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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마이크] 치매 간병 평균 6년 … 우울증 시달리다 극단 선택

중앙일보 2017.03.03 02:44 종합 4면 지면보기
치매환자 100만 시대
 
 
 

치매 환자의 증가로 가계와 국가 모두 재정 부담 증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치매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국가적 대응과 지원이 필요하다.” 박기남

 

간병 중 배우자 살해한 18건 분석
비극의 시작은 자식에게 병 숨기기
“내가 모두 안고 가겠다” 동반자살도
치매 자체는 치료 안 되지만
망상·폭력 등 증상은 완화 가능
배우자 살인, 남편이 72%로 더 많아
여성환자가 71%로 많은 영향

 
‘치매로 인한 비극의 시작은 병을 숨기는 데서 비롯된다. 가족끼리만 쉬쉬하다 보니 치료시기를 놓치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된다.’ 전문가 도움을 받아 2011년부터 발생한 치매 황혼살인 판결문 18건을 분석한 결과다. 치매 황혼살인 피고인의 72%는 남편(평균 나이 77세)이었다. 치매환자 중 여성(2015년 기준 71.3%) 비율이 남성(28.7%)보다 훨씬 높은 것과도 맥이 닿아 있다. 배우자를 보살핀 기간은 평균 5.7년으로 나타났다. 
 
박기남

박기남

판결문 분석에는 전문의인 정지향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과장, 한일우 효자병원 신경과 과장이 참여했다. 이들은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한국적 정서가 비극적 파국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한 과장은 “간병자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치매라는 질병에 대해 우리 사회가 적극적인 대응 체계를 준비한다면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은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점점 나빠지는 보호자 심리 변화=58년 부부의 연은 참담하게 끝이 났다. 김모(80)씨 이야기다. 2015년 치매 진단을 받은 아내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됐다. 아내는 저녁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한 뒤 부엌에서 나오는 김씨에게 달려들었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김씨는 자신도 모르게 아내의 목을 졸랐다. 살인죄로 기소된 김씨는 경찰에서 “아이들에게 아내의 투병 사실을 알리면 짐만 된다고 생각해 말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한=고령의 배우자가 치매환자를 돌보게 되면 일련의 심리 변화를 겪는다. 첫 단계는 부인(否認)이다. 가령 알츠하이머 질환은 최근 기억부터 사라지고, 옛 기억은 오래 유지된다. 가족 입장에선 ‘옛 기억이 생생한데 이게 무슨 치매냐’고 생각한다. 이후엔 자기 희생에 따른 피곤함과 낭패감, 박탈감, 외로움으로 감정이 변한다. 곧 분노로 바뀌고 우울증으로 발전한다. 환자와의 동반자살 사고도 이때 많이 일어난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포기감에 빠진다. 치매는 증상이 나아지지 않고 악화되기 때문이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외부 시설을 선택하거나 스스로의 역할을 조금 낮추게 된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의사가 환자만 치료할 것이 아니라 환자의 가족과 같이 관리하고 치료한다면 극단적 사고는 예방이 가능하다.
 
지난달 17일 인천 시 송도의 한 아파트에서 혈관성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큰딸(50)이 꼭잡고 어루만지고 있다. 언니와 함께 어머니를 돌보는 여동생 B씨는 “언젠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더라도 그때까지는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도=오종택 기자]

지난달 17일 인천 시 송도의 한 아파트에서 혈관성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큰딸(50)이 꼭잡고 어루만지고 있다. 언니와 함께 어머니를 돌보는 여동생 B씨는 “언젠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더라도 그때까지는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도=오종택 기자]

 ◆견디다 못해 어느날=이모(70)씨는 2년 전 치매 진단을 받은 아내의 폭언을 견딜 수 없었다. 아내는 “이웃집 여자와 바람이 났다”고 이씨를 몰아붙였다. 사고가 나던 날, 아내는 새벽부터 외도를 의심하며 ‘죽어버리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씨는 홧김에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치매 환자가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하는 것을 부정망상(不貞妄想)이라고 한다. 망상이나 폭력, 과격한 행동 등 증상은 치료가 가능하다. 치매는 치료가 불가능하지만 이런 증상은 치료 효과가 있다.
 
 
정=자식은 출가하고 각자 지병이 있는 노부부가 서로에게 의지해 간병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가족 간의 적극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가령 치매 어머니를 아버지가 돌본다면 매일 전화도 하고 위로를 해야 한다. 이런 관심이 뜸해지면 보호자인 아버지의 외로운 감정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간병 누가 해야 하나=김모(60)씨는 치매 환자가 되고서야 20년 만에 집으로 온 남편이 끔찍했다. 김씨는 병원 연락을 받고 남편을 데려온 날 가슴을 쳤다. 병원에서 돌아와 목욕을 시키려는데 옷벗기를 거부했다. 김씨는 “나한테 뭘 잘해준 게 있냐”며 다투다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해 법정에 섰다.
 
 한=발병 전 부부 사이가 나빴던 것이 사건의 핵심이다. 미국은 간병 스트레스로 인한 사고를 줄이기 위해 간병인 선정 원칙을 둔다. 먼저 환자와 보호자의 성별, 평소 관계를 고려한다. 가령 고부갈등이 심했던 며느리가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를 모시게 되면 양쪽이 고문에 준하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가 취재했습니다
중앙일보·JTBC의 온라인 의견수렴 사이트 시민마이크(www.peoplemic.com)에 올라온 의견을 직접 취재해 보도합니다. 2016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 인구 가운데 치매환자 수는 68만 명, 2024년에는 100만 명까지 늘어날 전망입니다. 치매 문제의 심각성과 대응 방안에 대해 취재했습니다.
 
◆ 특별취재팀=이동현(팀장)·김현예·최모란·이유정 기자, 정유정(고려대 미디어학부 3년) 인턴기자 peoplemic@peoplem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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