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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 잇는 헬로루키는 누구?

중앙일보 2017.02.26 17:36 종합 23면 지면보기
음악과 영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밴드 실리카겔.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대희, 김민수, 김한주, 구경모, 최웅희, 김건재. 김민영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음악과 영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밴드 실리카겔.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대희, 김민수, 김한주, 구경모, 최웅희, 김건재. 김민영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홍대 인디신의 팬이 아니라면, 실리카겔이란 이름이 다소 낯설 수 있다. 2015년 8월 ‘새삼스레 들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 가지 시각’이라는 생경한 타이틀의 데뷔 싱글을 발표하고, 지난해 10월 정규 1집 ‘실리카겔’을 발매한 따끈한 신인 밴드니까. 팀명부터가 짖궂고도 인상적이다. 개별 포장된 김을 뜯으면 들어있는 방습제 실리카겔이다. ‘인체에 무해하나 먹지 마시오’라는 경고가 적혀 있는 방습제 말이다.

보고 듣는 즐거움 동시에 만족시키는 루키 실리카겔
음악과 영상 함께 선보이며 인디 밴드 진화 보여줘
'올해의 헬로루키' 대상 이어 'K-루키즈 파이널' 우승


‘인체에 무해하니 들어보시오’ 하고 출사표를 던지는 듯한 이들은 음악을 담당하는 김건재(드럼), 구경모(베이스), 김한주(신시사이저ㆍ보컬), 김민수(기타ㆍ보컬), 최웅희(기타)와 영상을 맡은 VJ 이대희ㆍ김민영이 모인 7인조 밴드다. 연주 파트의 5인이 모두 곡을 만들고, 미디어 아트로 무대를 꾸미는 2인의 영상파트가 한 팀을 이뤘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독특한 사운드에 영상과 공연으로 음악을 완성하는 새로움으로 무장한 밴드다. EBS 신인 발굴 프로젝트 ‘2016 올해의 헬로루키’ 대상, 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 신인 뮤지션 지원 프로젝트 ‘2016 K-루키즈 파이널 콘서트’ 우승까지 섭렵하며 ‘슈퍼 루키’로서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무대에서 '시스터'를 부르는 실리카겔. 바닥에 비치는 영상을 음악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출발은 리더인 김건재가 2013년 미디어 아트 수업 기말과제로 드럼과 영상을 엮은 작품을 같은 해 평창 비엔날레에 선보이면서다. 각기 다른 전공의 이대희, 강동화 등 세 사람이 시작한 프로젝트는 강의실 밖으로 무대를 옮겨오며 판이 커졌다. “예전부터 그런 얘길 많이 했었어요. 우리가 음악 하는 무대는 직접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요즘은 건물 외벽에 LED 조명을 쏘는 미디어 파사드 같은 것도 많잖아요. 영상을 통해 우리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고, 무대마다 다른 컬러를 낼 수 있겠다 싶었죠.”(김건재)


그 결과 이들의 독특한 음악 세계는 소리와 이미지로 함께 구현됐다. ‘강은 말라 비틀었다/ 모두 들어라/ 내 아이들아’ 같은 주술적 느낌이 나는 곡 ‘시스터’는 지난해 8월 인천 운염도에서 열린 네이버 온스테이지 라이브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준설토 투기로 생겨난 쩍쩍 갈라진 땅을 캔버스 삼아 쏟아지는 오색찬란한 물결 레이저를 보다 보면 금방이라도 우주 어딘가로 날아가 유영을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VJ 이대희는 “어차피 이 아이들이 쓴 곡은 계속 들어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끈적거림이나 거칠함 등 사운드에서 느껴지는 질감을 반영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팀 내 유일한 여성 멤버인 김민영은 감성적인 터치가 강점. 1집 타이틀곡 ‘9’에서 멤버들 얼굴을 본딴 캐리커처가 둥둥 떠다니는 영상이 그의 작품이다. 
서울 서소문에서 만난 실리카겔은 인터뷰 역시 음악 스타일만큼 자유분방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서소문에서 만난 실리카겔은 인터뷰 역시 음악 스타일만큼 자유분방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연주 파트 5명 모두 곡을 쓰다 보니 멤버별로 다른 스타일도 더욱 다채로운 무대를 꾸미는데 보탬이 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중저음으로 읊조리는 곡 ‘두 개의 달’을 만든 베이스 구경모는 의외로 “드럼을 굉장히 현란하게 찍는 게 제 장기”라고 밝혔다. 드럼 김건재가 “그걸 치려면 손이 네 개는 있어야 한다”고 받아치자, 건반 김한주는 “두 사람 다 다른 악기에 대해 무자비하게 편곡하는 게 특기”라고 하소연했다. 

도대체 이 정체불명의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누가 가장 B급 감성이냐”고 물으니 “다같이 똥통에 빠졌는데 누가 더 냄새나냐 수준으로 우위가 없다”(최웅희)는 대답이 돌아왔다. 게임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김건재는 “롤플레잉 게임을 하다보면 현실에서 볼 수 없는 풍광이 많이 나온다”며 “범선에 작살이 다닥다닥 꽂히자 그물처럼 변하는 모습을 보고 ‘달그물’이란 단어에 꽂혀 ‘눈동자’란 곡을 쓰는 식"이라고 말했다.

무대를 직접 봐야 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이들을 찾는 공간도 많아졌다.다음달 초에는 밴드 파라솔과 컬래버 공연 ‘샴 vol.2’(4일)ㆍ다국적 인디 록밴드 ‘언노운 모털 오케스트라’ 내한공연(5일) 등이 이어진다. “모든 걸 다 갖춘 공연장보다 영상이 관객들 몸에 투영되고 마구 일그러지는 무대가 더 저희랑 맞는 것 같아요. 잔망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팀이 되고 싶습니다.”(김민수)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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