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7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것’에 대한 질문 또는 대답

중앙선데이 2017.03.05 00:02 521호 24면 지면보기
2017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참여작가 이완·코디최, 예술감독 이대형(왼쪽부터).

2017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참여작가 이완·코디최, 예술감독 이대형(왼쪽부터).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것’은 근대화 이후 한국의 강박적인 과제였다. 2017베니스비엔날레(5월 13일~11월 26일) 한국관 예술감독으로 작가 코디최(Cody Choi·본명 최현주·56)와 작가 이완(38)의 조합을 제시한 큐레이터 이대형(43)이 선정됐을 때 역시 이 말이 나왔다.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면을 함께 엮어 한국 작가들의 우수성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선정이유였다.
 

2017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꾸미는
예술감독 이대형과 작가 코디최·이완

재미있는 건 두 작가가 ‘한국적이며 세계적인 것’을 추구해온 게 아니라, 그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를 각각 오랫동안 작품으로 질문해왔다는 것이다. 한국에게 ‘세계화’는 곧 ‘자본주의화=서구화=근대화’인 것일까. 그것을 타의와 자의로 진행해온 한국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세 사람을 지난달 최 작가의 성북동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코디최의 ‘Color Painting 2121’(2016), Oil on canvas, 140x115 cm

코디최의 ‘Color Painting 2121’(2016), Oil on canvas, 140x115 cm

코디최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옥상에 설치할 ‘베네치아 랩소디’ 초안

코디최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옥상에 설치할 ‘베네치아 랩소디’ 초안

코디최의 ‘The Thinker(생각하는 사람)’(1995~6)

코디최의 ‘The Thinker(생각하는 사람)’(1995~6)

 
코디최는 이 문제를 철학적이면서 직관적으로, 그의 말마따나 “고통 속에 농담하듯” 풀어왔다. 그 ‘고통’은 1961년생인 그가 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 맥락에서 온몸으로 겪은 문화충돌로부터 기인한다. 이번 한국관 전시에 나올 핫핑크 조각 ‘생각하는 사람’(1996)도 그 고통 속 농담이다. 서양 철학의 시각적 구현과도 같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미국의 분홍색 국민 위장약 펩토비스몰로 물들인 화장실 휴지로 재탄생시켰다.
 
반면 1979년생으로서 예전보다 세계화된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이 작가는 이 문제를 정치경제학적이고 논리적으로, 가끔 무표정한 유머를 담아 풀어왔다. 이번 전시에 나올 ‘메이드-인’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자유무역체제에서 보통 국제분업으로 생산되는 설탕이나 양복 재킷 같은 소비재를 한국 포함 아시아 10여 개 국에 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었다. 그 과정을 담은 영상과 완성된 소비재, 그리고 각국이 식민지화와 독립을 거치며 겪은 정치경제적 근대화·세계화 이야기가 작품을 구성한다. 여기에 코디최의 신작 ‘베네치아 랩소디,’ 이완의 확장판 ‘미스터 K’도 추가된다.
 
이 감독은 이들의 작품을 한국, 나아가 아시아 등 비서구권이 겪은 근대화·세계화의 시간적 축과 공간적 축으로서 선보일 계획이다. 그가 잡은 올해 한국관의 주제는 ‘카운터밸런스(Counterbalance)’. 20세기 초까지 제국주의로, 그 후 자유무역으로 세계화를 추진해온 서구 주요국들이 이제는 신고립주의를 외치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에서 비서구권의 눈과 경험으로 근대화와 세계화를 논하는 한국관이 균형을 잡아주겠다는 것이다.
 
“두 작가가 협업해 새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두 분의 역할이 다릅니다. 코디최는 시간을 다루며 종적인 축을 형성하고, 이완은 공간을 다루며 횡적인 축을 형성하죠. 코디최는 직접 겪어온 문화충돌의 변화를 시기별 대표작 3~5점으로 보여주고 이완은 아시아 각국의 근대화·세계화 과정을 ‘메이드-인’ 시리즈로 보여줄 것입니다. 600개의 시계로 만든 설치작 ‘고유시(Proper Time)’ 역시 횡적으로 근대화·세계화를 보여주는 작품이죠.”
 
이 600개의 시계에는 이 작가가 각국에서 만난 600명의 이름·출생년도·국적·직업이 새겨져 있다. 각 시계는 각 개인이 한 끼 식사 값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하는 시간의 차이만큼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시계 하나가 한 사람의 추상적 초상인 셈이고, 그들이 600개 모여 불평등한 세계의 초상이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완의 ‘Made In(메이드-인)’ 시리즈 중 ‘메이드 인 타이완.’ 작가가 만든 설탕과 스푼.

이완의 ‘Made In(메이드-인)’ 시리즈 중 ‘메이드 인 타이완.’ 작가가 만든 설탕과 스푼.

이완의 설치작 ‘Mr. K (미스터 K)’

이완의 설치작 ‘Mr. K (미스터 K)’

 
정신분열적 세대가 겪은 문화충돌
“사실 한국관에서 전시가 제대로 가능한 넓이와 높이의 공간은 하나뿐인데, 코디최의 제안으로 이완이 그 공간을 쓰고 코디최는 자투리 공간과 옥외에 설치를 하게 됐습니다. 이완은 6점을 출품하는데 (‘메이드-인’ 시리즈를 한 점으로 쳐서) 공간 한 쪽에 ‘미스터 K’ 등 5점이 무질서한 작업실에서처럼 펼쳐지고, 다른 한 쪽에 ‘고유시’가 완전히 정리된 순백의 공간에 놓여질 것입니다. 코디최는 전시가 거의 불가능한 공간을 자신의 시기별 대표작으로 꾸밀 것이고, 특히 옥상에 설치할 ‘베네치아 랩소디’가 하이라이트가 될 것입니다.”
 
최 작가가 말을 이었다. “원래 이완이 먼저 선택됐고 그 뒤에 내가 합류했으니까, 또 앞으로 더 커야 할 젊은 작가니까, 그에게 큰 공간을 내주고 나는 자투리를 갖고 한국관 외형을 뜯어고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의 ‘베네치아 랩소디’는 확실히 한국관의 인상을 바꿀 것 같다. 마카오나 라스베이거스에 어울리는 요란한 네온사인 용·호랑이·공작새가 옥상에 도사리게 될 테니 말이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초청을 받고 나서 엄청나게 갈등했어요. 나는 가수로 치면 ‘아침 이슬’의 민중가수 김민기도 아니고 아이돌 스타 출신 이효리도 아니고, 둘 사이를 방황하죠. 베니스 가는 건 아이돌 스타의 길을 가는 거잖아요. 베니스비엔날레는 사실 순 허세의 힘입니다. 작가들은 스타인 양 폼을 잡아대고, 세계의 미술평론가와 화상들이 예술가 찾는다고 모여드는데 사실 비즈니스 라인 트는 거고. 라스베이거스와 다를 게 뭐예요. 실제로 라스베이거스 가보면 베니스를 재현한 게 있어요. 그렇다면 베니스에 라스베이거스가 없을 이유가 없죠. ‘라스베이거스를 보여주마, 허세의 끝을 보여주마, 나는 싸구려다’ 이런 작품이에요. 내가 민중 가수면 베니스에 아예 안 가겠지만, 가고는 싶고, 가서 순응하긴 싫고… 비겁한 거죠. 나 자신이 괴로운데 작품을 통해 그걸 해소하고 동시에 나를 소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코디최의 작품은 그런 혼란과 자기분열에서 오는 고통이 원동력이다. 그 고통의 기저에 작가가 미국으로 건너가 겪은 극심한 문화충돌이 있다. “나 자신도 정체성 혼란에 시달려왔고 한국 역사 자체가 그래요. 서구문화의 뒤늦은 수입이 완료되고 서구와의 시차가 거의 없어진 게 90년대 중반쯤입니다. 그 이후에 성인이 된 이완 같은 젊은 작가들은 그렇게 혼란스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이 작가처럼 세계를 가로지르는 현상에서 어떤 이슈를 딱 잡아 정확한 이야기를 하는 게 가능해요. 내 세대는 안 그렇습니다. 서구문화가 불완전한 메타포로 정신 없이 들어왔죠. 정신분열적 세대입니다. 오히려 그 전 세대, 이완의 ‘미스터 K’가 말하는 세대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통유교와 서양문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등 명확한 이데올로기 싸움을 한 세대라 혼돈이 덜하고요.”
 
이 작가도 동의했다. “말씀대로 우리 세대는 이미 문화가 쌓여 있는 상태에서 주관대로 고를 수 있는 세대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사의 주요한 일들이 모두 과거형이라 간접경험으로 접하게 되고 그래서 좀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세대인 것 같아요. 산업화는 이미 내가 태어나기 전에, 민주화도 내가 어렸을 때 완료됐으니까요.”
 
이 작가의 ‘미스터 K’는 그가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실존인물 김기문(1936~2011)씨의 가족앨범과 상장 등 잡다한 유품들, 또 그 시대의 각종 오브제를 바탕으로 한 개인의 역사, 나아가 한국 근대사를 추적하고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 감독은 “이번 한국관 전시에는 한국의 3개 세대가 공존한다. 미스터 K, 코디최, 그리고 이완의 세대다. 그 세대 개인의 역사, 나아가 한국의 역사, 세계적 맥락 속에서의 한국의 정체성, 그 정체성의 정치학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이완의 조각 ‘더욱 밝은 내일을 위하여’와 그 뒤에 설치된 ‘Proper Time(고유시)’

이완의 조각 ‘더욱 밝은 내일을 위하여’와 그 뒤에 설치된 ‘Proper Time(고유시)’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졌을 때
서구화되었지만 서구는 아닌 나라. 서구의 관심을 갈구하지만 서구 중심주의에 반항심을 느끼는 나라. 이 애매모호한 한국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이 셋 만큼 어울리는 이들도 없을 터다. 모두 주류도 아니고 비주류도 아닌, 그 경계에 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홍익대 예술학과와 뉴욕 컬럼비아대 큐레이터학과 석사 출신으로, 학교로는 한국 미술계 주류에 속하지만, 아트페어 기획자로 먼저 이름을 알린 데다 현재 현대자동차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상업적이라는 편견을 종종 받아왔다. 코디최는 고려대 사회학과와 미국 패서디나 아트센터 디자인대학 출신으로, 뉴욕을 기반으로 왕성한 활동을 한 반면 한국과는 인연이 많지 않아 이번 한국관 참여가 여러 억측을 낳기도 했다. 유명 미술사학자 존 웰치먼이 기획한 그의 회고전이 2015년 독일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를 시작으로 유럽 순회 중이다. 또 이완은 2014년 삼성미술관 리움의 제1회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경력에서는 미술계 주류이나, 동국대에서 조소를 전공해 국내 미술계 양대 학맥에 속하지 않는다.


최근 서구의 신고립주의 득세 등 국제 정세는 이들의 전시에 더 풍부한 의미를 부여할 전망이다. 이 작가는 말했다. “‘메이드-인’ 시리즈를 계속 편집 중인데, 보이는 게 있어요. 서구 국가들이 아시아 국가들에 문화를 심고 영원히 일방적 시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성장을 해서 경쟁상대가 되니 불안해하는 것이요. 그들이 공장을 옮기면서 보통 노동자의 삶이 또 영향받고 - 그들에겐 과거 기울어진 운동장이 정상이었는데 점차 균형이 맞아가니까 그걸 다시 기울어지게 만들려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격동에 한국만큼 민감하게 영향 받는 나라도 없다는 것도요. 거기서 작품의 영감이 옵니다.” ●
 
 
글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사진 박상문 코리아중앙데일리 국장·PKM갤러리·313아트프로젝트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