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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대선이 오면, 실화영화도 온다?

중앙일보 2017.03.01 00:01
 
2017년은 대선의 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사태가 벌어질 줄 몰랐던 영화계는, 올해 라인업을 이미 오래전에 짜 두었다. 탄핵이 인용될 경우 대통령 선거일은 예정보다 훨씬 앞당겨지겠지만, 어쨌든 2017년이 대선의 해인 것에는 변화가 없을 듯하다. 돌아보면, 대선이 치러진 해에는 유독 실화 소재의 영화가 많았다. 바로 실존 인물이나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들 말이다. 18대 대선이 열린 2012년에도 그런 영화들이 있었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 감독)를 비롯해, ‘26년’(조근현 감독) ‘남영동 1985’(정지영 감독) ‘돈 크라이 마미’(김용한 감독) ‘부러진 화살’(정지영 감독) 등이 개봉했다. 물론 그중에는 정치·사회적 사건의 재조명, 사법부 권위에 대한 도전 등 구체적 사안을 비판한 작품이 많았다. 하지만 상징적인 지도자상을 비유적으로 극에 투영한 영화도 있었다.
광해군의 기록되지 않은 15일을 토대로 한 '광해, 왕이 된 남자'.

광해군의 기록되지 않은 15일을 토대로 한 '광해, 왕이 된 남자'.

 
지난 18대 대선 이후 만들어진 실화 소재 영화 중에는 애국심 코드를 녹인 전쟁 배경의 작품이 많았다. ‘연평해전’(2015, 김학순 감독) ‘인천상륙작전’(2016, 이재한 감독) 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분명 관(官)에서 만들지 않았는데도, 여러모로 관제영화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들 말이다. 반면, 그 반대 지점의 다큐멘터리도 주목할 만하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2015, 이상호·안해룡 감독)이 대표적인 예다. 외압을 무릅쓰고 2014년 이 영화를 상영했던 부산국제영화제는, 지금까지도 논란의 중심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이 밖에 ‘자백’(2016, 최승호 감독) ‘7년:그들이 없는 언론’(1월 12일 개봉, 김진혁 감독)과 같은 다큐도 있다. 소문이 무성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현실로 확인된 지금, 영화인들은 그렇게 사회적 발언의 창구로 영화를 활용해 왔다.
‘7년:그들이 없는 언론’

‘7년:그들이 없는 언론’

 
2017년에 개봉할 영화를 살펴보면, 실화 소재 영화가 굉장히 많다. 이런 경우 소재 선택 과정에서부터 그 영화를 만들어 나갈 이들의 판단과 해석이 드러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변호인’(2013, 양우석 감독)의 감독·배우·제작자가 ‘누군가’에게 그토록 밉보인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올해 기대를 모으는 실화 소재 영화는 ‘군함도’(류승완 감독) ‘남한산성’(황동혁 감독) ‘대립군’(정윤철 감독) ‘택시운전사’(장훈 감독) 등이다. ‘군함도’의 배경은 일제강점기 하시마섬으로, 섬 모양이 군함을 닮아 ‘군함도’라 불린 이곳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400명의 고통과 아픔을 조명한다.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남한산성’은,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였던 병자호란 시기를 다룬다. ‘대립군’은 임진왜란 당시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과 생계 유지를 위해 다른 사람의 군역을 대신하는 대립군에 대한 이야기다. ‘택시운전사’는 현대사를 소재로 삼았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눈에 비친 광주 모습을 담아낼 예정이다.
 
영화 '군함도'.

영화 '군함도'.

실제 사건이나 실존 인물이 영화화된 이상,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사건 A’가 아니라 작가에 의해 허구적으로 재구성된 ‘작품 B’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을 앞둔 시점에, 여러 감독들이 실화에서 어떤 영감을 받아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한다는 것을 그저 우연의 일치로 보긴 어렵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미래를 비춰 보는 거울과 같다. 지금 한국 영화계는 지나간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찾아내고 있다. 타산지석의 사례로 여기든, 반성의 교훈으로 삼든, 결국 영화화하려는 과거엔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한 가치와 의미가 있게 마련이다. 앞서 말했듯, 그런 점에서 볼 때 실화 소재의 영화들이 대선 무렵 많아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다양한 영화를 통해 이런 작은 열망과 바람이 모인다면,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바뀔 것이라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야말로 실화 소재 영화의 동력 아닐까?
 
 
글=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허구 없는 삶은 가난하다고 믿는 서사 신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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