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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절한 시에 담았다, 고국 온 고려인의 삶

중앙일보 2017.03.01 01:00 종합 21면 지면보기
시집을 소개하는 김 블라디미르. 시집 판매 수익금은 고려인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시집을 소개하는 김 블라디미르. 시집 판매 수익금은 고려인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고려인 동포3세가 3·1절 98주년과 고려인 강제 이주 80주년을 맞아 고국에 대한 애정과 소망을 담은 시집을 냈다. 광주광역시 월곡동 고려인 마을에 사는 김 블라디미르(61)씨가 낸 『광주에 내린 첫눈』이다. 2011년 3월 한국에 온 김씨는 눈 내린 광주의 풍경에 반해 책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광주에 내린 첫눈』 김 블라디미르
6만원 일용직 전전 “그래도 조국 사랑”

시집에는 한국 땅을 밟은 이후 김씨가 쓴 35편의 시가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실렸다.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전 연해주에서 조국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투사인 조부와 부친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조국에 정착한 그가 받은 느낌 등을 소재로 한 시들이다.

고려인 김블라디미르. [프리랜서 오종찬]

고려인 김블라디미르. [프리랜서 오종찬]

김씨는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문학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는 등 33년간 학자이자 시인으로 활동했다. 고려인에 대한 차별, 중앙아시아의 경제난을 피해 부인과 딸·아들·손자 등 일가족 10여 명과 무작정 한국행을 택했다. 광주에 고려인 마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 국내에는 광주·경기 안산 등에 4만여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기대에 부풀어 찾은 한국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차별에 시달렸던 김씨 가족은 한국에서도 다른 언어와 문화 탓에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러시아문학을 가르치던 김씨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일용직근로자로 농촌에 가서 하루 12시간씩 과일을 따거나 밭일을 하고 일당 6만원을 받는 것뿐이었다.

고려인 김블라디미르. [프리랜서 오종찬]

고려인 김블라디미르. [프리랜서 오종찬]

김씨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내 조국은 한국이라는 생각에 들어왔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친절한 한국인들이 많았지만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고려인들은 애국심과 자부심을 갖고 살아간다고 했다. 김씨의 시 ‘대한민국 광복절’에는 그런 마음이 묻어난다. ‘그래요, 이 날입니다!/이 날은 온 나라의 축일입니다!/대한민국, 그대는 번성하며 살고 있습니다!/부요함, 행복, 평화, 그리고 사랑이 있기를 바랍니다/그대, 오 나의 조국, 그대에게 바랍니다!’

고려인들은 여전히 비자·급여·복지·의료보험 등 문제에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는 “한국인들이 고려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김씨는 자신의 시 ‘추석’의 한 구절을 통해 고려인들의 바람과 생각을 전했다. ‘나는 외국인이라는 모욕적인 말을 원하지 않습니다/그런 말을 듣거나 알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나는 고려인, 나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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