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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취재 후기 1편] 홍콩 휴가 중에 걸려온 전화 "김정남 암살현장으로 가라"

중앙일보 2017.02.26 12:45
“휴가는 잘 보내고 있니? 오늘 뉴스 봤지? 말레이시아로 가거라.”
김준영 중앙일보 기자

김준영 중앙일보 기자

 

2년차 기자 첫 휴가지에서 세계적 사건현장 급파
함께 간 친구 "죽은 김정남 때문에 산 친구를 버려…"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말레이시아행을 지시받은 건 지난 14일. 작년 입사 후 1년 여 만에 첫 휴가를 받아 홍콩에 있을 때였다. 시커먼 친구 한 놈과 5박 6일 일정 중 마카오 2박 후 홍콩으로 온 첫날이다. 밤 8시부터 시작되는 심포니오브하모니 레이저 쇼를 한창 감상 중이던 나는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해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사진 좀 찍어주세요.” 사람 좋게 생긴 젊은 홍콩 남성이 촬영 버튼을 누르려다 말고 내게 다시 휴대전화를 내보였다. “전화 오는데요?” 그 순간 내 동공에 박힌 선명한 글자 ‘이XX 선배(부장)’.
 
“휴가 중엔 절대 회사 전화를 받으면 안된다”는 선배들의 숱한 조언을 떠올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부장은 휴가를 잘 보내고 있는지 물었고 금세 본론이 나왔다. 전날인 13일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암살됐다는 보도를 봤냐는 거다. 오후에 와이파이가 되는 숙소에서 보도 내용을 보긴 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회사에 계신 선배들 고생하시겠구나 ㅠㅠ’ 했다.
 
통화는 길지 않았다. 쿠알라룸푸르로 가라는 말에 나는 그저 “네 알겠습니다.” 서둘러 항공 편을 알아보니 다음날 오전 8시 45분이 첫 비행기였다. 그간 쏟아진 기사 내용을 숙지해야했고 휴대전화 로밍 신청에 현지 코디도 구해놔야 했다. 이런저런 준비로 꼬박 밤을 새고 홍콩국제공항에서 2시간 쪽잠을 청한 뒤 말레이시아 에어라인 MH79편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난 김정남 암살 사건 한복판으로 날아왔다.
 
홍콩 휴가중에 마지막으로 찍은 야경 사진. 이 사진을 찍고 말레이시아 김정남 암살사건 현장으로 급파됐다. 김준영 기자

홍콩 휴가중에 마지막으로 찍은 야경 사진. 이 사진을 찍고 말레이시아 김정남 암살사건 현장으로 급파됐다. 김준영 기자

 
아, 졸지에 ‘나홀로 홍콩여행’을 하게 된 친구는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간 뒤 페이스북에 이런 내용의 글을 남겼다. “김준영은 죽은 김정남을 위해 살아있는 나를 두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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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으로 계속
<쿠알라룸푸르에서>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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