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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개척시대로 떠나는 시간 여행

중앙일보 2017.03.05 00:01 Week& 4면 지면보기
 
미국 서부의 역사는 1848~49년 골드러시(Gold Rush)에서 태동했다. 황금을 좇아 수천㎞를 달려 캘리포니아로 온 개척자들은 곳곳에 도시를 세우고 역사를 만들었다. 캘리포니아에 자리 잡지 못한 후발주자들이 택한 곳이 캘리포니아와 이웃한 네바다와 애리조나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보다 딱 10년 늦은 1859년 네바다에서 노다지가 발견됐다. 그 시절 광산 개발과 더불어 형성된 도시가 네바다 주의 리노?버지니아시티?카슨시티다. 2월 24~26일 서부 개척자들의 흔적을 따라 이들 도시를 훑었다. 같은 뿌리에서 시작한 리노?버지니아시티?카슨시티는 150여 년이 흐른 지금 각기 다른 매력으로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글?사진=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분명 바 문을 열었는데 들어가보니 광산이네
네바다 주 리노?버지니아시티?카슨시티의 삼색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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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의 상징 '리노 아치'. '세상에서 가장 큰 소도시'가 리노의 별명이다.

리노의 상징 '리노 아치'. '세상에서 가장 큰 소도시'가 리노의 별명이다.

 
리노, 카지노가 전부는 아니야
라스베이거스가 네바다 남부의 중심지라면 리노(Reno)는 북부의 최대 중심지이다. 인구는 42만 명으로 네바다 주에서 라스베이거스 다음으로 많다. 리노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68년이지만 도시로 발전한 것은 1930년대 들어서다. 1931년부터 라스베이거스와 함께 카지노가 합법화하면서 엔터테인먼트 도시로 성장했다.
리노 다운타운에는 카지노호텔 10여 곳이 모여 있다.

리노 다운타운에는 카지노호텔 10여 곳이 모여 있다.

 
리노 중심지는 시내를 가로지르는 트러키(Trukee) 강 북쪽에 형성됐다. 리노를 상징하는 조형물 ‘리노 아치’를 중심으로 하라스 호텔, 엘도라도 호텔, 실버 레가시 호텔 등 카지노 호텔 10여 곳이 모여 있다. 이들 호텔의 숙박료는 저렴한 편이다. 겨울 시즌 기준 1박에 60달러 정도다. 관광객 대부분은 다운타운에 머물며 호텔에서 카지노를 하거나 리노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레이크타호(Lake Tahoe)에서 시간을 보낸다. 
 
네바다 관광청 직원 예니퍼에게 들은 리노를 소개하는 첫마디는 뜻밖에도 ‘카지노’가 아니었다. “리노는 변하고 있어요. 네바다 주에는 법인세가 없죠. 5년 전쯤부터 굵직굵직한 기업들이 공장이나 물류 센터를 캘리포니아에서 리노로 옮기고 있는데, 전기 자동차 회사 테슬라가 대표적이에요. 1월엔 테슬라가 배터리 공장을 리노에 오픈했어요.” 회사들이 속속 옮겨오면서 리노 인구가 증가하고 덩달아 도시 분위기도 변화고 있단다.
 
예니퍼가 추천한 곳은 미드타운이었다. 다운타운에서 차로 5분쯤 떨어진 미드타운에는 바와 레스토랑?상점이 도로를 따라 약 2㎞ 정도 줄을 이었다. 미드타운이 형성된 것은 5년 전쯤으로, 19세기 초?중반에 지어진 건물을 리모델링해 장사를 하고 있다. 미드타운은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가로수길의 초창기 모습과 비슷한 분위기다. 맥도날드나 스타벅스처럼 미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가게 대신 개성이 뚜렷한 로컬 브랜드 상점이 대부분이다. 샹들리에만 전문으로 파는 숍, 앤티크 상점, 코스튬 의상을 파는 곳 등 다양한 콘셉트의 상점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온갖 코스튬과 앤티크 상품을 파는 빈티지 숍.

온갖 코스튬과 앤티크 상품을 파는 빈티지 숍.

 
1967년 문을 연 레스토랑 ‘루이스 바스크 코너(Louis' Basque Corner)’는 미드타운의 터줏대감 같은 곳이다. 리노를 대표하는 토속 음식 전문점으로 소의 췌장?꼬리?혀 등을 재료로 음식을 만든다. 수프?샐러드?메인 요리(소 췌장 요리, 소 등심 스테이크, 양 갈비, 그릴에 구운 돼지고기, 소고기 양념 꼬치구이 중 선택)로 구성된 점심 코스(16달러)를 주문했다. “양과 소를 키우던 노동자들이 주로 먹던 요리로 양이 많다”는 매니저 크레이그의 말처럼 너무나 푸짐했다. 
리노 미드타운의 터줏대감으로, 1967년 문을 연 레스토랑 '루이스 바스크 코너'.

리노 미드타운의 터줏대감으로, 1967년 문을 연 레스토랑 '루이스 바스크 코너'.

 
트루키 강 주변도 새롭게 떠오르는 명소다. 버려진 창고나 가정집을 개조한 커피숍과 수제 초콜릿 숍 등이 늘어서있어 강을 따라 산책하듯 둘러보기에 좋았다. 예니퍼의 말처럼 지금 리노는 카지노 관광지에서 옛것과 현대의 것이 조화를 이루는 매력 넘치는 여행지로 변신 중이었다.
 
미국 최고 부촌이었던 버지니아시티
버지니아시티(Virginia City)는 서부 개척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리노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버지니아시티의 인구는 고작 1000여 명. 2~3층 목조건물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이 소박한 마을이 한때는 미국에서 가장 부자 동네였단다.
100년 된 건물들이 줄지은 버지니아시티의 씨 스트리트.

100년 된 건물들이 줄지은 버지니아시티의 씨 스트리트.

 
버지니아시티의 부는 금이 아닌 은에서 비롯됐다. 1859년 버지니아시티에서 ‘콤스톡 광맥’이 발견됐다. 지금에야 금과 은의 가치가 60배 넘게 나지만 당시 은의 통화가치는 금과 같았다. 광맥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870년대 중반버지니아시티 인구는 2만5000명까지 늘어났다. 콤스톡 광맥 발견 이후 20년 동안 채굴한 은과 금의 가치는 약 4억 달러. 지금으로 따지면 약 570억 달러 정도 되는 돈이다. 콤스톡 광맥의 영광은 그리 길지 못했다. 1878년 광물 생산이 줄기 시작하면서 버지니아시티는 조금씩 축소됐다. 
 
현재 버지니아시티는 마을 전체가 국립 역사 경관 지구(National Historic Landmark District)다. 매년 2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옛 서부 개척 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버지니아시티에 찾아든다. 마을 중심 도로인 씨 스트리트(C Street)를 가운데 두고 100년 이 상 된 건물들이 줄이어 있다.
 
버지니아시티에서 만난 카우보이.

버지니아시티에서 만난 카우보이.

버지니아시티 방문자센터를 찾아갔다. “은의 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허리는 꽉 조이고 엉덩이부터 풍성하게 퍼지는 드레스로 한껏 멋을 낸 방문자센터 직원 라이자가 맞아줬다. 알고보니 이 옷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유행했던 빅토리아풍 복장이었다. “드레스는 직접 만들었고 코트는 100년 된 옷이에요.” 라이자는 매일 드레스를 갖춰 입고 관광객을 맞이한다. 라이자 뿐만이 아니다. 관광업으로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는 버지니아시티에선 카우보이 복장, 보안관 복장을 한 주민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씨 스트리트에 있는 바 ‘폰더로사 살룬(Ponderosa Saloon)’에서 진행하는 광산 투어에 참여했다. 입장료가 얼마냐고 묻는 말에 가이드 그렉은 “1000달러!”라고 외쳤다. 황당한 표정을 짓는 관광객에게 그는 “혹시라도 은을 주울지도 모르니까”라며 농담을 던졌다. 실제 투어 가격은 어른 7달러, 어린이 3달러다. 광산 입구는 바 안에 있었다. 벽장처럼 생긴 문을 열자 곧장 광산 갱도로 이어졌다. 갱도 초입에 쇠창살이 달린 작은 토굴이 있었는데 광부가 일하는 동안 아기를 넣어 두었던 곳이랬다. 땅을 파는 굴삭기도 갱도 안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일명 ‘위도우 메이커(Widow Maker)’. 번역하면 과부 만드는 기계 쯤 되겠다. 무시무시한 별명의 유래는 이렇다. 뜨거운 열기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굴삭기가 오작동하면서 본체가 터지고 쇠 파편에 맞아 광부들이 죽어나갔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찬란한 영광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숨과 희생과 맞바꾼 것이다.
마을 전체가 국립 역사 경관 지구로 지정된 버지니아시티. 은맥 발견으로 한때 미국에서 가장 부자 동네였다. 

마을 전체가 국립 역사 경관 지구로 지정된 버지니아시티. 은맥 발견으로 한때 미국에서 가장 부자 동네였다.

 
 
마크 트웨인의 흔적 품은 카슨시티 제노아
네바다 주도인 카슨시티(Carson City)가 도시로 발전한 것은 버지니아시티에서 광맥이 발견 되면서부터다. 사람들은 데이비슨 산(해발 2398m) 동쪽 사면에 위치한 버지니아시티보다 좀 더 접근하기 수월한 평지 지역에 카슨시티를 만들고 금과 은을 유통했다. 카슨시티는 버지니아시티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옛 카슨시티의 명성을 보여주는 곳은 네바다 주립 박물관이다. 네바다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 집약해 놓은 박물관은 옛 조폐소를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1863년 미 연방 조폐국은 네바다 주의 주도 카슨시티에 조폐소를 짓고 넘쳐나는 금과 은으로 화폐를 발행했다. 박물관 창문에 덧대어진 두께 5㎝의 두꺼운 철판은 당시의 삼엄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박물관 안에는 은화와 금화를 찍을 때 사용한 기계와 이곳에서 발행된 동전을 전시해 놓았다. 고전 영화에서나 본 지름 5㎝ 정도 되는 커다란 동전이었다. 은화엔 카슨시티(Carson City)에서 발행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C.C.’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입장료 어른 8달러.
네바다 주 주도인 카슨시티에 있는 네바다 주립 박물관. 넘쳐나는 금 은으로 동전을 만들던 조폐소 자리에 세워졌다. 

네바다 주 주도인 카슨시티에 있는 네바다 주립 박물관. 넘쳐나는 금 은으로 동전을 만들던 조폐소 자리에 세워졌다.

 
카슨시티 외곽에 있는 마을 제노아(Genoa)로 가자 시간의 축은 더 앞당겨져 1850년대로 옮겨졌다. 250여 명이 살고 있는 제노아는 네바다에서 맨 처음 만들어진 마을이다. 제노아 명소는 1853년 문을 연 네바다 최초의 바(Bar)인 ‘제노아 바’. 밤이고 낮이고 1년 내내 관광객이 들끓는다. ‘말 출입 불가(No Horses Allowed)’라는 팻말이 붙은 나무문을 열고 바에 들어갔다.
 
가이드 데이비드는 “마크 트웨인이 앉았던 의자”라며 바 가장 안쪽에 있는 자리로 안내했다. 얼마나 자주 드나들었으면 지정석이 있을까 싶었다. 제노아 바와 사랑에 빠진 유명인사는 마크 트웨인 뿐 아니다. 영화배우 클락 게이블, 미국 로큰롤 가수 조니 캐쉬는 물론 역대 네바다 주 주지사들은 전부 이곳을 들렀다.
네바다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제노아 바. 1853년 문을 열었다.

네바다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제노아 바. 1853년 문을 열었다.

 
제노아 바는 살아있는 박물관이었다. 벽면에는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흑백 사진과 벽시계와 카우보이모자, 각종 농기구까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천장에 달린 커다란 오일 램프는 가게가 오픈했을 때부터 줄곧 한 자리에서 불을 밝혔다. 천장 한쪽에 검붉은 얼룩이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활극이 이곳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걸까, 궁금한 마음에 주인에게 물었다. “여기서 죽어나간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답니다. 저건 단지 토마토 주스가 튄 자국이에요.” 주인장 윌리가 웃으며 말했다.
제노아 바 내부 모습. 밤 낮 가리지 않고 항상 사람이 많다. 가장 안쪽엔 마크 트웨인이 늘 앉던 자리가 있다.

제노아 바 내부 모습. 밤 낮 가리지 않고 항상 사람이 많다. 가장 안쪽엔 마크 트웨인이 늘 앉던 자리가 있다.

 
제노아 바 출입문에는 비밀이 있다. 다른 가게에 비해 문손잡이가 밑에 달려 있다는 것. 어른 무릎보다 살짝 높은 곳에 손잡이가 있어 문을 열려면 허리를 숙여야 한다. 이유를 물으니 재미난 대답이 돌아왔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기어서 나갈 때 문고리를 찾기 쉬우라고 밑에 달아놨답니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맥주 두 잔을 금세 비웠다.
 
 
◇여행 정보=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네바다 주 소도시 투어를 하려면 리노를 기점으로 하는 것이 좋다. 리노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이동해 차례로 버지니아시티?카슨시티를 여행하면 된다. 리노~버지니아시티 자동차로 40분, 버지니아시티~카슨시티 30분이 걸린다. 미국 항공사 델타(ko.delta.com)가 인천에서 시애틀을 경유해 리노까지 가는 항공편을 매일 운행한다. 총 비행시간 약 11시간 30분(환승시간 제외). 리노 다운타운에 카지노호텔이 몰려 있다. 엘도라도 호텔 1박 60달러부터. 환율 1달러 1148원(3월 8일 기준). 자세한 정보는 네바다 관광청 홈페이지(travelnevad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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