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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이야기 해줄까 #15. 이야기 해줄까 - 누구나 어두운 지하실은 무섭지 (3)

중앙일보 2017.03.01 00:01

눈앞에서 비의 장면이 일어선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사방에서 비 냄새가 밀려들었다.
조지에게 뱉어냈던 그 날의 문장들이 후드득후드득 몸을 꺾으며 튀어 오른다. 쉬척지근하고 불쾌한 감각을 깨우는 토사물 냄새.
기억한다. 사랑의 말이었다.
미동도 없는 조지를 향해 끝도 없이 웃었다. 미친 듯 웃음이 나와 입을 크게 벌리고 와하하 웃었다. 나는 일방적인 감정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날의 조지를 통해 배웠다. 사랑해서 죽이고 사랑해서 소유한다는 믿음은 모두 거짓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건 여기까지다. 조지는 조지일 뿐 다른 것이 될 수 없는 조지가 우산을 내밀었다. 여전히 와하하 웃으며 당연하게 받았으며 조지는 우산 없이 걸었다. 그것은 비의 장면으로 남았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거짓말처럼 친구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꿈같았다.
땀에 젖었던 옷은 빗물이 더해지자 몸으로 감기며 축축 늘어졌다.
동물구조대원들이 차에서 그물망과 보호 장갑 따위를 꺼내왔다. 한동안 서 있다.
 
“서둘러야죠. 빗물로 배수로가 넘치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조지의 말에 둘 중 살집이 더 있는 대원 하나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맨홀 보이죠?”
 
대원이 가리킨 곳에 동그란 맨홀 뚜껑이 있었다. 정말 생경한 풍경이기에 조지도 나도 어째서 저 뚜껑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싶다.
 
“우리 같은 사람은 안 들어갑니다.”
 
동물구조대원들이 합창하듯 말했다. 조지는 한껏 뾰족한 눈이 되었고, 대원 하나가 손사래를 치며 찬찬히 설명했다. 이곳은 비가 올 때마다 물이 넘치는 곳으로 유명하다. 배수로와 맨홀의 폭이 지나치게 좁기 때문이었다. 가뭄으로 한동안 잠잠했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니 곧 물이 넘쳐날 거였다. 이 후진 동네 배수로나 맨홀 확장에 쓰일 예산은 언제나 없으므로 물이 넘쳐나는 일은 매해 반복되었다. 로테를 구하려면 맨홀로 들어가야 하는데 자기들처럼 덩치가 큰 사람은 불가능하다.
 
“제가 하겠습니다.”
 
조지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한쪽 팔을 든 모습이 어딘가에 꽂힌 깃대 같았다.
 
“야, 조지. 뭘 어떡하려고 그래? 너 좁은 데 갇히면 안 되잖아.”
 
조지를 바짝 당겨 속삭이듯 물었다. 조지가 팔을 내리고 입을 꾹, 악물었다. 어렸을 때 누나들과 숨바꼭질하느라 조지는 장롱 속에 숨었다 그대로 잠들었다. 아무도 찾지 못했고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깜깜한 장롱 속, 야광의 눈이 꼬마 조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엄마가 누나의 인형을 넣어두었고 그 노란 눈과 마주친 거였다. 자라오는 동안 끝내 좁고 어둡고 노랗고 야광인 것들 앞에서 무력했다. 아직도 웬만해선 한밤의 길은 걷지 않는다. 상투적이긴 해도 극한의 트라우마였고, 어쨌든 내가 알기에 그랬다.
 
“누구나 어두운 지하실은 무서워. 하지만 누가 됐든 불은 켜야지.”
 
“그걸 왜 네가 켜야 하는데?”
 
“대가리에 못을 박는 인간들은 계속 못만 박거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얼굴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신경질적으로 닦아냈고 조지가 그런 나를 빤히 보았다. 눈망울이 쓸데없이 촉촉하다. 허락을 구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조지, 그럴 수 있는 조지.
조지는 이제 로테를 구하러 맨홀로 들어가야 한다. 좁고 어둡고 냄새나는 통로는 길쭉하고 비쩍 마른 조지를 부드럽게 집어삼킨다. 멈추기로 했지만, 그러고도 생각은 얼마간 더 미끄러져 나아갔다. 조지는 이미 맨홀을 통과하며 수많은 감각과 싸운다. 시큰거리는 눈과 악취에 벌름거리는 코와 예민하게 일어선 귀와 떨리는 손과 빠르게 뛰는 심장의 박동과 장롱 속 야광의 노란 눈과. 싸운다. 조지 말고는 다른 이름이 될 수 없는 조지가.
 
  
                                           *
 
 
빗물이 스며들어 눈이 따끔거렸다. 아닌가. 어쩌면 몸 안 어디인지 모른다.
지나가던 남자 하나가 배수로 쪽으로 다가왔다. 그 뒤로 무슨 줄줄이 사탕인 것처럼 우산 행렬이 이어졌다. 알록달록한 우산을 든 아이들이 보였다. 일사불란하게 과자와 물을 주던 아이들이다. 작은 입과 눈이 모두 우리 쪽으로 향해 있었다.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엄마들이 우리를 둥그렇게 감쌌다. 우우우 순식간에 밀려왔고 너무 많은 사람이 주위에 있었다.
동물구조대원들이 맨홀 뚜껑을 걷어냈다. 나는 몸을 수그려 맨홀 속을 들여다보았다. 좁고 깊은 어둠이 뱀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빗속의 사람들은 로테가 걱정되어 나왔다고 했다. 아이들 성화에 이끌려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내 눈은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허공 어디쯤을 헤맸다. 그들과 달리 조지 걱정으로 눈앞이, 저 멀리까지가 아득했다.
사람들이 건넨 우산을 든 조지가 뒤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애원과 염원이 담긴 눈빛이 화살처럼 되돌아왔을 테지. 태어나 그렇게나 많고 뾰족한 시선을 받아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어여, 어여.”
 
등이 굽어 몸을 반으로 접은 할머니가 빨리 저 시커먼 지하실로 들어가라 손을 털었다.
선뜻 움직이지 않는 조지를 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둠이나 장롱이나 야광의 눈을 잊어버린 건 이미 오래인지 모른다. 잊고 있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웅크린다. 어떤 것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어둠 속으로 발을 디디고 싶지 않아. 누구나 어두운 지하실로 내려가 불을 켜는 건 두려운 일이니까. 나는 어쩐지 어지럽고 슬픈 심정이었다.
조지가 맨홀 속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동물구조대원들 옆에서 조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마른 몸이 낄 정도로 맨홀은 폭이 좁고 역시나 역한 냄새가 올라온다. 조지 몸과 맨홀의 작은 틈새로 저 아래 하수구가 보였다. 검은빛을 띤 물이 느리게 흐르는 것은 그만큼 많은 것들이 섞였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어둠과 더러운 것들이 모인 곳.
 
“여기 구멍이 있어요. 아마 이곳으로 로테를 넣은 거 같아요.”
 
맨홀 벽에 터널처럼 뚫린 작은 구멍이 하나 있다는 뜻이었다. 구멍 너머로 배수로가 보인다는 조지의 말에 몇 초간 시간이 멈추었다. 패널을 걷어내도 입구로는 불가능했을 테니 로테를 배수로에 넣었다면 아마 그 구멍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고양이 새끼를 구멍에 올려놓고, 녀석은 본능적으로 작은 빛이 스며드는 곳을 향해 조금씩 움직인다. 그 누군가는 굳이 왜 냄새나고 좁고 어두운 곳까지 기어들어갔던 것일까.
조지가 미동도 없이 구멍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한참을 그랬다.
 
“기도하냐?”
 
조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수직의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건 처음이다. 마음이 썩 괜찮다. 웃음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다. 이런 상황에 그의 공포를 보며 웃음이라니.
 
“너는 모른다.”
 
아래로 눈을 내리며 조지가 말했다. 나로서는 이유도 의미도 알 수 없으므로 쳇, 콧방귀나 뀌었다.
야옹, 희미하게 로테의 소리가 들려왔다.
맨홀 속에는 오로지 로테와 조지뿐이었다.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조각들로 그들이 함께했다. 저들의 시간을 맨홀 위의 나라면 결코 알 수 없겠지. 갑자기 물이 쑤욱, 올라온다 싶었다. 작은 틈새로도 확연히 보일 만큼 수위가 높아졌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빗소리에 묻힌 사람들 목소리가 먼 곳의 소리로 들려왔다.
 
“로테야.”
 
조지 목소리 끝이 떨렸다. 몇 번을 더 불렀지만 구멍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더 크게 부르라고 하세요.”
 
막대로 배수로 양쪽을 막고 구멍 주위로 로테를 유인하던 동물구조대원들이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몰아도 로테가 구멍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대원들이 끙끙거리며 막대를 움켜쥐었다. 입구가 좁아 막대를 움직이는 일이 더 어려운 모양이었다. 조지가 아무리 불러도 로테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맨홀 속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귓바퀴가 뜨끈할 정도로 내 옆에서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로테야! 로테야!”
 
아이들이 일제히 로테를 부르고 동물구조대원들과 사람들 몇이 막대를 각각 양쪽으로 넣어 구멍으로 민다. 조지는 팔을 뻗어 붙잡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배수로 왼편을 막고 있던 대원 하나가 내게 다급하게 손짓했다.
 
“야, 간다! 정신 차려!”
 
흠칫 놀란 조지가 고개를 수그려 터널처럼 뻗은 구멍 속을 들여다본다.
빛을 끌어모으려 한껏 동그랗게 열린 야광의 눈이 어두컴컴한 구멍 속에서 노려보겠지. 조지는 이제 쉽사리 손을 뻗지 못하고 내내 머뭇거리는 시간에 있을 테지.
예상과 달리 조지는 구멍 속으로 쑤욱 손을 뻗었다. 순식간이었다. 로테가 조지 품에 안겨있었다. 우웅, 통로를 울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쓰레기 섞인 물이 검게 휘돌며 조지 발끝까지 차올랐다.
 

작가 소개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9년, 단편 『아칸소스테가』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등단.
창작소설집 『마리 오 정원』
테마소설집 『2012신예작가』
12월 테마소설집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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