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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구속을 피할 수 있을까

중앙선데이 2017.02.26 02:46 520호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칼럼
 지겨운 절차가 끝나간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이 27일로 잡혔다. 3월 10일이나 13일에는 결론이 날 것 같다. 국민 여론조사로는 탄핵 찬성이 70%를 넘는다. 물론 법률적 판단은 여론과 다를 수 있다.
 

자진 사퇴가 현시점서 최선
사면권자는 정치인 아닌 국민
기대보다 큰 것 던질 때 감동
조건 붙일수록 분노만 일으켜

그런데도 박 대통령 측 대리인들의 언행을 보면 탄핵 인용으로 기운 인상이다. 재판부를 인신공격하고, 막말을 쏟아내는 행동은 재판을 포기하지 않고는 하기 어렵다. 결과에 대한 판단이 섰다는 뜻이다. 법적 논리 대결은 소용없다는 생각으로 읽힌다.
 
자유한국당에서 나오는 자진사퇴설도 그렇다. 탄핵안이 기각된다면 굳이 꺼낼 이유가 없는 선택이다. 최순실 사태 초기에는 야당이 요구해도 거부했다. 그런데 아무리 비공식이라고는 해도 인제 와서 이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인용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기 때문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자진 사퇴는 현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이다. 어제로 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4주년. 1년이 남았다. 지난해 7월 이 문제가 제기된 이후 국정은 표류해왔다. 지난해 12월 9일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로는 대통령 부재(不在)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탄핵안이 인용되건, 기각되건, 대통령으로서 역할은 끝났다. 기각돼도 민심을 가라앉히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연말 대통령 선거까지 맞물려 정치권도 협조보다는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공격의 날을 세울 게 뻔하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탄핵이라는 타의(他意)로 쫓겨나기보다 스스로 결단하는 게 떳떳하다. 국론 분열과 갈등을 최소화하고, 국정 표류를 막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매우 억울해한다고 한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런 처지가 되었느냐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누군가 음모를 꾸미고, 조작해, 계획적으로 자신을 이런 궁지에 몰아넣은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진실은 결국 밝혀진다. 대통령 직위에 있어야 진실을 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권위주의 정부에서처럼 대통령이라고 언론에 자기 생각을 강요할 방법도 없다. 설사 박 대통령 생각처럼 억울하다 해도, 누군가에게 속은 것이라 해도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최순실이건 고영태건 모두 박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그런 일을 벌였다. 그런 사람에게 속았다면 대통령으로서 더욱 한심한 일이고,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자진 사퇴하면 끝인가. 아니다. 사퇴해도 탄핵심판이 계속될 수 있다. 그래도 실효성이 없으니 중단할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더 큰 문제는 형사처벌이다. 박 대통령 측근들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다.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헌법84조). 그러나 사퇴를 하건 탄핵이 되건, 일반인으로 돌아가면 바로 구속될 가능성이 크다. 특검도 28일 활동 기간이 끝나면 박 대통령을 ‘기소중지’하겠다고 밝혔다.
 
자진사퇴설을 거론하는 배경도 형사처벌을 피하고 싶은 의도가 깔려 있다. 쉽게 말해 거래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사법처리를 막을 생각으로 제안하는 거라면 턱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게 협력하겠다”고 했다가, 안희정 충남지사는 “K스포츠·미르재단도 동계올림픽을 잘 치르고 싶었던 선의에 의해 한 것”고 말했다가 호된 비난에 시달렸다.
 
이러니 선거 전 정치적 합의는 물 건너갔다. 선거 국면에서 역풍을 무릅쓰고 용서하자고 나설 정치인이 없다. 형(刑)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면하는 게 가능한지도 논란이다. 미국에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의 재임 중 모든 범죄행위에 대해 사면해버렸다. 기소 가능성 자체를 원천 봉쇄한 것이다. 덕분에 포드는 당시 비난을 받았지만 지금은 ‘용기 있는 대통령’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런 일을 해줄 충성스런 여권 후보는 없다. 그런 말을 하면 여건 야건 당선 가능성이 더 멀어진다. 결국 사면권자는 정치인이 아니다. 국민이다. 여론을 거슬러 정치인끼리 합의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국민의 마음을 사는 게 가장 빠르고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최근 탄핵 심판정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기가 찬다. 박 대통령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국민의 부아를 지르고 있다. 일부 극렬 친박 세력을 끌어 모으고, 분노를 발산하기 위한 것이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게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재판정에 나온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벌이고 있다. 그렇게 해서 여론이 악화되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누가 도와주고 있나. 박 대통령에게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도 번번이 옆으로 비켜갔다. 아부만 하는 ‘방귀 참모’, 게걸스러운 ‘탐욕 친구’만 가까이 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비선(秘線)을 이용하지 않았어야 했다. 안희정 지사 말대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이 선의(善意)로 만들어진 재단이라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누구도 시비 걸 수 없게 법적 절차를 완벽하게 다져놨어야 한다. 당연히 비선은 개입하지 못하게 막았어야 한다. 그런데도 전직 대통령 비리 수사까지 해본 우병우 민정수석은 무얼 한 것일까.
 
백 번을 양보해도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미르재단을 조사했을 때는 그 내용을 살펴봤어야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냉정하게 돌아보는 대신 ‘국기 문란’으로 몰아 또 한번의 기회를 팽개쳤다. 쓰다고 양약(良藥)을 독(毒)이라고 우긴 것이다.
 
사과 아닌 사과를 하는 바람에 입을 열 때마다 여론은 나빠졌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돌아보는 자세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됐다. 억지로, 그 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값싼 사과로 넘기려 한 때문이다.
 
사실을 부정할 건지, 사실이긴 하나 잘못되지 않았다고 할지, 불법이 아니라고 할지, 동정론으로 갈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짬뽕 변론’이 돼 버렸다. 오죽하면 대통령 탄핵사건을 ‘각자대리’하고 있을까.
 
국민은 기대한 것보다 더 큰 것을 던질 때 감동한다. 흥정하려 하지 마라. 조건을 붙일수록 구차하다. 분노만 일으킨다. 민심을 잡아야 기회가 생긴다. 다음 정부도 여소야대(與小野大)다. 누가 당선돼도 꼭 같다. 탕평책과 화합정책은 필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좋아한 충무공의 충고처럼 ‘사즉생(死卽生)’이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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