재가 더 부각되는 게 마땅찮은 것이었다.
 
손연재는 어린 시절 훈련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운동을 그만둘 뻔했다. 250여만원 하는 경기복은 어머니 윤현숙씨가 직접 만들어 입혔다. 러시아 전지훈련 비용은 월 3000만원이 넘었다. 국내 인프라가 약한 종목의 선수들은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피겨 여왕’ 김연아와 ‘마린보이’ 박태환이 그랬던 것처럼 광고를 찍어 비용을 충당해야 했다. 손연재는 회견에서 “나를 향한 좋지 않은 시선들 때문에 더욱 열심히 했다. 나를 안 좋게 생각한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관심을 많이 받은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며 웃었다.
 
손연재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뒤로 줄곧 은퇴를 생각했다고 했다. 다섯 살 때부터 해온 리듬체조가 너무 힘들었던 탓이다. 항상 발목 부상을 달고 살았고 지독한 다이어트도 그를 힘들게 했다. 무엇보다 그를 향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컸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된 늘픔체조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 늘품체조는 최순실 게이트로 구속된 차은택씨가 만들고 문화체육관광부가 거액을 투자해 보급한 체조다. 2014년 11월 늘품체조 시연회 행사에 손연재도 참석했다. 그런데 이후 손연재가 2014년과 2015년 대한체육회 체육상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지난해에는 대상을 받은 게 특혜라는 의혹에 휩싸이며 네티즌들의 거센 비난을 샀다. 그동안 악플로 단련된 손연재였지만 은퇴를 고민하던 시점에서 이런 논란까지 불거지자 결국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훈련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어려워졌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과 학사 일정 등에 대한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교육부는 체육특기생 학사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졸업까지 두 학기를 남겨둔 손연재는 러시아로 장기간 훈련을 가기가 어려워졌다.
 
손연재는 “리듬체조 종목은 은퇴 시기가 20~23세로 조금 빠른 편”이라며 “리우 올림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우선 대학 생활에 전념할 계획”이라며 “이후에는 러시아에서 훈련한 경험을 바탕으로 리듬체조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psy@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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