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
집권 정당성 찾는 중국 공산당
마르크스주의 약발 떨어지고
‘임시 이념’ 경제성장도 주춤하자
전통 문화인 유가에서 대안 모색
서열 강조하는 권위주의 속성과
같음을 추구하며 다름 배제하는
유가의 부정적 측면 강조된다면
중국 공산당 새 이념 될지 미지수

이번 학술회의는 바로 그런 교과 내용을 뜯어고치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떻게 변할까. 회의에 참가한 간춘쑹(干春松) 교수는 “중국은 사회주의를 견지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강조돼야 하는 건 전통 문화”라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유학이 사회주의 교과목을 넘어 중국 최고위 간부를 양성하는 주요 콘텐트가 될 것이란 이야기다.

그렇다면 중앙당교가 긴급 학술회의까지 열며 교과목 변경에 나서는 이유는 뭔가. “현재 중국 공산당이 당면한 중요 사명이 5000년 중화문명의 계승과 중국 인민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란 간춘쑹 교수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지배의 합법성을 사회주의가 아닌 전통문화에서 찾겠다는 것이다.

이에 중국 공산당은 새로운 ‘대안 통치이념’이 필요해졌다. 안정이 곧 최고의 가치인 중국에서 통치이념의 공동화가 초래할 가공할 결과는 통합이 아닌 분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국 공산당이 눈을 돌린 게 바로 전통문화다. 중국 공산당 집권의 기초를 시급하게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생겼고 그 기초를 민주화에서 찾을 수 없다면 민족적인 문화 가치에 호소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본 것이다.
왕후이(汪暉) 칭화대학 교수는 “이제 공산당은 자기 문명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과제에 직면해 있고 그것을 설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왕제(王杰) 중앙당교 교수가 ‘영도간부학국학(領導幹部學國學)’의 계획을 세운 바 있고 유가가 다시 중국 전통문화의 대표 주자로 주목을 받는 것이다.
지난 1월 말 중국 당국은 ‘중화 우수 전통문화 전승 발전 실시 계획에 관한 의견’을 발표했다.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교과목에 전통사상 교육 내용을 포함시키는 게 주요 골자다. 이런 중국의 모습을 보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1921년 중국 공산당은 신문화운동(新文化運動)과 5·4 운동이라는 반(反)전통의 배경 위에서 탄생했는데 이제 그 창당 100주년을 불과 4년 앞두고는 자신이 철저하게 부정하며 배척했던 전통을 다시 역사의 전면으로 불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 지식계는 바로 이 같은 중국 공산당의 통치이념 변화 바람을 타고 마치 새로운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를 맞은 양 활기에 넘친다. 진(秦)나라 이전의 제자백가(諸子百家) 시대처럼 신유가·신법가·신도가·신불가·신묵가 등 많은 유파가 출현하고 있는 중이다.
신유가 내부에선 또 대학유학만이 아니라 생활유학·정치유학·헌정유학·인민유학·제도유학 등이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른바 현대판 인문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한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게 중국 지식계의 요즘 풍경이다. 중국의 두뇌 집단 사회가 물질적·심리적으로 여유가 넘치며 대단한 자신감에 차 있기도 하다.
지난해 말 칭화대학에서 열린 ‘청말 사상에서의 중서(中西) 신구 논쟁’ 학술회의 또한 꽤 인상적이었다. 가장 놀라운 건 백발의 원로 학자에서 청년 학자에 이르기까지, 또 좌파와 우파 가릴 것 없이 중국 내 내로라 하는 학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장면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문학계의 유명 학자들인 왕후이와 간춘쑹, 천라이(陳來), 탕원밍(唐文明), 쉬지린(許紀霖), 천밍(陳明), 가오취안시(高全喜), 쩡이(曾亦) 등은 유파가 다르더라도 대면한 문제가 동일하다면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는 건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

시진핑이 집권 후 내세우고 있는 게 ‘세 개의 자신(三個自信)’이다.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인 도로(道路), 중국이 세워야 할 제도(制度), 그런 방향으로 인도해 줄 이론(理論) 등 세 가지에서 중국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시진핑의 주장은 이런 지적 배경을 깔고 있다. 물론 여기엔 서양의 방식도, 러시아의 방식도 중국의 길을 제시해주지 못한다는 중국 나름의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처럼 전통문화, 특히 유가를 새롭게 집권의 기초로 삼으려는 중국의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유가는 서열을 중시하는 권위주의적 사상이다. 그런 사상으로 제3세계는 모르겠지만 민주와 자유 이념으로 무장한 선진 각국을 설득할 수 있을까.
또 한족 문화에 기초해 형성된 유가 정체성의 강화는 중국 내 많은 소수민족에게 협애한 문화 민족주의로 비칠 가능성이 많다. 이와 함께 유가에는 맹자가 ‘천하는 하나로 정해질(天下定于一) 때만 희망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같음을 숭상하는 사상적 습관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이 같은 중국의 변화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나. 한국은 이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경험한 곳이다. 중국으로선 자기 문화에 대한 단순한 긍정을 넘어 21세기에 걸맞은 보편적 가치로 한국에 다가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저 권위주의적이고 다름을 배제하는 유가의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한다면 이는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올 것이다. 중국에서의 유가 부활이 자칫 ‘19세기적 21세기로의 오묘한 회귀’로 비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로 인한 긴장 국면을 주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보다 긴 호흡을 가지고 중국 공산당과 지식인이 펼치는 중국의 미래 구상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조경란
성균관대학교에서 중국의 사회진화론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 유학, 지식인』 『현대중국 지식인 지도』 『20세기 중국지식의 탄생』 등 여러 저서가 있다. 아산서원 외래교수로도 활동 중이며 홍콩 중문대학 및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