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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뚜벅이라도 괜찮아

중앙일보 2017.03.01 01:00 종합 24면 지면보기
노진호문화부 기자

노진호문화부 기자

지난주 전주 자만벽화마을에 다녀왔다. 5개월 갓 넘긴 아들, 아내와 함께 차 없이 떠난 첫 ‘뚜벅이’ 여행이었다. 여러 벽화가 있었지만 ‘나에 엄마’라는 벽화가 눈에 띄었다. 자식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엄마를 표현한 벽화였는데, 눈에 띈 게 작품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품명 중 ‘에’자에 그어진 X자와 그 위에 적힌 ‘의’라는 낙서가 거슬렸다. 작품 아래 “친근함을 위해 의도적으로 나‘에’ 엄마라 표시했다”고 적힌 설명이 있었음에도 낙서 앞에 설명은 무색해졌다.

그 벽화가 기억에 남은 건 어쩌면 지난해 육아가 시작된 후 접한 끊임없는 참견 때문인지 모른다. 누구나 숱한 선택의 갈림길을 마주하지만 육아 길에선 그 밀도가 높았고, 그만큼 주위 훈수도 늘었다. 육아휴직을 두고서도 ‘정답인 양’ 수많은 조언을 들어야 했던 아내는 출산 직후엔 완모(완전 모유수유)와 완분(완전 분유수유), 혼합의 갈림길에서 잘잘못을 논하는 훈수를 견뎌내야 했다. 지금은 ‘손 타면 안 되니 많이 안아주면 안 된다’와 ‘충분한 사랑을 받아야 하니 원하는 건 적극적으로 해줘야 한다’는 식의 상충하는 훈수가 복잡한 육아를 더 지치게 하는 중이다. 아내의 지인은 자신의 아내가 파워블로거인 친구만 만나고 오면 “그거 별로라고 하더라”며 육아용품을 바꾸려 해 무섭기까지 하단다. 시적 허용마저도 옳고 그름을 따져 참견하고 X자를 치는 마당에 어디 육아뿐이랴. 그렇게 조언을 넘어 선택을 바꾸어야만 ‘나는 잘살고 있다’고 위안받는 건지도 모른다.

클래식 문외한인 나는 한때 ‘똑같은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데 왜 마에스트로에 따라 다른 음악이 나올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답은 악보 안에 있었다. 악상기호에는 해석의 여지가 많았다. 예를 들어 보면 ‘에스프레시보(expressivo, 표현을 풍부하게)’라는 기호가 구체적으로 뭘 요구하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칸타빌레(cantabile, 노래하듯이)나 콘 브리오(con brio, 생기 있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누가 지휘하느냐,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악보도 다른 음악이 된다. 인생과 행복이라는 악보도 마찬가지 아닐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다면 구태여 X자 치고 재단할 필요 없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아기 낳으면 ‘차를 사야 한다’고 조언을 들었지만 결국 차를 사지 않은 우리 가족은 여행 후 우리 선택이 옳았다고 결론냈다. 힘들긴 했어도 지하철과 KTX에서 어르신들에게 둘러싸여 ‘스타’가 된 아들을 보는 건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가족은 앞으로도 꾸준히 전국 여행을 다닐 예정이다. 뚜벅이라도 괜찮다. 매 순간이 난관이라도 괜찮다. 유모차와 아기띠로도 못 갈 곳은 없다.

노진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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